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2일(목)

발달장애인 취업 문 굳게 닫혀… 성인 되면 복지 혜택도 닫혀

한국의 발달장애인 현황

초등학교 저학년 정도의 지능을 갖고 있는 동연(23·지적장애 3급)씨는 일반 고등학교 특수반을 졸업하고 경남의 한 새시 제조업체에 취직했다. 3D업종으로 인력 구하기가 힘든 업체에서 반복 작업이 가능한 동연씨 채용을 결정한 것이다. 동연씨 가족은 아이가 직장 생활을 하며 정식으로 사회의 일원이 된다는 생각에 설랬다.

하지만 동연씨와 그 가족의 기대는 하루 만에 무너졌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기숙사에서 술 마시고 담배 피우며 ‘군기’를 잡았을 뿐만 아니라 동연씨를 바보라고 부르고 욕도 서슴없이 했다. 결국 출근 다음날 새벽에 동연씨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무서워서 못 있겠어요.”엄마는 또 한번 울었다.

지난 10년간 가족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어 온 발달 장애 가족 모임인 기쁨터 식구들이 고양시 화전동 체험 학습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난 10년간 가족보다 더 끈끈한 우정을 나누어 온 발달 장애 가족 모임인 기쁨터 식구들이 고양시 화전동 체험 학습장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다.

동연씨가 가지고 있는 지적장애는 자폐성 장애와 함께 대표적인 ‘발달장애’다. 발달장애란 어느 특정 질환 또는 장애를 지칭하기 보다 정신적·신체적 손상 때문에 발달기(22세 이전)에 이루어져야 할 발달이 성취되지 않은 상태를 뜻한다. 따라서 재활을 통해서 효과적으로 극복할 수 있는 장애와 발달기 이후에 일어난 장애는 제외한다.

보건복지부에서 발간한 ‘장애인 등록 현황’에 따르면 2009년 12월 말 우리나라 장애인 등록 인구는 242만9547명이다. 국민 20명 중 한 명이 장애인인 셈이다. 그중에서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은 총 16만8886명으로 전체 장애인의 약 7%에 해당한다. 발달장애아의 부모들은 ‘우리 아이들은 장애인 중에서도 제일 약자’라고 입을 모아 말한다. 과학과 의료기술이 발달해서 웬만한 장애는 보조장치나 치료로 어느 정도 극복할 수 있지만, 발달장애는 극복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림에 재능을 가진 자폐성 장애인 김범진(20)씨의 그림
그림에 재능을 가진 자폐성 장애인 김범진(20)씨의 그림

발달장애의 원인은 뚜렷이 밝혀진 것이 없다. 이대발달장애아동센터 김선경(45) 부소장은 “원인이 뚜렷하지 않기 때문에 해결책도 쉽게 나오기 힘들다”며 “현재로서는 조기 진단과 치료만이 상태를 완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는 아이가 9~12개월이 됐을 때 진단을 받아 18개월부터 치료를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장애아동 통합 보육시설과 특수학급 수는 점차 늘고 있다<첫 번째 그래프 참조>.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의 83.5%와 93.6%가 일 상생활을 하는 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할은 대부분 부모가 맡고 있어, 20대 이후의 삶이 문제이다.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의 83.5%와 93.6%가 일 상생활을 하는 데 타인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 역할은 대부분 부모가 맡고 있어, 20대 이후의 삶이 문제이다.

문제는 모든 정규교육이 끝나는 만 18세 이후다. 더 이상 발달장애 ‘아동’이 아닌 만 18세 이상의 지적, 자폐성 장애인은 그 수치가 전체 지적, 자폐성 장애인의 77%, 23%에 해당한다. ‘어른’ 장애인 비중이 훨씬 많은 셈이지만, 이들이 갈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반복적인 일을 할 수 있는 경우에도 취업의 문은 닫혀 있기 때문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변용찬(53) 선임연구원은 “취업한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은 거의 찾기 어렵다”고 말했다.

발달장애 부모들은 특히 성인 자폐성 장애인의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아예 바깥출입이 어려울 정도가 많기 때문이다. 자폐성 장애 1급인 한준(22)이의 엄마 김미경(50)씨는 최근 수술을 3번이나 했다. 이미 성인이 된 한준이의 힘을 오십이 넘은 미경씨가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제 주위에 자폐아를 둔 엄마들은 전부 허리디스크니 뭐니 해서 안 아픈 사람이 없어요.”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몸보다 아들을 더 걱정했다. “스무 살이 넘은 자폐성 장애인들은 노화가 빨리 와서 음악이든 미술이든 여러 가지 자극을 주며 그 진행을 더디게 해야 해요. 하지만 한국에는 그런 기관이 거의 없죠.” 보건복지부가 발달장애아동의 치료를 위해 지원하는 ‘장애아동 재활치료’ 바우처는 만 18세까지만 받을 수 있다. 물론 이마저도 저소득층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다.

김씨는 성인이 된 자폐성 장애인과 그 부모가 이 시기에 우울증을 많이 겪는다고 말했다.

“아이가 성인이 되면 밖으로 나가는 것 자체가 힘들어요.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보면 무서워해서 대중교통 이용은 엄두도 못 내죠. 하루 종일 집에서 창 밖의 차만 본다고 상상해보세요.” 보건복지부가 활동이 어려운 중증 장애인에게 제공하는 일상생활 및 사회활동 보조 서비스인 ‘장애인활동보조지원사업’ 바우처를 사용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신청한 지 2년이 넘었는데 아직 못 받았다”며 “제 주변에서도 못 받은 사람 천지”라고 한숨을 쉬었다.

자폐성 장애를 앓고 있는 22살 아들을 둔 김혜준(51)씨는 무엇보다 자신이 죽고 난 후가 걱정이다.

“내가 잘못된 후의 아들이 너무 걱정돼 근처 장애인 시설을 가봤어요. 그곳의 생활환경을 보는 것도 기가 막힌데, 그런 곳에서조차 자폐장애인은 안 받는다고 하네요.”

정부가 손 놓고 있는 사이에도 ‘자폐성 장애아’의 시간은 계속 흐른다. 이 때문에 결국 몇몇 부모들이 모여 자폐성 장애아의 스무 살 이후를 대비해 자발적으로 돈을 모으고 땅을 찾아 건물을 지었다. 고양시 일산의 발달장애아동 가족 모임인 ‘기쁨터’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이 여기까지 오는 10년 동안의 일은 눈물 없이는 듣지 못할 드라마다. “건물 짓는 것까지 했으니 제발 운영하는 것만이라도 도와달라”는 이들의 요청에 “법인의 재산으로 되어있어야만 지원해줄 수 있다”는 정부의 답변이 돌아왔다. 다행히 천주교 의정부교구 사회복지법인 밑으로 들어가 인건비를 지원받을 수 있게 됐지만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이제 21살이 된 자폐 장애인의 엄마 김혜연(52)씨는 이런 말을 건넸다.

“지적장애인이나 자폐성 장애인의 문제는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에요. 이들을 위한 복지가 제대로 돼 있으면 그들이 속한 가정 전체를 살리는 것이고, 이는 건강한 사회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현재 우리나라 지적장애인과 자폐성 장애인은 17만여명. 하지만 그들의 부모와 형제까지 합치면 그 영향권 안에 들어가는 이는 50만명을 훌쩍 넘는다. 우리 사회의 관심과 변화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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