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가뭄에 강한 작물로 농부 수업합니다”

NGO ‘기후대응’ 강화한다

동아프리카 가뭄 4년째
흉작에 가축 80% 폐사

기후대응 농부학교 운영
기상예측 시스템 보급

가뭄이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케냐 북부 마사빗(Marsabit)의 한 마을에 유일한 식수원마저 오염됐다. /굿네이버스
가뭄이 4년째 이어지고 있는 케냐 북부 마사빗(Marsabit)의 한 마을에 유일한 식수원마저 오염됐다. /굿네이버스

아프리카 케냐의 5월. 예년 같으면 매일 저녁 비가 내리는 ‘우기(雨期)’지만 기다리는 비는 오지 않는다. 동아프리카 지역은 매년 3월 중순부터 5월까지, 길게는 6월 초까지 하루에 서너 시간 비가 내린다. 이후 8월까지 ‘소건기’를 지나, 9월부터 11월까지는 비가 조금씩 내리는 ‘소우기’가 온다. 농민들과 유목민들은 이러한 기후 패턴에 맞춰 살아왔다. 이러한 일상이 깨지기 시작한 건 2020년부터다. 코로나 팬데믹과 함께 가뭄이 시작됐다. 올해로 4년째다. 농작물은 말라버렸고 가축이 먹을 풀마저 자라지 않았다. 폐사한 동물 사체는 마을 곳곳에 흩어져 있다. 케냐를 포함한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 동아프리카 국가들은 기후위기로 40년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들도 지원 사업을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방식으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지금껏 주민의 자립을 위해 생산성을 높이는 농법을 전수하고 유통 구조를 만들어왔지만, 이상 기후로 인해 그 효과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농업 부문에서는 가뭄에 강한 종자를 보급하고, 시들했던 산림 조성 사업은 규모를 키우고 있다. 기상 재해 조기 경보 시스템도 구축하고 있다.

‘기후 패턴’ 깨지자 소득·교육·의료까지 복합 재앙

현재 케냐에서 가뭄이 가장 심한 곳은 마사빗·투르카나·만데라 등 북부 지역이다. 특히 에티오피아와 국경을 맞댄 마사빗에는 유목민이 많다. 이들은 염소, 낙타, 양 등을 키우며 생계를 잇는다. 그런데 가뭄으로 풀이 자라지 않으면서 가축의 약 80%가 폐사했다. 지난 2월 케냐식량안보조정그룹(KFSSG)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가축 260여만 마리 폐사로 약 2조3000억원에 이르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가축 가격은 내려가고, 곡물 가격은 상승한다. 유엔난민기구(UNHCR)는 아프리카 동북부의 ‘아프리카 뿔’ 국가에서 2100만명이 식량 위기를 겪는 것으로 추산했다.

허남운 굿네이버스 케냐 대표는 “가축을 팔아서 건초를 사야 할 정도로 가뭄이 심각하다”며 “유목민들에게 가축 폐사는 전 재산을 잃어버린 것과 같은데 현지 정부는 보상이나 대책을 마련할 여건이 되지 않고 지역의 국회의원조차 국제구호단체에 도움을 요청하는 실정”이라고 설명했다.

케냐 북부 마사빗 지역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던 가축이 폐사한 모습. /굿네이버스
케냐 북부 마사빗 지역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던 가축이 폐사한 모습. /굿네이버스

다국적 기후 연구단체인 세계기후특성(WWA)에 따르면, 동아프리카 지역의 가뭄 발생률은 산업화 이전과 비교해 100배 높아졌다. 주요 원인은 온실가스 배출이다. WWA는 지난달 27일(현지 시각) 발표한 보고서에서 2021~2022년 강우 패턴 등 관측 데이터와 컴퓨터 시뮬레이션 분석을 근거로 제시하면서 “지금보다 기온이 1.2도 낮은 산업화 환경에서는 동일한 강수량이라도 가뭄으로 이어지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했다. 결국 기온이 높아지면서 토양의 수분을 증발시켜 가뭄이 가속화됐다고 본 것이다.

긴 가뭄에 이따금 내리는 빗물은 또 다른 불행을 가져온다. 엄청난 양의 폭우가 단시간에 쏟아지면서 홍수를 일으키기 때문이다. 허남운 대표는 “나무나 풀이 자라지 않기 때문에 이틀만 비가 와도 홍수가 나고, 들판에 놓인 동물 사체를 훑고 지나간 물줄기가 낮은 지대로 모이면서 각 지역의 유일한 식수원마저 오염시키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후위기 영향은 사회 전반으로 확대된다. 주민의 소득 감소는 아이들의 교육 단절로 이어진다. 홍수와 산사태를 피해 생활 터전을 떠나는 사람들도 있다. 보건소에 깨끗한 물이 보급되지 않으면서 의료 부문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김선 굿네이버스 국제사업본부장은 “기후위기는 농업으로부터 체감했지만 사람이 살아가는 모든 분야에 걸쳐 영향을 끼치고 또 가장 가난한 사람부터 괴롭힌다”며 “기후변화의 속도에 비해 대응은 다소 늦은 편이지만 국제 NGO들의 활동이 기후 대응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뭄에 강한 작물로 농부 수업합니다"

눈앞에 닥친 위기에도 세밀한 접근 필요

기후위기가 주민들의 생계를 위협하고 있지만 대응은 세밀하게 접근하는 게 핵심이다. 아무리 필요한 지원이라도 주민들이 거부하면 소용없기 때문이다. 김선 본부장은 “과거 농업 생산량이 급감한 지역의 주민들에게 경제성이 높은 버섯 재배를 권한 적이 있지만 주민들을 설득하는 게 쉽지 않았다”며 “재배 작물을 바꾼다는 건 대대로 내려왔던 농사법을 버리고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해서 직업을 바꾸는 것만큼 큰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이 때문에 소득 테스트를 진행한다. 농부 몇몇을 선발해 일부 농지에서 가뭄에 강한 작물로 전환하는 시범 사업의 일종이다.

성공 사례가 나오면 마을 전체가 움직인다. 성과를 중시하는 이유다. 굿네이버스는 지난해 말 기준 세계 41개 사업국에서 기후변화 대응 사업을 벌이고 있다. 대표 사례는 지난 2년간 필리핀 타를라크 지역에서 진행한 농부학교와 커뮤니티 종자은행이다. 굿네이버스는 현지 지방정부와 기상청, 농민·과학자연합(MASIPAG)과 협력해 농업학교 수료 농부 93명을 육성하고 2000명 넘는 농민에게 새로운 농법을 전수했다. 또 벼 품종 86종을 가져와 적응성 시험을 거쳐 현지 토양과 기후에 적합한 16종을 선별하기도 했다.

말라위, 에티오피아, 르완다 등에서는 가뭄 저항성 종자를 보급하고 협동조합을 구성해 스마트농업을 지원했다. 에너지 부문에서는 지열·태양열·바이오가스 등 에너지원을 다양하게 개발해 에너지 자립을 유도했다. 필리핀과 캄보디아에서는 재난 위험에 대응하기 위한 조기 경보 체계를 구축하고 기상 예측 시스템을 운영·관리하는 역량을 강화하는 활동도 벌였다. 특히 에티오피아 도도타·지웨이둑다 지역에서는 지난해 주민 2500명이 동참해 나무 5만 그루를 심었다.

기후 대응에 나선 NGO의 가장 큰 고민은 재원 마련이다. 특히 수자원 관리나 기상 경보 등에는 시설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일례로 우물을 설치하더라도 과거에 비해 더 깊이 파야 한다. 굿네이버스는 23일부터 동아프리카 기후 대응을 위한 캠페인을 진행한다. 캠페인 후원금은 극심한 가뭄과 식량난을 겪는 지역에서 아동 보호, 식량 지원, 보건 의료 사업 등에 쓰인다.

김선 본부장은 “기후위기 대응은 사회의 구조를 바꿔야 하는 일이고 지금도 변화하기 때문에 한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나도 개선하기 쉽지 않다”며 “통합적 접근이 필요한데 앞으로의 과제는 기후변화와 관련된 데이터를 얼마나 수집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느냐에 달렸다고 본다”고 했다. 이어 “재원만큼이나 글로벌 NGO와 국제기구 간 정보교환도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문일요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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