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6일(화)

[Cover Story] “밥값만 하자… 그렇게 버티다 보니 10년이네요”

[Cover Story]
1200만명 거쳐간 국내 최초 온라인 기부 플랫폼
10주년 맞은 ‘해피빈재단’ 권혁일 이사장

왜 공익은 불쌍해야 하나요?
우리도 자립할 수 있는데

“밥값 하려고 10년을 버텼네요. 그 밥값이 이렇게 크고, 길고, 힘들고, 괴로운지 모르고 시작했습니다.” 10주년을 맞은 ‘재단법인 해피빈’ 이야기를 들으러 권혁일(47) 이사장을 만났을 때 그는 ‘밥값’ ‘숙제’ 같은 이야기를 여러 번 했다. 권혁일 이사장은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함께 삼성SDS 사내 벤처에서 의기투합한 네이버 창업 멤버이자 검색 엔진 개발자 출신이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부끄럼 많다’는 그가 인터뷰에 등장하는 유일한 이유는 바로 해피빈 때문이다. 해피빈(happybean.naver.com)은 2005년 7월 네이버가 출시한 국내 최초의 온라인 기부 플랫폼이다. 당장 모금이 필요한 공익 단체가 사연을 올리면 기부자가 그 사연을 보고 기부하는 1세대 크라우드 펀딩 서비스다. 해피빈을 통해 지난 10년간 온라인 기부를 경험한 사람이 1200만명이다. 전체 인구의 20%가 넘는다. 510억여원의 기부금이 모였고, 이는 5500여곳의 공익 단체에 기부됐다. 그는 “지난주에 해피빈 10주년 실적을 발표했는데, 이제 궤도에 오른 것 같아 다들 박수쳤다”며 “그날 전 직원이 회식했는데 2차를 쐈다”고 웃었다. 척박한 온라인 기부 문화와 싸워온 그의 10년 히스토리를 들어보았다.

인생 2막은 NGO에서 네이버 창업멤버로 시작,
2003년 직원 한 명과 함께 회사 내 사회공헌팀 만들어

―검색 엔진을 개발한 공학도이자 창업 멤버였는데, 어떻게 네이버의 사회공헌을 담당하게 되었습니까.

“네이버 창업 멤버로 6년을 보내고 당시 네이버재팬을 맡았어요. 지금보다 체중이 10㎏이나 덜 나갈 만큼 몸이 망가졌어요. 회사를 그만두고 몸을 추스르면서 다른 길을 찾고 싶었어요. 인생 2막을 NGO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당시는 ‘다들 고생하는데 의리 없게 너만 그만두냐’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회사 상황이 겹치면서 못 그만두게 되자 ‘네이버라는 미디어를 공익을 위해 쓰임받게 하는 게 훨씬 의미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2002년 네이버가 상장하면서 사회공헌을 해야 한다는 사내 분위기도 한몫했죠. 전권을 달라고 한 후 2003년 네이버 사회공헌팀장으로 직원 한 명과 함께 딱 두 명이서 회사 사회공헌 설계를 시작했습니다.”

―당시 네이버 사회공헌의 밑그림을 어떻게 설계했습니까.

“설계 못 했죠(웃음). 모르니까요. 일단 현장을 찾아갔어요. 다음세대재단 방대욱 대표님을 비롯해 빈곤문제연구소, 아름다운재단, 삼성복지재단 등 여섯 분의 전문가를 만났어요. 막연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많이 다르더군요. 당시 결식아동 돕기가 한창 이슈가 되었는데, 애들 집에 (사람들이 보내준) 쌀은 쌓여 가는데 정작 아이들은 김치 반찬 하나를 싸가는 게 창피해서 도시락을 안 갖고 간다는 그런 현실을 들었습니다. 저는 비즈니스를 하던 사람이니까 문제의 ‘코어(Core·핵심)’가 뭔지 살펴보는 방식에 익숙하거든요. 근데 공익 분야에도 그런 게 있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전문가들과의 만남 이후 공익 분야에 구조적인 문제점이 있고, 잘되려면 중심이 뭔가 바뀌어야 한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네이버가 쪽방 사업을 하나 하겠다, 이런 기존 틀을 버렸습니다.”

―공익 분야의 구조적인 문제를 무엇으로 보았습니까. 그 해결책으로 나온 게 해피빈인가요?

“우리나라의 정(情) 문화는 기부에 도움이 되기도 하지만 정에 호소하지 않으면 기부가 안 돼요. 결식아동 돕기 사례처럼 감정에 호소하는 기부 문화가 계속되는 이유죠. 네이버를 통해 사람들에게 수많은 공익 단체를 알리는 네트워크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자신만만했어요. 제 주변에도 ‘기부하려는데 좋은 단체 좀 찾아줘’하는 사람이 많았거든요. 공익 단체를 오픈만 해놓아도 다들 좋아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첫 시도였기 때문에 100군데 NGO를 모아놓고 설득하는 작업도 병행했어요. 다들 ‘이게 되겠어’라는 분위기였는데, 네이버라서 혹시 모르니까 발을 담가 보자는 분위기였어요. 모금액 규모가 큰 메이저 단체에서는 ‘큰 단체끼리 하면 좋은데, 풀뿌리의 작은 단체들까지 망라해서 왜 전체를 오픈시키려 하느냐’는 반응도 있었어요. 우여곡절 끝에 2005년 7월 11일 1년 동안 준비한 해피빈 사이트를 열었고, 160개 단체가 참여했어요.”

미상_그래픽_기부_해피빈기부현황_2015

기부 관심 없는 80% 바꾸자
하나에 100원, 가상화폐 ‘콩’ 도입…
한 달간 공짜로 사람들에게 뿌려
공익단체에 호기심 생긴 사람들 직접 기부
충전 콩 월 1억씩 쌓여

―해피빈 사이트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망했죠(웃음). 저는 검색 서비스를 만들었던 사람이니까 네티즌의 반응과 움직임, 트래픽 등 숫자를 보면 딱 보이거든요. 한 달 만에 내린 결론은 ‘이건 안 되겠구나’였습니다. ‘아! 사람들은 공익 분야를 나와 상관없는 일로 여기는구나’를 깨달았어요.”

―해피빈 서비스를 처음 오픈했을 때 네이버 메인에도 걸고 열심히 홍보했을 텐데 왜 그랬을까요.

“지나가다가 한번 들러보고 ‘좋은 일이네’ 한 후에는 싹 잊어버려요. 이벤트 홍보를 할 때는 반응이 있다가 끝나면 반응이 전무해지더군요. 그때 큰 걸 알았습니다. 우리나라엔 기부자가 세 종류 있어요. 첫째는 1% 정도의 적극적인 기부자입니다. 둘째는 10~20% 남짓한 수동적인 기부자로 ‘사랑의 리퀘스트’와 같은 방송에 반응하면서 2000원이라도 결제하는 분들이지요. 나머지 80%는 기부에 대해 ‘내가 불우 이웃이니까 나 좀 도와줘’ 혹은 ‘나중에 돈 벌면 기부할게’라고 하는 분들입니다. 이들의 전형적인 특징은 기부나 공익이 좋은 건 알겠는데 나와는 상관없다고 말합니다. 해피빈을 오픈한 후 ‘내가 방향을 잘못 잡았구나’ 생각했습니다. 공익이나 기부에 관심 없는 80%를 바꾸지 않는 이상 문제를 개선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요. 이때부터 괴로운 나날이 시작되었어요.”

―해피빈의 방향은 어떻게 수정했습니까. 가상 화폐 ‘콩’을 지급하는 시도가 이때 시작되었다고 하던데요.(해피빈은 네이버 블로그나 카페 등을 이용하는 사용자에게 100원의 가치를 가지는 가상 화폐 ‘콩’을 지급했고, 이를 기부할 수 있도록 했다. 사용자가 직접 기부금을 결제하는 ‘충전콩’도 있다.)

“저한테는 새로운 플랫폼을 개발하거나 기획할 인력이 없었어요. 기획만 2~3명, 개발자만 10명 이상 있어야 하거든요. ‘내 숙제니까 내가 하는 수밖에 없겠다’ 싶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어요. ‘정보’ 위주가 아닌, 사람들의 밑바닥을 바꾸는 ‘커뮤니티’ 형태를 만들었습니다. ‘콩’을 형상화하고, 소유하고 기부할 수 있는 개념으로 잡았어요. 2006년 눈물겨운 테스트 끝에 사람들이 ‘콩’에 반응하는 걸 검증하고, 2007년 지금의 해피빈 근간이 되는 서비스가 나왔어요. 하지만 이걸 만들기까지 엄청난 내부 설득을 해야 했어요. 네이버 카페나 블로그에 글을 쓰면 무조건 콩을 하나 주자고 했더니 사내에서 논란이 많았어요. ‘사람들이 원치도 않는데 콩을 주면 싫어해서 불만이 엄청날 것’이라고요. 서비스팀에서 ‘콩 받기를 원한다고 클릭한 사람에 대해서만 주자’고 주장했습니다. 회사와 담판을 지었습니다. ‘그러면 해피빈 서비스를 접겠다’고요. 우리 목적은 기부에 무관심한 80%를 바꾸려는 것인데, 체크한 사람에게만 콩을 주면 아무 소용 없잖아요. 한 달 동안 시범 서비스 하기로 합의했죠. 그 결과 서비스센터에 불만을 제기한 사람은 전무했고, 콩을 안 받겠다고 한 사람이 한 달에 500명뿐이었어요. 한 달 동안 100만명에게 뿌려졌는데, 500명이면 의미 없는 숫자거든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예산을 투입해서 콩을 마구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사람들이 공짜로 뿌려진 ‘콩’에 반응하는 것이지 이것이 곧 기부에 대한 인식이 달라졌다고 보기 어려운 건 아닐까요.

“관심 없는 사람들한테 계속 콩을 주면 처음에는 ‘이게 뭐야’ 하다가 없애고 없앱니다. 그러다 호기심에 한번 관심 갖고 들어가서 수많은 공익 단체의 모금함을 보게 되죠. 비록 자기가 돈 낸 건 아니지만 콩은 자기 것이거든요. 누구한테 줄까 처음으로 고민하면서 각 단체의 사연을 읽어봅니다.

지난 10년간 기부자 1238만명의 참여로 기부 누적금액 512억 7468만원을 모은 해피빈재단의 권혁일 이사장은 “공익 분야만의 ‘공감’과 ‘연대’라는 특별한 경쟁력을 키워 기부에 관심없는 이들의 마음을 열겠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지난 10년간 기부자 1238만명의 참여로 기부 누적금액 512억 7468만원을 모은 해피빈재단의 권혁일 이사장은 “공익 분야만의 ‘공감’과 ‘연대’라는 특별한 경쟁력을 키워 기부에 관심없는 이들의 마음을 열겠다”고 말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 과정을 경험시키는 겁니다. 사실 직접 자기 돈으로 기부금을 내는 ‘충전콩’과 우연히 받은 ‘(공짜) 콩’을 구별해야 한다는 내부 주장도 있었습니다. 저는 반대했어요. 공짜 콩의 가치를 낮추게 되면 기부의 의미가 퇴색되기 때문입니다. 이후 열렬하게 반응이 왔습니다. ‘관심 없었는데, 콩을 통해 공익 단체에 연락하게 됐다’ ‘100원 받아서 기부하려니 미안해서 돈을 좀 더 충전했다’는 등의 반응이죠. 결국 콩을 모아서 기부하는 ‘콩저금통’이 50만개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직접 기부하는 충전콩이 월 1억원씩 쌓이면서 ‘이렇게 앞으로 10년, 20년 가면 우리나라 국민의 3분의 1 혹은 절반 정도가 기부에 참여하고 공익 단체 인지도도 높아지겠구나’ 싶었습니다.”

―해피빈에 대한 고민은 더 이상 없었을 것 같은데요. 하지만 몇년 전 뵈었을 때 해피빈의 새로운 자립 모델에 대한 고민으로 가득했던 기억이 납니다.

“(웃으며) 진짜 고민이 시작된 거죠. 사실 2009년부터 네이버에서 해피빈을 위해 연간 90억원 정도의 대규모 예산을 투입했어요. 콩을 뿌리는 데만 60억~70억원을 썼거든요. 여기에 반응하는 이용자들이 연간 200만명씩 계속 늘어났고요. 하지만 제가 처음에 말씀드렸던 ‘문제의 코어(핵심)’는 그대로였어요. 사람들은 공익 분야를 되게 불쌍하게 보잖아요. 불쌍한 것까지는 괜찮은데, 불쌍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서 핵심은 ‘돈’과 ‘자립’입니다. 네이버에서 계속 지원받으면 좋겠지만, 네이버가 언제까지 지원해줄지도 모르고 결국 자립이 안 되면 오래갈 수 없잖아요. 공익 단체의 적은 연봉과 열악한 환경을 당연시하는데, 공익 분야가 잘되려면 똑똑한 인재들이 와서 뜻을 펼칠 수 있어야 하거든요. 또 네이버가 해피빈을 만들었지만 이런 플랫폼은 사실 우리 사회의 공익 자산이어서 결국 사회에 도네이션되어야 한다고 봤습니다. 2009년 해피빈재단으로 독립했고, 결국 죽으나 사나 자립하는 길밖에 없다고 결론 내렸습니다.”

―공익 분야가 과연 비즈니스가 되는지, 자립이 가능한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지난 4~5년 동안 정말 힘들고 괴로웠습니다. 제가 개발자 출신이라 비즈니스를 막 키울 만한 역량이 없었어요. 벤처 창업할 때처럼 하나씩 부딪혀 가면서 했어요. 처음에는 기업들과 캠페인 페이지를 하나 만들면 한 달에 3명 방문하고, 댓글 2~3개 붙는 수준이었어요. 캠페인 제안하기가 민망했죠. 28명 정도 되는 해피빈재단 내부 직원 중에서 비즈니스를 해본 사람도 거의 없었고요. 조직 내부는 끙끙댔어요. ‘콩스토어’라는 쇼핑몰을 만들었을 때도 원래 의도는 ‘기업한테 현물 기부 형식을 유도하고, 이걸 판매해서 수익이 남으면 기부하자’는 것이었는데 서비스센터에 배송 불만이 들어오면 사람들이 비판을 하는 거죠. ‘좋은 일 하라고 해피빈을 만들어놓았더니 왜 쇼핑몰을 하느냐’고 말입니다. 새로운 것 시도해보고, 접는 과정을 2~3년 해보면서 점점 공익 비즈니스 플랫폼 역할이 자리 잡았어요. 요즘은 우리가 캠페인을 하나 마음먹고 돌리면 댓글 1만개를 넘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아요. 네이버의 어떤 서비스에서도 1만개씩 댓글 반응을 나오게 하기 어렵거든요. 네이버 지원금 외에 다른 기업과 외부 펀딩 금액이 작년 60억원이었는데, 올해는 100억원을 넘길 것으로 예상됩니다. 올 상반기에만 46억원을 펀딩받았고, 하반기에 약 70억원을 예상합니다. 콩스토어는 월 매출이 3억원 정도이고요. 파트너 기업도 200개가 넘어요. 개인이 충전하는 ‘충전콩’ 금액이 올해 35억~40억 정도 규모입니다. 이렇게만 지속되면 네이버 의존도를 점점 줄여나갈 수 있습니다.”(그는 지난해 말부터 서울대 실험실 후배였던 최인혁 네이버 소싱&운영그룹장에게 해피빈 대표를 맡기며, 이사장 자리로 옮겼다.)

―댓글 1만개의 비결이 궁금하네요. 기부에 무관심했던 80% 중 일부가 바뀐 것일까요,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을까요.

“지난 몇 년 사이에 해피빈 커뮤니티에 적극 반응하는 이용자들이 수십만명 생겼어요. 아이티 대지진 때 ‘네이버 메인에 걸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전화가 왔어요. 제가 ‘걸어도 되고요, 안 걸어도 돼요’라고 말씀드렸어요. 네이버 메인에 걸기 전 모금액이 9000만원 남짓이었고, 걸고 나니 2억5000만원이 모금됐거든요. 그 뒤 네이버 메인과 해피빈 메인에서도 뺐는데 열혈 커뮤니티 네트워킹의 힘으로 모금액이 4억7000만원을 넘었어요. 콩저금통을 중심으로 숨겨져 있던 자발적인 힘들이 모인 것입니다. 공익 비즈니스를 할 수 있는 첫걸음은 만들어진 것 같아요. 앞으로 몇 년이 걸릴지 모르지만 이렇게 가면 잘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년 동안 한 걸음 한 걸음 첫단추를 끼워오면서 느낀 점이 있으실 것 같습니다.

“공익 분야가 ‘어렵지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다른 분야에 없는 특별한 경쟁력이 두 가지 있는데, 하나는 ‘공감’이고 또 하나는 ‘연대’입니다. 인터넷 이용자를 방해해가며 콩을 뿌렸는데, 만약 기부·나눔이 아닌 다른 마케팅을 펼쳤다면 반발이 심했을 겁니다. 사회의 공익적인 가치를 위해 내가 가진 걸 조금 나누는 ‘공감’의 힘이 있습니다. 이보다 더 큰 건 연대입니다. 지구상의 어떤 비즈니스도 연대해서 ‘윈·윈’이 되는 건 공익밖에 없습니다. 기업이 같이 모여서 사회공헌 하면 여러 기업이 했으니까 그 효과가 n분의 1로 반감되지 않고 모두 100으로 칭찬받습니다. 공익 분야는 같이하는 게 무조건 좋습니다.”

해피빈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현재 6개의 프로젝트 중 5개가 이미 달성률을 초과할 만큼 대중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 제공
해피빈 크라우드펀딩 서비스. 현재 6개의 프로젝트 중 5개가 이미 달성률을 초과할 만큼 대중들에게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네이버 해피빈 제공

―이제 자립의 가능성을 열었는데,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다음 단계는 무엇입니까. “앞으로는 네이버라는 미디어 외에 다른 미디어에도 공익을 엮어볼 겁니다. 예를 들어 초코파이와 같은 과자 봉지에 기부를 위한 큐알 코드를 넣든다든지, 게임에 기부 아이템을 넣는 것입니다. ‘던전앤파이터’라는 RPG에 적용해봤는데 게임 이용자가 사냥할 때 해피빈 아이템을 받고 기부를 받아주는 캐릭터에 기부하면 ‘해피빈 칭호’를 받습니다. 이 칭호를 받으면 공격력이 30% 늘어납니다. 게임 유저들이 해피빈 아이템 받는 걸 엄청 좋아합니다. 게임 서비스 기획자만 조금 움직여도 엄청나게 바뀔 수 있는 가능성이 많습니다.”

―힘들 때 돌파해온 힘은 어디에 있습니까.

“버텨서 왔어요. 삶에 대한 미션, 내가 해야 하는 숙제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고, 숙제를 다 하자는 생각이었습니다. 힘들고 쓰러질 것 같아도 이겨내기 위해서 무슨 짓이든 하잖아요. 편하게 기업 사회공헌 하다가 돈 쓰고 월급 받았더라면 의미 없는 일이 되었을 겁니다. 잘했다는 이야기 듣기엔 아직 가야 할 길은 너무 멀어요.”

―네이버 창업 동료 중에서도 오승환 네이버문화재단 이사장, 김정호 베어베터 대표 두 분도 함께 공익 영역에서 숨은 역할을 해오고 있습니다.

“창업 동료 4명이 한 달에 한 번씩 만나는데, 김희숙 이사만 아직 공익 영역에 안 들어왔거든요. 우리가 ‘언젠가는 하게 될 것이니, 뭘 할지 생각해보라’고 합니다. 제가 가장 먼저 이 일을 시작했고, 오승환·김정호 대표님도 각자 업(業)을 하나씩 쌓고 계시잖아요. 두 분이 공익 분야에 온 것만으로도 제 밥값을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웃음)”

―미국 빌 게이츠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나라에도 숨은 ‘IT 부호 자선 사업가’가 많이 있는 셈이네요.

“다들 노출을 싫어해서 그렇죠(웃음) 사실 공익에 비즈니스 마인드를 투입하는 분들이 많아져야 합니다. 김정호 대표님도 처음엔 ‘이거 왜 이러지’ 하면서 궁금해했고, 나중에는 ‘평생 할 일을 찾았다’고 하시더라고요. 발달 장애인들을 제조업에 투입하고 있는 현실에 의문을 품었던 겁니다. 중국 단가를 못 이기는 제조업이 아니라 서비스업에 투입해야 한다는 것이었죠. 공익 분야가 경쟁력이 가시화되면 참여하는 분이 많아질 것으로 봅니다.”(‘베어베터’는 발달 장애인들이 만든 명함, 쿠키, 원두커피, 화환 등을 기업에 납품하고 있으며 120명 중 100여 명의 발달 장애인이 일한다.)

―사람들은 흔히 ‘100억원대 부자가 되면 만날 먹고 놀고 싶다’고 합니다. 공익 분야에 뛰어든 삶을 후회하지는 않는지요. 지난 10년은 개인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었습니까. “사실 네이버 창업 멤버가 되기까지, 된 이후의 과정을 돌이켜보면 제 의지로 된 게 아니에요. 만남과 인연에 의해 이해진 의장과 같이 일하게 됐고, 운이 닿아서 창업 멤버에 들어갔던 겁니다. 저와 비슷하거나 오히려 저보다 실력 있는 분도 많거든요. 그런 만남과 인연이 없었다면 아마 저는 다른 인생을 살고 있을 겁니다. ‘전 인생을 통틀어 여기까지 오게 된 내 삶은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한 적이 많습니다. ‘창업 멤버로서 사회적 혜택을 받았으니까 그 밥값이 무엇일까’ 생각하다가 공익 분야에 와서 지난 시간을 보내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 숨어 있는 고액 기부자 후보 분이 많습니다. 이분들이 선뜻 기부를 할 수 있도록 하려면 어떤 게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지금은 아직 아닌 것 같아요. 기부할 때의 마음은 딱 두 가지예요. 본인의 마음이 좋아서 기부하고 싶거나 아니면 기부를 통해 뭔가를 이뤄내고 싶어 하거나. 첫 번째 부류는 돈 기부하고 잊어버리면 되는데, 두 번째 부류는 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 보고 싶어 하세요. 고액 기부자들은 대부분 비즈니스 쪽 세상을 오래 경험한 분들이어서 그들의 기준에 맞춰 돈을 쓰는 NGO가 아직 많지 않아요. 게다가 기부자들이 ‘내 돈 100만원을 모두 수혜자에게 줬으면 좋겠다’고 하는 사회에선 열악한 NGO 상황이 바뀌기도 어렵고요. 기부가 진짜 투자와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는 환경이 되어야 하고, 김정호 대표님 같은 분이 많아야 합니다. 다만, 그들이 천사는 아닙니다. 천사가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인터뷰=박란희 편집장, 정리=정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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