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교통부가 지난 23일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위해 입법예고한 ‘교통약자법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의 실효성에 대해 장애인 단체들이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정부 개정안에 따르면,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케이블카나 모노레일에 탑승하려면 수동휠체어로 옮겨타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은 “이번 시행령·시행규칙은 장애인 당사자의 상황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반쪽 법안”이라며 “장애인 이동권을 보장하려면 휠체어에서 내리지 않고도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을 탈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버스·지하철과 달리 궤도와 삭도에는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을 설치할 의무가 없었다. 궤도는 케이블철도·모노레일·경전철 등을, 삭도는 케이블카·곤돌라 등을 뜻한다. 장애인들은 관광지를 방문해도 케이블카 등을 탈 수 없어 주요 명소에 접근할 수 없었다.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등은 정부에 궤도·삭도에 교통약자 이동편의시설을 의무화할 것을 정부에 꾸준히 요구해 왔다. 그 결과 2022년 1월 궤도와 삭도에도 이동편의시설 설치를 의무화하는 조항이 신설된 ‘교통약자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국토교통부가 23일 발표한 시행령·시행규칙은 내년 1월 19일부터 적용되는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이다. <관련기사 국토부, 교통약자도 케이블카 이용할 수 있게 이동편의시설 설치 의무화>
이번 시행령·시행규칙 개정안에는 ‘교통약자가 휠체어에 내려 차량을 탑승해야 하거나 차량에 탑승 가능한 별도의 휠체어를 이용해야 하는 경우,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휠체어를 비치해야 하며, 이용객의 휠체어를 보관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법안대로면 궤도와 삭도 시설에서 수동휠체어만 탑승 가능하도록 시설을 설치해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 전동휠체어 이용자가 갈아탈 수 있는 수동휠체어를 현장에 비치해두면 된다.
홍서윤 전 한국장애인관광협회 대표는 “이번 개정안으로 케이블카나 모노레일, 경전철 시설이 개선돼 장애인 이동권 수준도 높아질 것이라는 기대가 컸다”며 “하지만 장애인의 실질적인 편의는 고려되지 않아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전동휠체어는 수동휠체어보다 무게가 더 무겁고, 넓은 공간을 확보해야 한다. 이에 목포해상케이블카 등 일부 시설은 수동휠체어 이용만 허용한다. 지체장애인 조봉현(64)씨는 “수동휠체어는 항상 누군가 밀어줘야 한다”며 “상체 힘이 부족한 중증장애인은 전동휠체어를 타야 독자적인 활동이 보장된다”고 말했다. 중증장애인은 궤도·삭도 시설 종점에서 내린다고 해도, 수동휠체어를 타고는 하차지점 주변 관광은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이어 “전동휠체어는 장애인 개인의 신체 특성에 맞춰져 있다”며 “현장에 비치된 수동휠체어로 갈아타면 신체 균형이 깨져 부상우려가 있다”고 덧붙였다.
휠체어를 옮겨 타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전동휠체어를 타는 장애인은 대부분 중증장애인으로, 상체 힘이 약해 다른 사람이 요령 있게 들어서 옮겨야 한다. 한국장애인관광협회가 지난 2021년 전국의 총 199개의 케이블카와 모노레일을 조사한 결과 탑승장에서부터 차량까지 전동휠체어로 승하차할 수 있는 곳은 6개로 전체의 약 3%에 불과했다.
김동범 한국장애인단체총연맹 사무총장은 “궤도·삭도에서도 장애인 이동권이 보장되기를 오랜시간 기다려왔는데, 여전히 우리 사회에 장애인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의견 제출 기간에 국토교통부에 단체 입장을 전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