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홍윤희 무의 이사장, 김남연 두루 변호사
경사로 설치 프로젝트 ‘모두의 1층’
첫 번째 지역은 골목길 많은 성수동
서울숲과 맞닿은 서울 성수동의 ‘아틀리에길’. 붉은 벽돌 건물이 즐비한 좁은 골목 사이로 식당과 카페, 잡화점이 들어서면서 붙은 별명이다. 몇 년 전만 해도 폐공장 지대였던 이곳에 예술가와 사회혁신가, 마을활동가 등이 들어오면서 핫플레이스가 됐다.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성수동. 최근에는 매장마다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되기 시작했다.
발단은 지난해 2월 장애인을 위한 경사로 설치에 예외를 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이하 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무효라는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다. 지난 8월부터는 공익변호사부터 비영리 활동가, 건축사, 디자이너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성수동에 경사로 설치를 위해 ‘모두의 1층’이란 이름으로 한데 모였다.
모두의 1층은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를 끄는 부모, 거동이 불편한 노인 등이 매장을 편히 이용할 수 있도록 접근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프로젝트다. 첫 번째 지역은 성수동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이끄는 홍윤희 무의 이사장과 김남연 두루 변호사를 10일 서울 중구 남대문센트럴에서 만났다.
-‘모두의 1층’이란 프로젝트 이름이 인상적이다.
홍윤희=유럽에 여행을 갔다가 대중교통 시스템을 보고 놀랐다. 영국 런던에는 버스가 모두 저상버스로 운행된다. 특이한 점은 버스 외부에 휠체어 이용자나 유아차를 끄는 사람이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마련돼 있다. 누구나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장치다. 반면 한국에서 저상버스를 이용하려면 버스 기사님을 부르고,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 등 과정이 번거롭다. 이 과정에서 눈치가 보여 자차나 콜택시를 이용하는 분들이 많다. ‘이러지 않아도 되는 환경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또 이런 것들이 휠체어 이용자들을 위한 시설이라고 하지만, 사실 무거운 짐을 끄는 사람 등도 편히 이용할 수 있다. 장애인이 아닌 ‘모두’를 위한 1층이라고 지은 이유도 이 때문이다.
김남연=길을 걷다 인도의 끝자락에 경사로를 본 적이 있을 거다. 포장 도로 끝을 절단해 경사를 둔 것을 커브컷(curb-cut)이라고 하는데, 약 40년 전 휠체어용 경사로를 위해 도로를 부수고 만든 것이다. 당시엔 세금을 허투루 쓴다는 비판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자전거 이용자부터 유아차를 끄는 부모,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학생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편리하게 이용한다.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성수동을 첫 번째 지역으로 고른 이유는?
홍윤희=성수동은 길이 좁고 골목이 많다. 또 1997년 이전에 지어진 노후주택이 많아 이동편의시설 의무 설치에 해당하지 않는 곳도 많다.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성수동 아틀리에 길 현장을 조사했다. 이곳에 있는 272개 점포 중 휠체어가 접근할 수 있는 매장은 36개(13%)에 불과했다. 하지만 서울의 핫플레이스인 성수동은 예술가부터 사회혁신가 등이 있고,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된 몇 안 되는 지역이다. 상징적인 공간에서 성공적인 모델을 만들고자 했다.
-골목길이 많은 성수동에 경사로를 설치가 쉽지 않았을 것 같다.
김남연=장애인등편의법 시행령이 개정되고 나서 건물 어디든 경사로가 쉽게 놓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달랐다. 성수동 일대는 골목이 많고, 길은 좁고, 1997년 이전에 지어진 노후 주택이 많다. 경사로 설치가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설령 경사로를 설치할 공간이 있어도 땅 밑에 배수구 등이 있으면 설치가 불가능했다.
홍윤희=물리적 제약 외에 이해관계자와의 문제도 있다. 프로젝트에 참여할 매장을 모으기 위해 지난 6월부터 30여 개의 점주와 만났지만, 경사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분들이 몇 없었다. 또 2년 단위로 임대 계약을 하다 보니 퇴점 시 경사로 원상 복구에 드는 비용이 부담스럽다는 입장도 있었다. 특히 몇 건물주의 경우 기존 건물의 인테리어를 헤친다는 이유를 들기도 했다.
-경사로 설치에 대한 인식 개선이 우선적인 과제겠다.
홍윤희=지난해 성동구 거주민과 성수동을 방문한 시민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했다. 설문 결과가 점주나 건물주와의 인터뷰 때와는 달랐다. 응답자들은 휠체어 경사로가 설치된 매장에 대해 ‘더욱 편리하다(83%)’, ‘포용적이다(73%)’, ‘이미지가 더욱 좋다(80%)’고 답변했다. 시민들의 인식은 충분히 올라와 있다고 생각한다.
-프로젝트의 중간 성과가 어떻게 되는가?
김남연=현실적인 제약에도 매장 네 곳에 경사로를 설치할 수 있었다. 매장에 경사로를 두기 위해선 인건비를 포함해 약 100만~200만원의 설치비용이 든다. 자영업자인 점주들에게는 부담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정부와 지자체, 지역사회와의 협력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자체를 움직일 방법은 뭔가?
홍윤희=지역 주민들의 목소리가 모인다면 변화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현재 이를 위해 지지서명을 진행 중이다. 성동구 주민 숫자인 3600명에 달하는 사람들의 서명과 점주의 의견 등을 모아 조례 제정 등 지역 접근성 향상을 위한 솔루션을 성동구에 제안할 계획이다.
김남연=인식개선을 위해 토크콘서트도 준비 중이다. 성수지역 경사로 설치를 통한 지역매장 접근성 향상 프로젝트 중간 성과를 시민들과 공유하고, 서울·대구·평창·인천 등 전국 각지에서 경사로를 설치했던 사람들의 경험 공유와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인 임팩트 소송에 대한 사례 등을 나누며 경사로에 대한 인식 접근성을 더욱 높일 계획이다.
-프로젝트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김남연=2018년 편의점을 비롯해 공중이용시설을 대상으로 휠체어 이용자, 유아차 이용자, 노약자 등의 접근성을 보장하라는 공익소송을 제기해 4년 후인 2022년 2월 법원으로부터 “경사로 설치의무가 있다”는 판결이라는 받았다. 긴 기다림이었지만 1997년 만들어진 이래 한 번도 개정된 적 없는 낡은 시행령을 오늘날 상황에 맞추는 시도였다. 이제는 법적 장치가 어느 정도 준비됐으니 실제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만들고자 하는 지자체와 지역사회, 민간기업의 동참이 필요한 때다.
홍윤희=성수지역에서의 프로젝트를 성공적인 모델로 만드는 것이다. 이번 프로젝트를 돌이켜보면서 “지역사회의 맥락을 해치지 않으면서 모두를 포용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성수에서의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안착해 이를 기반으로 각 지역사회에 맞는 이동편의시설 설치 프로젝트들이 확산하길 기대한다. 휠체어, 유아차, 지팡이를 사용하는 사람들 모두가 환대받을 수 사회가 곧 오지 않을까 싶다(웃음).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