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9월 17일(화)

“하이브와 엔터사는 환경오염 일으키는 앨범 판매 상술 멈춰라”

전 세계 케이팝 팬들이 다양한 마케팅으로 앨범 다량 구매를 유도하는 엔터테인먼트사들에 환경에 대한 책임 있는 자세를 촉구하고 나섰다.

9월 4일 서울 용산구 하이브 사옥 앞에서 케이팝포플래닛 활동가들이 케이팝 업계의 앨범 상술에 따른 환경오염을 지탄하는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Plastic Album Sins) 캠페인을 펼치고 있다. /케이팝포플래닛

지속가능한 케이팝을 원하는 팬들이 모인 기후 운동 단체, 케이팝포플래닛(Kpop4Planet)은 4일 오전 서울 용산구에 있는 하이브 본사 앞에서 케이팝 업계의 환경 보호 노력을 촉구하는 ‘플라스틱 앨범의 죄악'(Plastic Album Sins) 캠페인을 벌였다.

이날 케이팝포플래닛는 “지난 8월 국내외 케이팝 팬 1만 2000여 명이 참여한 설문에서 ‘앨범을 많이 구매할수록 팬사인회 참여 확률이 올라가는 마케팅'(42.8%)이 하이브 최악의 상술로 꼽혔다”며 “다량의 앨범 구매를 유도해 환경을 오염시키는 악성 마케팅을 즉각 중단하라”고 외쳤다. 앨범 마케팅에 대한 저항의 표시로 줄에 묶여 조종당하던 꼭두각시가 줄을 끊는 퍼포먼스도 펼쳤다.

실제로 하이브를 비롯한 엔터사들은 팬심을 이용해 앨범 판매량을 늘리고 있다. ▲표지만 바꾼 다양한 앨범을 출시하는 것 ▲앨범에 포토카드를 무작위로 넣어서 원하는 포토카드가 나올 때까지 앨범 구매를 유도하는 것 ▲앨범을 많이 살수록 당첨 확률이 올라가는 팬사인회 응모권 등 상술은 숱한 비판을 받아왔다. 미국 유명 팝가수 빌리 아일리시 또한 여러 버전으로 앨범을 발매하는 글로벌 아티스트들에 환경에 대한 책임보다 판매량을 우선시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를 낸 바 있다.

하지만 지난 3월 국내외 케이팝 팬 1만 4000여 명이 참여한 케이팝포플래닛 설문에 따르면, 엔터사들의 마케팅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팬들은 ‘CD 앨범에 랜덤으로 들어 있는 아이돌 멤버의 포토카드 수집을 위해'(36.5%),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팬사인회 등 이벤트에 참석할 기회를 높이기 위해'(27.7%) 여전히 똑같은 앨범을 여러 장 구매하고 있다고 답했다. 하이브 소속 그룹의 팬이라는 대학생 김나영(23, 가명)씨는 “팬 사인회에 가서 ‘최애 아티스트’를 만나고 싶은 마음에 똑같은 앨범을 100장 넘게 구매해 집에 상자째로 쌓아 놓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디지털 스트리밍 시대로 전환이 된 이후에도, 지난 10년간 실물 케이팝 앨범의 판매량은 급증했다. 400위권 합계 앨범 판매량(서클차트 기준)은 2014년 737만 장에서 2023년 1억 1577만장으로 늘어났다. 동시에 엔터사들의 플라스틱 사용량도 늘어났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엔터사들이 CD와 포토카드, 포장 비닐 등 실물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801.5톤으로 2017년 55.8톤 대비 14배 이상 늘었다.

2021년 케이팝포플래닛이 ‘죽은 지구에 케이팝은 없다(No K-pop on a Dead Planet)’ 캠페인을 시작한 이래, 업계는 친환경(FSC) 인증 종이나 생분해 소재 사용 등의 조치를 내놓았다. 하지만 마케팅 이벤트 등을 위해 다량 구매한 앨범은 플라스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폴리카보네이트 소재로 만들어진 CD는 경제성이 없어 재활용되지 않고, 포장에 사용되는 폴리염화비닐(PVC)은 재활용 과정에서 나오는 유독성 물질을 처리할 국내 시설이 부족하다. 케이팝포플래닛이 엔터사들에 환경을 해치는 마케팅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다.

이다연 케이팝포플래닛 캠페이너는 “하이브가 변화를 주도하는 책임감을 보여 케이팝 업계 전체를 이끌어야 한다”고 말했다. 2023년에만 4360만 장 이상의 실물 앨범 판매고를 올린 하이브는 전 세계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커다란 영향력을 미친다. 지난 5월에는 국내 엔터사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 ‘지속가능한 엔터테인먼트를 위하여’라는 비전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하이브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2~2023년 사이 앨범 제작에 사용한 플라스틱은 77.9% 늘었다. 또한 한국ESG기준원(KCGS)이 4대 엔터사를 대상으로 평가한 지속가능경영에서도 하이브는 환경 부문 최하위를 기록했다.

케이팝의 영향력이 전 세계적으로 확장되면서, 해외에서도 케이팝의 책임감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자신을 엔하이픈 팬이라고 밝힌 마티유 베르비기 미국 카네기멜론대학교 한국학 객원교수는 “최근 엔터사들이 친환경 노력으로 내세우는 콩기름 잉크, 재활용 소재 사용은 팬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기업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엔터사는 팬사인회 이벤트 참여 방법을 바꾸고, 포토카드 수집을 위해 쓰레기를 발생시키지 않도록 다른 시스템을 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와 아티스트가 기후위기 해결을 위해 협력하는 단체 ‘뮤직 서스테이너블리티 얼라이언스(Music Sustainability Alliance)의 커트 랭어 이사는 “해외에서도 케이팝이 음반 판매를 위해 만든 마케팅을 모방하다 보니 플라스틱 CD와 DVD를 위해 더 많은 화석연료가 추출되고 있다”며 “이제는 케이팝이 가진 영향력으로 산업을 친환경적으로 이끌어야 할 때”라고 했다.

한편 케이팝포플래닛은 지난 8월 온라인 투표 결과와 함께 ‘악덕 마케팅’ 중단을 촉구하는 공개서한을 하이브에 보냈지만, 하이브는 아직 공개서한에 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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