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6일(금)

[Cover story] “돈 한줌 쥐여주기보다, 자신의 지역 지켜낼 ‘사람’에 집중”

이성민·김창숙 캄보디아 기아봉사단

요즘이 캄보디아의 1년 중 가장 시원한 때라고 했는데, 기온은 여전히 30도를 넘었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3시간여를 포장도 안 된 붉은 흙길을 달렸다. 차창을 통해 들어오는 뜨거운 햇빛 속에 꼼짝없이 앉아 있다 보니, 온몸은 땀으로 젖고 속은 메슥거렸다. 수도 프놈펜에서 남서쪽으로 120㎞ 떨어져 있는 ‘쭘끼리’군(郡)에 도착하자마자 입을 틀어막고 화장실부터 찾았다.

‘쭘끼리’라는 이름은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는 뜻이다. 이름처럼 산악지대와 밀림지대가 많은 이곳은 캄보디아에서도 특히 눈물과 상처가 많은 지역이다. 게릴라전을 펼치기 좋은 지형 탓에 이곳에서는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킬링필드’로 대변되는 학살과 내전을 1998년까지 겪었다. 1979년 크메르루주 정권이 무너지면서 일부 군대가이 지역 산악지대로 숨어들었기 때문이다. 마을 모든 집이 가족을 잃거나 장애인이 된 식구를 끌어안고 산다.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한걸음에 달려온 아이들. 오늘은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다.‘ 학교에서도 공부했는데, 또 공부하려니 머리가 아프진 않느냐’고 물으니,‘ 아니요’라고 큰소리로 대답하며 활짝 웃는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고 돌보는 이성민ㆍ김창숙 기아봉사단에게서 열정과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방과 후 수업을 들으러 한걸음에 달려온 아이들. 오늘은 영어 수업이 있는 날이다.‘ 학교에서도 공부했는데, 또 공부하려니 머리가 아프진 않느냐’고 물으니,‘ 아니요’라고 큰소리로 대답하며 활짝 웃는다. 아이들 한 명, 한 명을 바라보고 돌보는 이성민ㆍ김창숙 기아봉사단에게서 열정과 진심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땅에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치료하고 있는 부부를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부터 이 먼 거리를 쉼 없이 왔다. 국제구호개발 NGO인 기아대책에서 15년 전 캄보디아 기아봉사단으로 파견한 이성민(53)·김창숙(48) 부부다.

“당시만 해도 총을 든 군인들이 거리를 활보하던 시절인데,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나왔는지 모르겠어요. 6살·3살의 어린 두 아들을 데리고 캄보디아에 왔습니다. 긴급구호 활동을 펼치느라 항상 위험한 곳에 있으면서 많이 용감해졌죠, 뭐.” 이성민 씨는 국내에서 긴급구호, 국제개발 활동 자체가 없었던 1989년, 해외 원조를 목적으로 세운 기아대책의 1호 간사이자 긴급구호 활동가다. 대한민국표(表) 1세대 해외 긴급구호 활동가인 셈이다.

“그 시절 이 지역은 외부와의 왕래도 거의 없었어요. 먹을 것도 부족한 형편이니 아이들 교육이나 보건 같은 것들은 신경 쓸 여력이 없었죠. 지금도 사람들 대부분이 농사지은 것으로 간신히 먹고사는 형편이에요. 흉년이 들어 먹고살기 더 힘들어지면, 부모가 아이들을 노동시장이나 성매매 브로커에게 파는 경우도 많았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부부는 어린이개발사업(Child Development Program)을 시작했다. 어린이개발사업은 빈곤 가정 어린이들을 한국의 후원자와 일대일로 결연해 교육·급식·보건·의료 혜택을 지속적으로 제공함으로써 전인적 성장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지역사회개발은 단순히 가난한 국가나 지역에 돈을 한 움큼 주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지속 가능한 지역사회개발을 위해서는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리더를 키워야 합니다. 그래서 스스로 자신의 지역, 자신의 국가를 일으키고 세워나가도록 말입니다.”

이성민 씨는 사람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부부는 현재 쭘끼리군을 포함해 캄폿주 5개 지역에서 어린이개발사업을 펼치고 있다. 1100여명의 어린이가 이를 통해 건강한 몸과 마음, 꿈까지 키우고 있다. 키우르티(40) 쭘끼리 군수는 “내전과 가난으로 우리는 정작 자녀들을 돌보지도, 미래를 준비하지도 못하는데 이렇게 한국이 도와주고 있다”며 “비슷한 역사를 갖고 있지만 도움을 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성장한 한국은 무엇보다도 우리에게 노력하면 그렇게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주고 있다”고 거듭 고마움을 표했다.

이성민·김창숙 기아봉사단은 어린이개발사업뿐만 아니라,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인성과 리더십을 훈련하는 청소년개발사업도 펼치고 있다. 이번 학기에는 약 30여명의 대학생이 함께 살며 꿈을 키운다. 고등학생들에게 다양한 직업과 전공에 대해 알려주고자 매년 시골 곳곳을 다니며 ‘비전 컨퍼런스’도 진행한다. 아이들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치는 교사들이 비전과 열정을 품고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교사 협의회’도 최근 시작했다. 이렇게 많은 사업을 어떻게 다 진행할까 싶은데, 부부의 ‘한 영혼, 한 영혼’을 향한 열정은 끝이 없다. 건물을 세우거나 음식을 배급하는 것보다 수십 배의 시간과 노력을 들였던 사람들이 때로는 배신하고, 때로는 마음의 상처를 주고 떠나기도 했지만, 그동안의 ‘사람 키우기’에 집중한 결실도 하나 둘 맺고 있다.

“내가 배운 의술로 우리 가족, 동네를 넘어 캄보디아 민족과 국가에 기여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는 의대생 말리(23), “캄보디아의 밝은 미래를 위해 도서관을 설계해 보았는데, 졸업 작품전에서 1등을 해 실제로 모교 도서관 건축을 담당하게 되었다”는 건축학도 짠타(23) 등, 청소년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부부가 운영하는 기숙사에서 만난 대학생들은 어느새 이웃과 세계를 품는 ‘작은 리더’들로 자라나고 있었다.

마침 하교 시간, 쭘끼리 거리는 집에 돌아가는 아이들로 가득했다. 녹슬고 낡은 자전거에 동생이며 친구를 가득 태운 아이들, 책가방 대신 비닐봉지에 책을 담아 다니는 아이들, 그조차도 없어 책과 연필을 손에 꼭 쥐고 가는 아이들…. 그 가운데 한 무리가 반갑게 달려왔다. 기아대책의 쭘끼리 어린이개발사업센터에서 방과 후 수업을 듣는 아이들이다. 일주일에 4번, 학교가 끝나면 센터로 달려오는 스라이온(11)은 국어가 제일 재미있다며 웃는다.

“열심히 공부해서 의사가 될 거예요. 그래서 우리 동생들, 친구들, 마을 사람들 다 도와주고 싶어요. 기자 언니도 나중에 아프면 제가 도와줄게요.”

훌륭한 의사가 되어 있는 스라이온과 그동안 받았던 사랑과 도움을 다른 나라에 베푸는 캄보디아를 만나는 그날을 기대해 본다.
●후원 문의: 기아대책 (www.kfhi.or.kr, 02-544-9544 ARS후원: 060-700-0770, 한 통화 2000원)

쭘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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