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Cover Story] 노인복지 强國 북유럽 100년 동안 준비했다 한국, 시간이 없다

[Cover Story] 토비 포터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 CEO
세계 노인 복지 트렌드와 고령화 대책

낮은 연금과 높은 빈곤율… 한국, 노인복지지표 60위
30년 안에 35%가 고령층, 노인복지 인식 변화 필요

96개국 중 60위. ‘2015년 세계노인복지지표(GAWI)’를 통해 발표된 우리나라의 노인복지 수준이다. 크로아티아(61위), 러시아(65위), 방글라데시(67위) 등과 비슷하다. 그나마 지난해 50위에서 10계단 더 떨어졌다. 지난 12일 이번 자료를 발표한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과 국가인권위, 한국헬프에이지가 공동으로 ‘제5회 에이지 토크’를 열었다. 1초마다 2명씩 60세가 되고 있고, 2050년이면 전 세계 46개국에서 60세 이상 노인이 총인구의 3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둔 지금, 우리의 상태는 어떤 걸까.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의 CEO 토비 포터(Toby Porter·사진)를 만나 전 세계 트렌드와 고령화 대책을 물었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 제공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 제공

―한국은 왜 지난해보다 10계단이나 떨어졌는가.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노인들은 빠른 경제 성장 속에서 소외돼 온 것으로 나타났다. OECD 대비 순위가 매우 낮다. 우리의 지표는 4가지 영역(소득보장, 건강상태, 역량, 우호적 환경)에서 13개 지표를 종합적으로 측정한다. 소득보장 부문이 작년 80위에서 올해 82위로 더 떨어졌다. 선진국에 비해 기초노령연금도 낮고, 노인 빈곤율도 극심하다. 한국정부 통계자료에 따르면, 노인 빈곤율은 43%로 지난해보다 낮아졌지만, 비노인 인구 빈곤율에 비해 350% 높은 수치다. 반면 건강상태 부문은 42위, 역량 부문은 26위, 우호적 환경은 54위를 각각 기록했다. 우호적 환경도 좀 나쁜 편인데, 외로움이나 우울감 등이 높게 나타난다는 뜻이다. 2050년이면 한국은 전체 인구의 37%가 60세 이상이 되는 초고령사회로 돌입한다. 노인복지는 단순히 현 노인뿐 아니라 전 국민에게 중요한 사항이다.”

―스위스가 1위를 차지하는 등 북유럽 국가들이 상위에 랭크됐다. 우리나라의 여건상 북유럽 국가들처럼 높은 노인복지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 증세를 해야 한다고 하면 논란이 많을 텐데….

“스위스, 스웨덴, 노르웨이 등은 노인정책에서 성공을 거두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국가들이 예전에도 지금처럼 안정적인 경제와 복지환경을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스웨덴이 혁신적인 국민연금 및 노인연금 시스템을 발표했을 때 그들의 경제수준은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 수준보다 훨씬 뒤떨어져 있었다. 하지만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이러한 복지 시스템을 안착시켜온 것이다. 아시아는 현재 역사상 유례없이 빠른 속도의 고령화를 겪고 있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북유럽의 모델을 배우는 것이 필요하다. 경제적 여건이 부족하더라도 지금 바로 투자해야 한다. 지금 투자해야 경제 발전과 함께 복지 수준도 올라갈 수 있다.”(아시아 국가 중에는 일본(8위), 키프로스(30위), 태국(34위), 베트남(41위), 스리랑카(46위), 필리핀(50위), 키르기스스탄(51위), 중국(52위), 타지키스탄(58위) 등이 한국보다 순위가 앞섰다.)

―선진국인 미국의 순위는 왜 9위인가.

“한국의 경우 노인 건강이 다른 항목에 비해 상대적으로 높은 점수를 받았는데, 미국은 보편적인 의료 시스템의 기반이 없어 이 항목 점수가 낮다. 미국은 건강보험에 가입돼 있지 않으면 한 번의 사고로 전 재산을 탕진하는 구조다. 한 단체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미국 노인들이 직업을 갖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직장이 제공하는 복지혜택과 건강보험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반면, 영국의 경우 모든 노인들이 건강보험 혜택을 받기 때문에 영국 노인은 자신이 원할 때만 일을 한다.”

―세계 각국 정부가 노인문제 해결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어떤 논의들이 오가는가.

“노인들이 연금 외에 추가적 수입을 얻을 수 있도록 유연한 취업정책을 만드는 노력을 하고 있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에서 설문조사를 해보면, 기대수명이 높아진 오늘날 많은 노인은 취업을 원한다. 매일 출근은 아니지만 임시직, 부업, 아르바이트 등을 통해 일하고 싶어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 봤을 때 노인 또한 청년만큼은 아니지만 여전히 귀중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다. 30여 년 전 처음 발표된 육아휴직 정책을 한번 보자. 당시 여성에게 육아를 이유로 휴직 기회를 준다는 것은 매우 급진적이자 혁신적인 정책이었다. 육아 휴직기간에 회사가 여성에게 일정 수당을 준다는 것은 미친 짓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날 육아 휴직은 전 세계적으로 보편적인 사원복지 시스템 중 하나로 자리 잡지 않았나. 30~40대에게는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육아휴직이 필요한 것처럼, 40~50대에게는 일터에서 잠시 떠나 늙은 부모를 돌보기 위한 ‘가족돌봄휴직’도 필요하다. 아직 이런 휴직 혜택을 제공하는 기업은 거의 없지만, 미국과 유럽에서 논의 중인 단계다. 30년 후에는 가족돌봄휴직이 보편적인 시스템이 될 수도 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혁명’과 ‘도전’이 필요하다.”(한국은 2012년경 ‘가족돌봄휴직제도’를 신설해 노부모와 배우자의 부모를 포함해 가족의 돌봄이 필요한 가족구성원이 있다면 1년에 90일까지 휴직 혜택을 받을 수 있다)

―노인복지를 위해 공적 연금 강화를 강조했다. 하지만 경제 불황으로 ‘보편적 복지’를 두고 젊은 층과 노인 간의 세대 갈등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이런 세대 갈등 문제는 선진국들도 모두 거쳐간 것인가.

“노인 연금의 증가는 선택이 아니라 필수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사안이다. 공적 연금은 부모와 자식 중 누가 더 많은 정부 혜택을 얻는지 ‘경쟁’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의 부모와 당신의 자녀는 정부에 더 많은 혜택을 얻기 위해 경쟁하는 관계가 아니지 않은가. 물론 무턱대고 20, 30대 청년들에게 노인들을 위해 경제적 부담을 더 지겠느냐고 하면 ‘아직 대학등록금도 못 갚았는데 무슨 소리냐’, ‘집 사려고 돈 모으기도 바쁘다’며 반발한다. 영국에서도 세대 간 갈등이 매우 심하다. 영국에선 최근 한 젊은 국회의원이 ‘노년층이 과도하게 이기적이다’라고 공개 발언을 해 논란이 된 적도 있다. 이 때문에 세대 간 커뮤니케이션을 막는 장벽을 허무는 게 매우 중요하다. 오늘날의 젊은이들도 미래에 언젠가는 노인이 되지 않는가. 세대 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이 필요한 시점이다.”

헬프에이지인터내셔널_그래픽_노인복지_2015세계노인복지지표순위_2015

―한국에선 ‘선택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를 두고 논란이 크다.

“일반적으로 둘 사이에는 비용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선택적 복지’가 마냥 좋을 것 같지만, ‘진짜 수혜 대상자’를 찾아내기 위해 재산조사를 하고 이를 관리하는 비용 또한 만만치 않다. 많은 나라가 보편적 복지 정책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이 점이다. 물론 몇몇 나라의 경우 선택적 복지 정책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소득 상위 20%는 국민연금을 받지 않도록 하는 호주가 대표적이다.”

―구체적으로 세대 갈등을 어떤 식으로 풀어갈 수 있을까.

“한국 정부가 아주 중요한 포인트를 지적했다. 한국 노인들의 소득은 낮지만 많은 이가 부동산 등의 재산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젊은 층은 현금은 있으나 재산이 없다. 여기서 정부는 세대 간 서로 부족한 것을 채워줘야 한다. 영국의 많은 경제학자는 기초노령연금이 인상되었을 경우, 노인들이 미래의 경제적 압박에 대해 자유로워지기 때문에 자신들의 ‘안전한 자산’인 재산을 시장에 내놓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될 경우 비싼 주거 비용 문제가 해결돼 젊은이들도 혜택을 볼 수 있게 된다.”

―지난 9월 유엔 개발정상회의에서 채택된 17개의 ‘지속가능발전목표(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SDGs)’ 중 15개에 ‘연령’이 직간접적으로 언급됐다. 이것이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

“SDGs의 목표 중 하나가 ‘국민 중 그 누구도 도태되지 않게 하겠다’이다. 연령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던 ‘새천년개발목표(MDGs)’에 비해 SDGs에서는 세 번째에 ‘건강한 삶을 보장하고 전 연령층의 삶의 질을 증진한다’고 명시했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도 지난 9월 말 ‘고령화 및 건강에 관한 세계보고서(World Report on Ageing and Health)’를 발간하면서 노인 보건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이것은 WHO가 노인의 건강만 별도로 조사하고, 정부를 설득해 전 세계적으로 노인 정책을 실현하겠다고 선언한 것과 마찬가지다. 현재 국제적인 흐름을 봤을 때 노인 문제가 어느 한 개인이 아닌 국가 차원에서 고려해야 할 대상으로 부상했음을 의미한다. 한국 정부도 SDGs가 목표한 것처럼 노년층을 포함한 전 연령대가 균등한 발전을 이룰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헬프에이지 인터내셔널은 2013년부터 ‘세계노인복지지표’를 발표해오고 있는데, 어떤 의미와 특징이 있나.

“지표의 목적은 여러 나라들의 노인복지현황을 파악하기 위해서다. 지표를 통해 국가별로 노인에게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떤 부분이 가장 부족한지 사람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국가 차원에서 논의가 활성화되는 촉매제로 봐주면 좋겠다. 지표를 만들 때는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UN과 같이 국제 기구에 의해 작성된 데이터를 사용한다. 전 세계 국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다보니 데이터 갱신이 느리다는 단점이 지적됐다. 빠르게 변화하는 노인 복지 현황을 파악하는데 한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2년이나 3년에 한 번 발표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노인복지에 대한 정책을 세우기에 앞서, 노인복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어떤 노력을 해야 할까.

“한국은 아직 노인 복지 개혁을 위한 초기 단계로 보인다. ‘어떻게 하면 한국이 아시아에서 노인들이 가장 살기 좋은 곳으로 바뀔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길 바란다. 고령화를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기회’로 생각해야 한다. 고령화는 좋은 보건 환경과 경제 수준 속에서 기대수명이 늘어나면서 나타나는 일종의 부산물이기 때문이다. 고령화 사회에 맞는 정책과 시스템을 확립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인터뷰=박란희 편집장

정리=오민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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