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9일(화)
시위날 지각은 직장서 ‘허용’… 21일간 장애인 이동권 시위가 남긴 것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이하 전장연)가 지난 3일부터 이어온 서울 출근길 지하철 시위를 23일 잠정 중단했다. 시위 21일 만이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 후보는 전장연 요구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인정했다. 전장연은 이재명·윤석열·안철수 후보에게도 다음 달 2일 열리는 TV 토론회에서 요구에 대한 답변을 달라고 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시위를 재개한다는 입장이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과 예산 편성을 요구하며 시작된 이번 출근길 지하철 시위는 시민들의 불만 고조로 전에 없던 주목을 받았다. 시위 초반에 우호적이던 여론은 시위 장기화로 인한 지각 출근을 개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직장 분위기 탓에 급격히 반전됐다. 이 때문에 일부 기업에서는 시위가 있는 날에 유연근무제를 도입하는 등 발빠른 대응을 내놓기도 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구성원들이 14일 서울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광화문역까지 이동하며 장애인 대중교통 이동권 보장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구성원들이 14일 서울 5호선 동대문역사문화공원역에서 광화문역까지 이동하며 장애인 대중교통 이동권 보장 촉구시위를 벌이고 있다. /뉴스1

정치권·기업 외면 속 장기화된 ‘출근길 시위’

시위 기간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를 비롯한 온라인에는 ‘장애인 시위 때문에 지각하지 않으려면 한 시간은 일찍 일어나야 한다’ ‘몸은 피곤하고 회사에 눈치까지 보이니 점점 화가 난다’ 등의 불만 섞인 글들이 많이 올라왔다. 시위 같은 돌발상황에 대한 근태 규정이 명확하지 않은 직장에서는 시위가 있을 때마다 상사에게 양해를 구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4호선 지하철로 출퇴근하는 직장인 송명준(31)씨는 “장애인 시위가 있는 날마다 부장님께 ‘많이 늦을 수 있을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했다”면서 “부장님은 ‘걱정하지 말고 천천히 와도 된다’고 했지만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고 말했다.

규정이 있어도 사용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국가공무원 복무규정 제19조에서는 ‘천재지변, 교통 차단 또는 그 밖의 사유로 출근이 불가능할 때’ 공가를 승인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러나 공가의 허용 범위는 조직장의 성향이나 기관 분위기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서울시 산하 공공기관에 재직 중인 김모씨는 “시위 때문에 교통이 마비됐다는 이유로 공가를 쓰는 분위기는 아니다”라며 “보통은 개인 연가 처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개인이 시위로 인한 여러 손실을 감당해야 하니까 ‘장애인들은 꼭 문제 제기를 이런 식으로 해야 하냐’는 비판도 나오는 것”이라며 “기업 등 조직도 불편한 상황이 단순히 개인의 책임으로 귀착되지 않도록 변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역사 안에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지지하는 문구들이 붙어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서울 지하철 4호선 혜화역 역사 안에 장애인 이동권 시위를 지지하는 문구들이 붙어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일부 기업, 시위 있는 날엔 유연근무제 적용

발 빠르게 제도를 마련한 조직도 있다. 시위가 자주 진행된 5호선 라인에 있는 현대L&C에서는 시위 초반 지각 출근자가 속출하자, 시위가 있는 날은 전원 출근 시각을 체크하지 않기로 했다.

현대L&C에서 근무하는 김성빈(33)씨는 “처음에는 시위로 불가피하게 출근이 늦어져도 지각처리가 될 수 있어서 직원들 불만이 폭주했다”며 “내부 규정이 바뀌고 나서는 자칫 시위대로 향할 수 있는 비난의 눈초리도 사라진 것 같다”고 말했다. 

기존에 유연근무제를 시행 중인 회사에서는 큰 문제가 되질 않는다. 스타트업에 근무하는 이유진(33)씨는 “최근에는 대부분 직원이 재택근무를 하고 있고, 출근 날에도 개인 업무 일정에 따라 출근 시간을 오전 7~11시 사이로 자유롭게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지각이 큰 이슈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병훈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개인의 의사 표현, 집회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권리”라며 “시위로 인한 불편함을 개인도 어느 정도 감내하고, 직장 등 공적인 영역에서도 양해해 주는 것이 성숙한 선진 사회의 모습”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더나은미래 기자 bloomy@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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