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Cover Story] 한푼 두푼 모인 기부금 12조… 이들의 손을 거쳐 여행을 떠납니다

Cover Story 내가 낸 기부금, 어떻게 쓰일까

우리나라의 한 해 기부금 총액은 11조8400억원에 달한다(통계청, 국내나눔실태2013). 국내총생산의 0.9%다. 개인이 7조원, 법인이 4조원가량을 기부한다. 이 기부금은 국내 곳곳에 흩어져 있는 수많은 비영리단체, 복지기관, 종교기관 등으로 들어갔다 다시 나온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과연 내 기부금은 어떻게 쓰일까. 내 기부금이 사회를 바꾸는 데 도움이 되었을까. 내 기부금을 운영하는 단체는 정말 돈을 잘 쓰고 있을까.’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더나은미래는 ‘기부금의 여행’을 책임지는 8인을 만났다. 단순히 돈을 전달하는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가장 적절한 곳에 효율적으로 돈이 전달되도록 하는, 이른바 ‘기부 코디네이터’들이다. 이들은 월급 없이 일하는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매우 정교한 기획·전략·실행을 해야 하는 비영리 전문가들이다.

미상_그래픽_기부_한해기부금_2014

1 단계 기부자들과 소통하는모금팀

홍영표 메이크어위시재단
홍영표 메이크어위시재단

“처음엔 대한민국 1000대 기업 리스트를 뽑아서 일일이 전화를 돌렸습니다. 당시엔 ‘메이크어위시재단’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며 퇴짜 맞기 일쑤였습니다.”

난치병 아이들의 소원을 이뤄주는 비영리단체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 홍영표 대외협력팀 대리는 기부자를 만나야 하는 모금의 최전선에서 일한다. 모금팀은 영리기업으로 따지면 ‘영업팀’에 해당한다. 하지만 돈을 버는 목적이 영리기업과 다르다. 내가 잘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서 돈을 번다. 단체를 알려야 하기 때문에 이들은 방송과 신문, ARS, 인터넷, SNS, 길거리 모금 등 다양한 채널을 활용해 기부자와 소통한다. 홍영표 대리는 “‘배 곯는 아이도 많은데 사치스럽게 무슨 소원이냐’는 인식이 많아 초창기에는 모금하기 참 어려웠다”며 “언제 세상을 떠날지 모르는 아이의 가장 행복한 순간을 만들어주기 위해 되도록 많은 이해관계자를 참여시키는 것이 재단의 모금 전략”이라고 말했다.

기부자의 마음을 여는 다양한 모금 이벤트도 한다. 만화 로보카폴리의 ‘로이(소방차 캐릭터)’가 되고 싶다는 한 아이의 소원을 위해 소방서, 쇼핑사이트, 의류회사 등 다양한 곳을 접촉해 이를 성사시키는 식이다. 홍영표 대리는 “개인 후원자 3000명 중 대부분이 자원봉사자로 활동하다 기부로 이어졌다”며 “아이들의 삶에 가장 큰 행복을 주는 방법을 고민하고 모금하는 일은 무척 보람 있다”고 말했다.

2 단계 현장 필요에 따라 예산편성하는 사업기획팀

안미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 박윤선 아이들과미래
안미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 박윤선 아이들과미래

기부금이 모이면, 각 비영리단체 본부에 있는 사업기획팀은 분주해진다. 국내외 현장에서 꼭 필요한 수혜자가 누구인지 파악하고, 어떤 사업을 통해 지원할지 기획한 후 예산을 편성한다. 몸은 사무실에 있지만, 바깥 현장과의 끊임없는 조율이 필요한 ‘전략통’들이다.

“많은 분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단순히 돈을 주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그 사람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가족 구조·사회문화적 인식·지역사회 환경 등을 분석해야만 그에 맞는 해결 방안이 나옵니다. 자녀의 학비를 10만원 지원하는 것보다, 부모의 심리적·경제적 자립을 지원하는 게 장기적으로 해당 가정의 빈곤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죠.”

14년 차 사회복지사, 안미현 초록우산어린이재단 복지사업본부 복지사업팀장은 사업 기획의 전문성을 강조했다. 어린이재단은 종합사회복지관, 가정위탁지원센터, 아동보호전문기관 등 전국에 69개 산하기관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관리할 기관이 많은 만큼 기획팀의 업무도 세분화된다. 안 팀장은 “전체 사업기획안이 나오면 예산기획팀장·나눔전략팀장·복지전략팀장·해외전략팀장 등 각 부서 팀장들은 7~8개 권역을 나눠 사업설명회를 열고, 산하기관으로부터 사업기획안을 받고 검토한다”면서 “복지사업팀 내 직원 17명이 각자 전문 분야에 따라 산하기관을 나눠 사업을 기획·집행·관리하고, 각 기관 직원들을 위한 역량 강화 교육도 진행한다”고 설명했다.

현장의 필요에 맞춰 사업을 기획하는 것이 핵심이다. 박윤선 아이들과미래 미래개발팀장은 “특히 해외 사업을 기획할 땐 그 나라의 사회·경제·문화적 특성을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9년 동안의 교직 생활을 접고 아이들과미래 국제사업팀장이 된 그녀는 3년째 아프리카 말라위 아이들을 위한 축구 교육 사업인 ‘FC말라위’를 총괄하고 있다. 말라위 현지 축구 코치와 선수들을 양성하고, 지원하는 것이 그녀의 역할이다. 주 4회 아이들에게 방과 후 교육을 진행하고, 아이들의 학업·건강 관련 피드백을 수시로 받는다. 박 팀장은 “술 마시고 방황하던 아이들이 축구를 하려고 학교에 나가기 시작했다”면서 “축구단에 소속된 아동 600명의 학교 출석률은 100%에 가깝다”고 덧붙였다. 현장이 원하는 사업의 성과는 놀라웠다. 2012년 처음 만들어진 ‘FC말라위’ 축구단은 현재 5개, 현지 축구코치는 12명으로 늘었다.

최익교 지구촌나눔운동 / 원정분 밀알복지재단
최익교 지구촌나눔운동 / 원정분 밀알복지재단

3 단계 국내외 현장사업 총괄하는현장 전문가

본부를 거친 기부금이 사업장까지 도달하면, 국내외에서 현장 스태프가 이 돈을 집행한다. 이들은 수혜자들과 24시간, 365일 소통하고, 수혜자들이 가장 만족하는 프로그램을 설계·관리하며,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해야 한다. 이른바 ‘야전사령관’인 셈이다.

최익교 지구촌나눔운동 베트남사업소 한베협력센터 소장은 14년째 베트남 사업 현장을 총괄한다. 최 소장은 “현장 직원 17명은 매일같이 베트남 탕와이현 주민들을 만난다”며 “각 가정에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파악하고, 우리가 진행하는 사업에 대한 피드백을 받기 위해서다”라고 말했다. 최 소장은 베트남 탕와이현 ‘암소은행’ 사업을 소개했다. 자립 의지가 있는 빈곤 가정을 선발해 암소 구입 비용을 지원하고, 3년 후 해당 지원금을 상환받는 사업이다. 마을관리위원회를 구성해 주민들이 직접 관리하도록 하는데, 상환율이 97%에 달한다. 최 소장은 “실제로 2009년 암소은행에 지원한 지에우(Dieu·66)씨는 당시 돼지 한 마리가 재산의 전부였고, 한 달 소득도 1만6500원에 불과했는데, 3년 후 지원금을 상환할 당시 월 소득이 약 4만원으로 2.4배 증가했고, 소 4마리를 보유한 안정적인 가정이 됐다”면서 “‘손주들의 학비를 댈 수 있게 돼서 정말 기쁘다’는 지에우씨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찡했다”고 말했다.

현장 전문가들이 전하는 수혜자들의 정보는 다른 사업을 기획하는 밑거름이 된다. 장애인복지시설, 노인복지시설, 지역복지관, 아동보육시설 등 전국의 46개 산하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밀알복지재단은 현장 직원 수만 약 1000명에 달한다. 후원자들의 기부금은 이렇게 다양한 시설에 고루 분배돼, 현장에 꼭 필요한 사업이 만들어진다. 장애인교육지원사업 역시 이런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음악·미술·운동에 재능이 있는 장애인 자녀들을 관련 분야에서 성장시키고 싶은 학부모들의 니즈가 컸던 것. 3년간 사업이 지속된 결과 휠체어 럭비 국가대표가 된 박우철군은 지난 10월 22일 인천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수상하기도 했다. 원정분 밀알복지재단 과장은 “나를 비롯한 현장 직원들은 각 시설의 도움을 받는 장애인·노인·아동을 직접 만나 피드백을 듣고, 이를 바탕으로 신규 사업을 만든다”며 “지난 10년간 사회복지사로 일하면서, 사각지대를 메우는 것은 개인 후원자의 소액 기부금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설명했다.

“정부 보조금은 정해진 사업과 운영비로 써야 하기 때문에, 당장 도움이 필요한 현장을 지원하기 어렵거든요. 장애인교육사업의 경우 100% 개인 및 기업 기부금으로만 운영됩니다. 이 사업을 3년간 꾸준히 지속할 수 있었던 것도 후원자분들의 관심과 나눔 덕분이었죠.”

4 단계 기부자와 연결고리 만드는후원자관리·홍보팀

심우혜 한국컴패션 / 신예은 한국해비타트
심우혜 한국컴패션 / 신예은 한국해비타트

현장에서 긴급한 도움이 필요할 때, 기부금이 잘 전달되고 있는지 기부자들에게 알려야 할 때는 누가 필요할까. 바로 ‘후원자 관리팀’ 및 ‘홍보팀’이다. 이들은 현재 기부자들뿐 아니라 미래에 기부자가 될 일반인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는 ‘스피커’들이다.

“후원 아동의 소식을 궁금해하는 후원자분이 많습니다. 필리핀에 태풍이 왔을 땐 후원 아동의 생사 확인을 묻거나, 태국에서 쿠데타가 일어났을 땐 ‘우리 아이가 그 동네에 살고 있는데 걱정된다’는 등의 전화가 수시로 옵니다. 컴패션 후원자서비스팀 직원만 40명에 달합니다.”

심우혜 한국컴패션 비전트립 파트장은 후원자 12만명을 직접 만난다. 홈페이지, 뉴스레터, 지로 명세서, 문자 안내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후원자와 소통한다. 후원자와 아동의 편지를 번역하는 봉사자도 관리하고, 후원자가 현지에 직접 가서 후원 아동을 만날 수 있는 ‘비전트립’ 사업도 총괄한다. 심 파트장은 “한 해에 평균 20회 비전트립이 진행되기 때문에, 상시 참가 후원자를 모집하고, 현지 상황을 체크한다”며 “지난 10년간 비전트립에 참여한 후원자만 2500명이 넘는다”고 했다. 그녀는 “후원 아동을 직접 만나고 돌아온 분들이 기존 후원 아동뿐만 아니라 형제·자매까지 돕고 싶단 요청을 하는 등 눈에 띄는 변화가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후원자관리팀이 현재 기부자 관리에 집중한다면, 홍보팀은 미래 기부자 확보를 위한 토양을 쌓는 일을 한다. 신예은 한국해비타트 홍보팀 과장은 방송·신문·온라인·SNS 채널이나 소식지를 통해, 해비타트의 활동을 알린다. 후원자, 정기 자원봉사자, 대학생 동아리, 미디어 등 이해관계자 1만3000명에게 소식지를 보내고 한 달에 2번씩 해비타트 임직원 150여명에게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신 과장은 “소식지를 보고 후원을 결심했다는 기부자의 사연을 들으면 정말 힘이 난다”고 말했다.

서지만 아름다운재단
서지만 아름다운재단

5 단계 비영리단체 투명성 지키는 재정관리팀

기부금이 다 쓰이고 난 후, 정말 잘 쓰였는지 모니터링하는 곳도 필요하다. 투명한 재정관리는 비영리단체의 생명과도 같다. 이를 위해 각 비영리단체에는 재무·회계 전문가들이 기부금을 올바르게 사용했는지 평가하고, 회계감사를 진행한다. 서지만 아름다운재단 재정관리팀장은 자신을 후원자와 수혜자 사이의 신뢰를 견고히 하는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표현했다. 서 팀장은 “지난 10년간 재정회계 업무를 담당하면서, 영리기관에서 일할 때보다 더 큰 책임감이 생긴다”며 “비영리재단은 재정관리에 조금의 흠집이라도 생기면, 기부자와의 신뢰가 깨져버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아름다운재단의 배분 및 재정관리는 까다롭다. 정기적으로 재단 기금운용위원회가 열리는데, 금융투자 전문위원 5명이 모여 적절한 운용 방법을 논의한다. 배분위원회가 기부금을 각 사업에 어떻게 사용할지 정한다. 해당 사업이 재단의 목적에 맞는지, 정관을 옆에 두고 일일이 검토한다. 아동·청소년 등 각 분야 전문가 30~40명이 파트별로 나눠 심사하고, 이를 점수 매긴다. 배분위원회를 통과한 예산집행보고서가 재정관리팀으로 넘어오면, 서류 검증에 돌입한다. 상속증여세법, 비영리회계준칙, 기부금품법 등 집행에 앞서 법률·회계상 검토를 하고, 회계사·세무사를 통해 조언을 받는다. 그 후 계좌주 명칭·협약서·인감 등 기부금이 수혜자에게 정확히 전달되는지 확인하고 이체 요청을 한다.

1차 승인, 2차 승인을 거쳐 수혜자에게 입금이 완료된다. 아름다운재단엔 이체 권한과 승인 권한이 분리돼 있는데, 이는 이체 요청을 한 사람이 승인을 할 수 없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서, 더 투명하게 집행되도록 한 것이다. 서 팀장은 “매년 1~2월엔 회계감사를 통해 적절하게 배분했는지, 서류상 오류가 없는지 감사를 받고, 3월엔 국세청·행정자치부에 재정 내역을 신고하고, 6월엔 기부금 영수증 발행신고를 한다”면서 “비영리단체 재정관리 담당자들은 이제 곧 서류 더미에 묻혀 지내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유진 기자

김경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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