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카카오 농부들의 밥그릇을 지키려면

지난해 4월 가나 정부의 카카오위원회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나의 카카오 산업이 약 10억달러 손실을 입을 것으로 전망했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커피나 코코아 등 기호식품 관련 산업은 업종에 따라 매출 호조를 보이고 있지만, 수요가 늘어도 개발도상국 상황은 여의치가 않다. 전염병 통제가 어려운 개발도상국들은 국가 봉쇄와 이동 금지 등의 조치가 내려지면서 수출에 필요한 행정 처리나 물류가 지연됐고, 그 손실은 고스란히 생산자들에게 돌아갔다. 가나와 인접한 코트디부아르 상황도 비슷하다. 서아프리카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는 전 세계 카카오 생산량의 70%를 담당하는 곳이다. 이곳의 공급이 원활치 않음은 곧바로 시장 가격의 요동을 의미하고 이것은 산업의 지각 변동을 뜻한다. 어쨌거나 팬데믹은 개발도상국에 산업 손실을, 선진국의 다국적 제과 회사엔 쏠쏠한 이익을 남겼다. 가나와 코트디부아르도 손 놓고 당하지만은 않았다. 두 나라는 지난해 10월부터 카카오 거래 시 톤당 400달러의 고정 프리미엄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런 가격 정책 변화는 전년부터 계속 예고한 사안이기도 했다. 마하무두 바우미아 가나 부통령은 “OPEC처럼 코코아 생산국을 모아 ‘코펙(Copec)’을 결성해 코코아 농장의 가난 문제를 완화하겠다”고 말하며 야심을 드러내기도 했다. 사실 서아프리카 카카오 산업은 ‘어린이 강제 노동’이라는 오명을 수십 년간 뒤집어써야 했다. 끝없이 떨어지는 카카오 가격 때문에 어른들은 더 이상 카카오 농장에서 일하려 하지 않는다. 도시의 슬럼가로 나가면 하루에 1달러는 벌 수 있고, 부자 나라로 이주노동을 떠나면 집 한 채 살 돈은 마련해 돌아올 수 있다. 하지만 시골 농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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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칼럼] 기후변화 저감시키는 ‘유통의 힘’

지난 9월 24일,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이 ‘기후서약 응원 프로그램’을 론칭했다. 4억 5000개의 취급제품 중, 생산과정이 기후변화 저감에 기여하는 제품들을 선별해 온라인상에서 아마존의 특별 배지를 부여했다. 온라인 쇼퍼들은 이 배지를 식별함으로써 환경과 미래를 위한 소비에 보다 쉽게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고 아마존은 밝혔다. 아마존의 기후변화 대응 노력은 갑작스런 이벤트가 아니다. 2019년 그들은 ‘지속가능한 비즈니스 선언’을 통해 “파리협약보다 10년 먼저 탄소 순배출 제로를 달성한다”는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기후서약(Climate Pledge)에 가장 먼저 서명한 뒤 ▲숲 재–조림을 위한 1억 달러 투자 ▲100% 재생에너지 전환을 위한 발전소 프로젝트 ▲탄소배출 저감을 위한 전기배송차량 10만대 구입 등 거대 기업다운 광폭 행보를 선보였다. 아마존은 이번 응원 프로그램 론칭을 위해 시중에서 통용되던 수백 개의 인증마크를 재평가해 환경적으로 기후변화 저감에 효과가 있다고 증명된 19개의 마크를 최종 선정했다. 이 마크들은 생물다양성 지원, 유기농법 시행, 공정한 가격과 노동인권 보호, 유해 화학물질사용 최소화, 탄소배출 저감, 재생에너지 사용 등을 보증한다. 이중 눈에 띄는 것은 아마존이 자체적으로 개발해 선보인 ‘콤팩트 바이 디자인(Compact by Design)’ 인증이다. 일반 유통 매대에서 필요한 화려하고 눈에 띄는 비규격 포장을 지양하고, 가급적이면 단순한 육면체 포장, 내용물 포장 시 빈 곳 최소화, 내용물을 최대로 담을 수 있는 포장 등을 가이드라인으로 제시했다. 아마존의 두 가지 관점이 보인다. 하나는 기후변화를 이유로 자사의 물류비용을 최대한 낮추려는 의도이다. 실리도 챙기면서 이런 명분을 등에 업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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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칼럼] 기후변화와 공정무역

지난 8월, 유래 없는 긴 장마가 한국을 덮쳤다. 가옥이 물에 잠기고, 제방이 터져나갔다. 소떼와 자동차가 뒤섞여 떠내려가는 풍경은 여기가 21세기 초일류국가 한국인지를 의심하게 했다. “이 비의 이름은 기후변화입니다”라는 한 장의 카드뉴스를 보며, 우리 삶 깊숙이 다가온 기후변화의 위기를 비로소 알아차린 한 철이었다. 사실, 도시의 삶은 기후변화를 체감하기 매우 어렵다.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출근해 에어컨 나오는 사무실에 들어 앉는다. 점심 먹는 잠깐 사이의 더위를 참지 못해 일회용 컵에 아이스커피를 마신 후, 집에 돌아와 냉장고와 선풍기의 도움을 받으며 잠에 든다. 높은 습도에 매일 하는 빨래가 잘 마르지 않는다고 열 건조기 사용량도 늘어난다. 냉방병에 걸리지 않으면 다행인 여름철을 보내는 도시인들에게 기후변화는 8월 장마철의 잠깐 이야기일 뿐이다. 추석 즈음 과일 값이 폭등하게 된다면, 기상관측사상 가장 길었다던 장마와 기후변화를 혹시 떠올릴 수 있을는지. 기후변화의 아이러니는, 기후변화에 가장 적은 책임을 진 사람들이 가장 크게 체감하고, 가장 치열하게 싸우고 있다는 것이다. 종일 바깥에서 일하는 배달노동자, 몸 하나를 무기로 삼는 일용직 노동자, 그리고, 전 지구의 80% 먹거리를 길어 올리는 소농들의 이야기다. 대표적인 소농의 작물인 커피. 커피 생산국 에티오피아는 1960년에서 2006년 사이 평균온도 1.3도가 오르며 지난 몇 년 명성대비 낮은 품질로 커피인들의 애를 태웠다. 멕시코, 콰테말라, 온두라스의 강수량은 1980년대 이후 15%나 줄었다. 2050년까지 현존하는 커피경작지 50%는 사라질 것이라는 연구 결과를 실증하는 사례들이다. 커피섹터에서의 기후변화는 ‘병해충의 세계화’다. 콩고에서 시작한 커피천공충(Coffee berry borer)은 보통 재배고도 1500m 아래에서만 발견됐다. 그러나 커피산지 기온이 전반적으로 상승하면서 1500m 이상 고도에서도 발견되며, 연간 5억 달러의 피해를 발생시킨다. 천공충 발생 초기, 기온이 낮은 높은 고도로 점진적으로 경작지를 옮겼던 세계 각지의 농부들은 허탈하기만 하다. 2014년 엘살바도르 커피의 70%를 날려버린 커피녹병(coffee leaf rust)은 점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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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칼럼] 네슬레, 킷캣 초콜릿에서 공정무역을 지우다

커피 카카오 영역의 절대 강자 ‘네슬레’. 2009년 영국에서 가장 사랑받는 초콜릿바 ‘킷캣(KITKAT)’의 카카오와 설탕을 ‘공정무역 인증’ 제품으로 바꾸면서, 6000여 아프리카 농부들의 생계를 책임지겠다고 공언했다. 겨우 10년을 버텼다. 네슬레는 코로나와 기후 위기로 개도국 농업 섹터가 가장 취약해진 지난 6월, 공정무역 원료 구매 중단을 선언했다. 엄청난 계획이라도 있나 들여다봤더니 카카오는 ‘열대우림동맹인증(Rain Forest Alliance)’ 원료를, 설탕은 ‘비트’에서 추출한 영국산을 쓰겠단다. 그리고 점진적으로는 자사의 내부 인증 체계인 ‘코코아 라이프’를 준용하겠다는 설명이었다. 영국 최대의 공정무역 제품 취급점이라고 뻐기던 ‘세인즈베리’도 2017년 비슷한 일을 벌였다. 25만명의 공정무역 농가조합과 거래하던 차(tea) 라인에서 공정무역 인증을 뗐고, ‘fairly trade’라는 자사 로고를 붙인 PB 제품을 출시했다. 문제는 네슬레나 세인즈베리가 내놓은 어떤 계획도 농민들의 최저 임금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쉬운 방법으로 명분은 챙기고 비용은 절감한 셈이다. 공정무역 인증 마크가 나온 이후, 지난 15년간 선보였던 450여 개의 마크나 계획이 대체로 환경과 가치를 수호한다는 내용이니 어떤 마크가 ‘찐 마크’인지 식별해야 하는 소비자의 피로는 극심해진다. ‘권력과 통제(Power and Control)’. 거대 식품 기업이 밸류체인에서 갖기를 욕망하는 것들이다. 네슬레, 몬델라즈, 스타벅스 정도의 식품 기업들에 어쩌면 시장가격보다 높은 공정무역 가격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정무역에 참여했다는 명분으로 마케팅하고, 별도의 사회공헌 없이도 가치를 창출할 수 있으니 비용 면에서 나쁜 거래는 아니다. 다만 공정무역 가격과 별도로 지불해야 하는 ‘공동체 발전기금(Social Premium)’이 그들의 마음에 걸릴 것이다. 농부들은 협동조합 내 위원회를 통해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대표이사
[사회혁신발언대] 공적마스크 공급과 공정무역

코로나19가 가져온 마스크 대란. 너무 급작스럽게 터진 일이라 물량 준비가 부족했던 것일까?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은 마스크 시장을 통제하지 못했다. 정부는 긴급한 개입을 통해 수출량을 통제하고, 무자료 거래에 따른 세금 추징 경고로 창고에서 잠자던 마스크 배포를 주도하기 시작했다. 자기 마스크를 한 달간 양보하는 자발적인 캠페인이 일어나고, 시민들이 재봉틀로 면 마스크를 제작해 취약 계층에게 무상으로 보내주고 있다는 미담도 들려온다. 보이지 않는 손은 비록 마스크의 분배를 통제하진 못했지만, 문제를 해결할 사람들을 하나씩 호명한 것이다. 공정무역에 오래 몸담은 필자는 코로나19로 촉발된 2020년 한국 사회에서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이 공정무역 현장과 너무나 닮았음을 느낀다. 공정무역은 가장 취약한 곳에서 어려움을 겪는 커피 농부들에게 제값을 줘 시장에 대비하게 하는 것, 커피 가격을 시장이 결정하게 두지 말고 커피 농부들이 살아갈 만큼의 기본소득을 지켜줄 수 있는 선에서 정하자는 것이다. 왜 이런 개념이 생겨난 걸까? 1980년대 후반, 시장은 커피 가격을 통제하는 데 실패했다. 세계커피위원회의 가격 협상 결렬로 커피 가격이 폭락하면서 커피 농부들의 생계는 하루아침에 벼랑 끝에 내몰렸다. 만약 국가가 시장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역량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커피의 과다 생산을 일시적으로 막기 위해 작물 전환을 위한 교육과 보조금을 제공하고, 그 기간을 견딜 수 있도록 기존에 생산된 커피를 정부 주도하에 사들여도 된다. 또는 커피를 생산하는 국가들이 연합해 커피 소비국과 가격 협상을 벌여 농부들이 시장에 대비할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방법도 있다. 그러나

제262호 창간 14주년 특집

지속가능한 공익 생태계와 함께 걸어온 1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