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원조의 문을 연 남자 세상 끝에 희망을 남기다

故 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발자취
기아대책 창립멤버로 24년 작년 모금액 1500억 이끌어
“2030년까지 봉사단원 10만명 파견하고 싶어…
청년들 꿈꿀 기회 열어야” 모금보다 사람의 힘 강조

“돈이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소명 의식’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전력투구하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며, 가장 성공한 사람 아닐까요?” 지난달 28일, 미국 보스턴의 한 병원에서 치료 도중 세상을 떠난 고(故) 정정섭 국제구호단체 기아대책(이하 기아대책) 회장. ‘우리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긍지와 자신감을 심기 위해 일생을 전력투구했던 정정섭 회장의 발자취를 돌아본다. 편집자 주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故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그는 한국 해외원조 분야의 개척자로 24년 동안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기아대책 제공
향년 7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故정정섭 기아대책 회장. 그는 한국 해외원조 분야의 개척자로 24년 동안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기아대책 제공

“대학 시절부터 멘토였던 윤남중 목사님에게 찾아가 ‘선교사가 되겠다’고 했을 때, 목사님은 뜻밖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교사가 되면 한 사람 몫밖에 못 하니, 선교사가 되기보단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일을 하라’는 것이었죠. 한국기아대책을 세우라는 말씀도 함께였습니다. 왜 그때 일제강점기, 6·25 동란을 거치면서 겪었던 굶주림의 기억, 가난한 사람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던 부모님의 모습이 떠올랐을까요? 나도 모르게 결단의 말이 터져 나왔습니다. ‘하겠습니다!’라고요.”(정정섭 저서, ‘복떡방 이야기’ 중에서)

기아대책은 1971년 설립된 국제 NGO단체다. 1년에 2000만명이 굶어 죽을 정도로 심각한 지구촌 기아상황을 전 세계에 알리고, 굶주린 이들에게 식량과 사랑을 전하는 것을 미션으로 한다. 정정섭 회장은 1989년 설립된 한국기아대책의 창립멤버로 24년을 함께했다. 어느 무역회사의 자투리 공간에서 간사 한명과 시작했던 기아대책은 그새 후원회원 43만5207명, 자원봉사자 5만6900명, 기아봉사단 582명(누계 1322명)으로 불어났다. 2005년부터 그는 회장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기아대책의 발전을 이끌었다. 지난해 모금액은 약 1500억원(2012 결산보고). 24년 전 호리우치 일본기아대책 이사장으로부터 건네받은 설립자금 5만달러의 3000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83개국 4만명을 살리는 ‘떡과 복음’의 정신

정정섭 회장은 경제학도(고려대학교)였다. “경제 정책가가 돼서 우리나라 사람들을 가난에서 벗어나게 하고 싶다”는 바람으로 선택한 길이다. 졸업 후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23년을 일하며 전무이사까지 올랐지만 그보다 값진 것은 ‘경험’이었다. 고(故) 이병철·정주영·박태준, 김우중 같은 재계 총수들을 옆에서 지켜보며, 의사결정과 리더십 등을 배웠다. 특히 발상의 전환이나 과감한 결단 등은 고(故) 정주영 회장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정 회장은 늘 “전경련에서 한국 최고의 부자들을 섬기며 배웠다”며 “전경련의 경험은 후원 회원들을 섬기는 게 중요한 기아대책에서 큰 도움이 됐고, 기아대책을 이만큼 키우도록 (전경련에서) 훈련을 받아온 것 같다”고 말해왔다.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섬겨온 그는 “도움받는 사람의 입장을 잘 아는 것은 남을 돕기에 좋은 조건”이라고 했다. 9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형수들의 도움을 받으며 학업을 마친 것을 두고 한 말이다.

◇평생 바친 미션 ‘사람을 보내라’

“2030년까지 10만명의 봉사단원을 파견하고 싶습니다.” 정정섭 회장이 생전에 품었던 꿈이다. 정 회장은 평생 ‘사람’이 가진 힘을 중시했다. 모금을 동력 삼는 NGO에서 일했지만, 모금보다 사람이 먼저였다. “모금 많이 한다고 좋은 NGO는 아닙니다. 사람이 함께 가야 확실합니다. 그들과 함께하며, 우리나라 사람의 나눔, 사랑, 섬김 정신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1993년, 국제기아대책기구와 협력해 한국에서 훈련을 받고 해외로 나갈 수 있도록 한 것도 그래서다.(당시 한국에서 외국으로 봉사단을 보내려면 미국에서 훈련을 받아야 했다.) 일본기아대책이 14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일을 4년 만에 해낸 것이다. 청년 실업 문제도 같은 맥락으로 바라봤다. 취업에 어려움을 겪는 젊은이들을 방치하지 말고, NGO와 결합해 해외로 보내야 한다는 것. 정 회장은 “해외자원봉사자들은 외교관 이상의 역할을 할 수 있다”며 “청년들이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처음’이라는 무거운 문을 열어젖히다

정정섭 회장은 해외원조 시대의 문을 연 인물이다. 한국기아대책이 생기기 전까지 국내에서 해외로 원조하는 NGO는 없었다.(당시까지도 139개의 해외 NGO로부터 원조를 받고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으로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던 시절, 정 회장은 문을 박차고 나섰다. 거부감도 있었다.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다” “우리도 어려운데, 아직 때가 이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정 회장의 나눔 철학은 ‘쓰고 남은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10년 전쯤 에티오피아 갔는데, 아이들이 맨발로 진흙땅 위에서 떨고 있었어요. 뭐라도 덮어 주고 싶은데, 줄 게 없더라고요. 캐나다 기아대책 회장이 자기 옷을 속옷 빼고 다 벗어서 아이에게 입혀주는 거예요. 그때 느꼈죠. 진짜 나눔은 여벌이 아니라, 입고 있는 것을 벗어주는 거란 걸요.”

일평생 헌신적인 삶을 살았지만, 정작 정 회장은 ‘헌신’이 아니라 ‘복’이었다고 말해왔다.

“세상 사람들의 육체적·영적 굶주림을 해결해야 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일에 헌신하기로 결심했고요.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기아대책을 향한 내 마음과 태도가 달라졌습니다. 헌신하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도리어 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이란 걸 깨달은 거죠. 지난 20여년간 나는 복된 현장에서 목격자로 사는 복을 충분히 누렸습니다.”(‘복떡방 이야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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