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는 태양광 패널의 핵심 소재인 폴리실리콘을 40% 이상 채굴하는 최대 생산지다. 폴리실리콘은 태양광을 전기에너지로 전환하는 소재로 태양광 패널 생산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 최근 미국 정부는 신장 지역에서 생산된 폴리실리콘, 리튬이온 배터리, 알루미늄 등의 수입 금지를 확대했다. 신장 지역에서 폴리실리콘 생산에 원주민 강제노동 등 ‘현대판 노예제(Modern Slavery)’ 정황이 발견됐다는 이유에서다. 현대판 노예제란 개인이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모든 작업이나 서비스를 의미하며 인신매매·강제노동·강제결혼·채무노동 등을 포괄한다.
지난 20일(현지 시각)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미국 관세국경보호국(CBP)의 신장 위구르 수입품 압류액은 지난해 월 100만달러(약 13억원)에서 최근 1500만달러(약 200억원)로 증가했다. 신장 지역의 폴리실리콘 생산기업들은 세계적으로 증가하는 수요를 맞추기 위해 아동들도 생산 공정에 투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호주의 청정에너지 협의회(Clean Energy Council)에 따르면, 신장 지역에서 약 260만명에 달하는 현지 원주민이 강제 노동에 투입되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22년 기준으로 추산한 현대판 노예 인구 약 5000만명 중 5.2%에 이르는 수치다.
문제는 세계 대부분 국가에서 재생에너지 투자와 생산 비중을 높이면서 태양광 패널에 대한 수요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는 점이다. 글로벌 시장 조사 기관 밴티지 마켓 리서치(Vantage Market Research)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태양광 패널 시장은 1521억달러(약 180조원)에 달하며 2030년까지 2640억달러로 성장할 것을 전망했다.
재생에너지 수요 증가에 따라 강제노동 등으로 생산된 설비 규모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 5월 국제인권단체 워크프리(Walk Free)가 발표한 ‘2023년 세계 노예 지수(Global Slavery Index 2023)’에 따르면, 현대판 노예제로 생산된 제품 중 태양광 패널 등 재생에너지 인프라와 관련한 규모는 148억달러(약 17조원)에 달한다. 이는 전자제품(2436억달러), 의류(1479억달러), 팜유(197억달러)에 이어 네 번째로 높은 수치다.
워크프리는 재생에너지 공급망에서 현대판 노예제가 발생하는 이유로 ‘광물 확보 경쟁’을 꼽았다. 태양광 패널, 풍력 터빈, 에너지 저장 장치(ESS) 등 신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에 필요한 코발트, 구리, 리튬, 니켈 등 희소금속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과열됐고, 이 과정에서 무분별한 강제노동이 이뤄지고 있다고 봤다.
2010~2022년 기준으로 재생에너지 공급망 내에서 발생한 현대판 노예 사례는 510건에 달한다. 지역으로 따지면, 태양광 패널의 주 재료인 폴리실리콘을 가장 많이 생산하는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구, 리튬이온 배터리 필수 소재인 코발트를 가장 많이 채굴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이 대표적이다. 특히 콩고민주공화국에서는 등록되지 않은 비공식 광산에서 코발트를 얻기 위해 아동 10명 중 3명꼴로 코발트 채굴에 동원되는 것으로 추정된다.
보고서에서 “재생에너지 설비에 필요한 금속 채굴과 관련한 ‘현대판 노예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공급망이 비슷한 기업이 함께 고민해야한다”고 밝혔다. 현재 존재하는 기업 내 현대판 노예제 근절 지침은 단일 기업으로 존재해 실효성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영국의 재생에너지 회사인 리플에너지(Ripple Energy)는 “공급망에서 노예 제도와 인신매매를 방지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헌신하겠다”고 명시했다. 테슬라도 2020년 “현대판 노예제에 대해 무관용 원칙으로 대응하겠다”며 “실사과정을 통해 근로자가 착취당하지 않도록 보장할 계획”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필 블루머 기업과인권리소스센터 이사는 “기후변화로 신속한 글로벌 에너지 전환이 요구되면서 노동자의 인권이 보호되지 않는 현대판 노예제가 늘고 있다”며 “해당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은 책임과 의무를 명확히 하고, 정부 차원의 감시와 노동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최근 재생에너지 공급망에서 발생하는 현대판 노예제를 근절하기 위한 변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유럽연합(EU) 산하 태양광발전협회인 솔라파워유럽(Solar Power Europe)은 지속가능한 태양광 에너지를 보급하기 위해 아마존, 화웨이 등 40개 국가의 300개 이상 기업이 모인 네트워크다. 솔라파워유럽은 지난해 10월 ‘태양광 관리 이니셔티브(Solar Stewardship Initiative)’를 결성했다. 태양광 관리 이니셔티브는 지난 7월 이해관계자와의 협의를 마치고 11월부터 해당 이니셔티브는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현대판 노예제를 없애기 위해 생산자, 생산지역, 생산 방식 등 태양광 제품의 생산 정보를 투명하게 추적하는 시스템을 보급할 계획이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