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
“어느 날 딸아이 침대가 우연히 눈에 들어왔어요. 오래돼서 삐걱거렸죠. 집에 있는 도구 몇 개를 이용해 ‘리폼(reform)’ 해봤는데, 딸이 정말 좋아하는 거예요. 그때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잃었던 삶의 의욕이 다시 솟구치는 느낌 같은 거였죠.”
우상경(50) ‘상상공방’ 대표의 말이다. 그는 광고 대행사 ‘씨쓰리커뮤니케이션즈’를 운영하는 기업가이자 경기 의왕시에 ‘상상공방’이라는 이름의 목공방을 운영하는 디자이너다. 공방에선 주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폐목재를 활용해 공공을 위한 제품을 만든다.
그가 처음 나무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시련’ 덕분이었다.
“5년 전 믿었던 동료에게 30억원에 달하는 사기를 당했어요. 고스란히 제 빚이 됐죠. 그 여파로 우울증과 대인기피증을 심하게 앓았어요. ‘어떻게 죽을까’를 고민할 정도로 심각했죠.”
우연히 재능을 발견한 목공은 무엇보다 좋은 ‘치료제’가 됐다. 나무가 품은 향은 마음을 차분하게 했고, 창조적인 작업을 통해 탄생한 결과물은 새로 일어설 용기를 줬다. 우 대표는 아예 전문 목수 밑으로 들어가 2년간 목공 기술을 갈고 닦았다.
“나무 좋아하는 사람들은 나무처럼 따뜻합니다. 그들과 같이 땀 흘리면서 욕심을 버리는 법이나 배려하는 것도 많이 배웠죠.”
◇시련 딛고 폐목재 업사이클링 디자이너로 우뚝… 우상경 ‘상상공방’ 대표
16일 오후 강서구 화곡동의 작은 카페에서 만난 우 대표는 우울증 병력이 믿기지 않을 만큼 유쾌하고 에너지가 넘쳤다. 본인 작품(폐목재로 만든 시계)을 들고 와 카페 벽에 붙여놓을 정도로 능청스럽기까지 했다. 목공을 통해 생긴 변화다.(본업에도 충실해 빚도 3분의 2 정도는 갚았다고 한다.)
“제 손톱 아래 시커멓게 멍든 것 보이죠? 영광의 상처예요. 목공일을 하다 보면 손을 많이 다치거든요. 그럼에도 나무가 정말 좋고 목공이 즐거워요 (웃음).”
우 대표의 목공 작업은 돈벌이 수단이 아니다. 이름이 알려지며 유명 가구업체에서 여러 차례 디자인 제의를 받기도 했지만 모두 거절했던 것도 그래서다. 그가 운영하는 상상공방도 마찬가지. 그저 나무가 좋은 사람들이 모여 폐목재를 공공에 이로운 것으로 탈바꿈시키는 장소다.
“일반 회사원, 패션디자이너, 심지어 변호사도 있어요. 모두 본업을 하면서도 목공이 좋아 찾아오죠.”
처음 공방을 열었을 땐 폐목재를 구하는 것부터가 험난했다. 아파트 쓰레기장이나 분리수거장을 뒤지다 수상한 사람으로 오인받고 파출소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가져가라’며 전화하는 주민들도 생겼다. 우 대표는 “벽장 줄 테니 벤치로 만들어 달라고 하는 분도 계시는데 그럴 땐 감사하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며 웃었다.
지난 3년간 책상·의자·시계·테이블 등을 만들어 공공 장소에 기증하거나 홍대 인근 아티스트들과 함께 업사이클링 전시회를 열기도 했던 우 대표. 그에게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은 뭘까?
“업사이클링의 가치는 가장 필요 없는 것을 모두가 좋아하는 것으로 만들 때 빛나죠. 작년에 버려진 가구에 재미있는 동화를 그려 넣어 만든 신발장을 강북의 한 초등학교에 기증한 적이 있었는데, 아이들이 정말 기뻐하더라고요. 그럴 땐 희열을 느끼죠. 앞으로도 계속 죽어가는 나무에 생명을 불어넣어 줄 겁니다. 내가 죽어갈 때 나무가 내게 그랬던 것처럼요.”
◇’목공’은 내게 입이자, 듣는 귀… 박상원 서울시 농아인협회 구로지부장
“나무는 소통 도구예요. 내가 나무를 만지작거리다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형상화하면 비장애인이 그걸 알아보고 좋아해주죠. 나무와 제품을 통해 대화하는 겁니다.”
박상원(44·청각·언어장애1급) 서울시 농아인협회 구로지부장은 8년 전 목공을 처음 만났다. 어렸을 때부터 손기술이 뛰어나 무엇이든 만드는 걸 즐겼다는 박 지부장. 처음 만난 나무는 그에게 왠지 모를 각별함으로 다가왔다.
“느낌이 참 좋더라고요. 포근한 느낌에 빠져들게 됐습니다.”
점점 목공에 심취하면서 내친김에 목공업에 인생을 걸겠다는 다짐까지 했다. 2013년 ‘지방장애인기능대회’ 우승을 비롯해 목공 관련 기능대회에서 수차례 입상했을 정도로 실력도 인정받았다. 하지만 한 발짝 더 나아가진 못했다. 비장애인과 함께 일하면서 숱한 차별을 겪었고, 결국 목공일까지 접어야 했다.(현재 그가 맡고 있는 농아인협회 지부장직은 무급 명예직이다.)
그런 그에게 다시 나무를 다듬을 기회가 주어졌다. 지난해 11월, 성균관대 사회 공헌 동아리 ‘인액터스(enactus)’에서 출범한 ‘결 프로젝트’ 덕분이다. 청각 장애인들이 주축이 되어 자투리 목재나 폐목재로 가구를 제작하고 이를 통해 수익을 창출하는 프로젝트다. 배정환 성균관대 인액터스 팀장은 “청각 장애인들은 목공에 대한 선호도가 높고 역량도 있지만 현실적인 제약이 가로막고 있다”며 “이들이 주체적으로 운영하는 사업체를 목표로 프로젝트를 기획하게 됐다”고 했다.
박 지부장이 맡은 역할은 목공기술 담당. 박 지부장은 “목공으로 비장애인과 소통했던 것처럼 목공을 통해 훌륭한 대학생 청년들을 만나고 협력하게 되어 기쁘다”고 말했다. 현재 ‘결’ 프로젝트는 정식 제품 출시 전 소비자의 수요와 반응 등을 조사하기 위한 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가 청각 장애인의 경제적 자립과 자아실현으로 이어질 수 있을까.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은 농아인들을 돕는 일(협회 지부장)이고, 하고 싶은 일은 목공입니다. 그런데 목공을 통해서 농아인을 도울 수 있다면 그보다 멋진 일이 없죠. 말하고 듣지 못해도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이룰 수도 있다는 걸 꼭 보여주고 싶습니다.”(박상원 지부장)
◇NGO 활동가에서 목공 활동가로… 영등포 하자센터 목공방 지기 원성은씨
“업사이클링은 구조 자체를 바꿔야 해서 리사이클링보다 손이 훨씬 많이 가요.”
지난 13일 오후 영등포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하자센터) 목공방에서 만난 원성은(35·목공방지기)씨는 목재 받침대를 해체하는 작업에 한창이었다. ‘빠루’를 이용해 못을 빼내고 원형 전기톱을 써서 잘라내는 공정이다. 작업장에는 전기톱의 굉음이 그칠 줄 모른다.
“우리 공방에선 과정을 중요시하죠. 사실 (원재료를) 사다 쓰는 게 훨씬 편하지만요(웃음).”
원씨는 국제 구호 NGO 단체에서 무려 9년을 일한 활동가 출신. 지난 2013년 퇴사 이후 선택한 일이 바로 ‘목공’이다.
“몸을 깨우는 시간이 필요했어요. 집짓기 봉사를 하는 NGO ‘해비타트’에서 한 달짜리 목조 건축학교 합숙 프로그램을 들은 게 직접적인 계기가 됐죠. 나무라는 소재가 주는 매력도 컸고, 제작물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소통 방식도 맘에 들었어요.”
기관의 특성상 청소년들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다는 원씨. 목공이 가진 청소년 교육의 효과는 어떨까?
“태어나서 못질이나 톱질을 처음 하는 친구가 많아요. 당연히 무서워하죠. 그런데 막상 작업이 시작되면 몰입력이 대단해요. 건성이었던 얼굴도 ‘백이면 백’ 진지해지죠. 작업의 즐거움에 몸이 솔직히 반응하는 거예요. 사포질하면 먼지도 많이 나는데, 정말 열심히 문지르거든요. 가끔 ‘나무가 가진 힘이 나무를 대하는 사람의 자세까지 바꿀 정도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죠.”(원성은)
◇심리상담가 출신 폐목재 디자이너, 알이(RE:) 디자인 팀장 김진주씨
2010년 6월 설립된 (예비) 사회적 기업 ‘알이(RE:)’는 제주도를 무대로 버려지는 목재에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에코 디자인 기업이다. 작은 소품으로 시작해 현재는 가구·기념품·공공조형물까지 다양한 제품을 선보인다. 이 회사의 모든 제품은 이 사람의 손을 거쳐 세상에 나온다. 바로 김진주(33) 알이(RE:) 디자인 팀장이다.
“제주도에서 나오는 폐목재량이 6만t 정도인데, 처리하는 방식은 소각과 매립 두 가지뿐입니다. 소각량이 많아 일부를 매립했다가 다시 꺼내 소각하기도 할 정도죠.”
폐목재 처리에 대해 열변을 토하는 김 팀장은 특이하게도 심리상담가 출신이다. 상담을 전공하고, 8년여 동안 미술치료사로 일했다. 어떻게 폐목재 업사이클링 디자이너가 됐을까?
“3년 전 제주도에 내려와 카페를 준비하게 됐어요. 알이(RE:) 소문을 듣고 인테리어 의뢰를 부탁하려고 갔던 게 인연이 됐고, 그게 스카우트 제의까지 이어진 거죠(웃음).”
미술치료사로 사람을 치유하는 그림을 그려왔던 김 팀장의 그림체나 방식이 나무를 치유하는 업사이클링 제품 디자인과 잘 맞았던 것. 김 팀장은 “저에게나 기업에나 굉장히 파격적인 선택이자 모험이었다”고 했다. 설립 5년 차를 맞은 알이(RE:)는 최근 매출과 인지도가 늘고 환경교육·목공 워크숍 등 다양한 분야로도 진출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그들의 모험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지고 있는 셈이다.
최태욱 기자
김승우·김평화·변상근·이소연 청년기자(청세담3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