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29일(금)

절실한 사례마저 ‘감성 팔이’ 비난 안타까워… 모금단체의 속사정

더나은미래×굿네이버스 공동기획
[2021 기부의 재발견]
②’빈곤 포르노’를 휴지통에 버리시겠습니까?

매년 하반기에 접어들면 비영리 모금단체를 둘러싼 묵은 논란이 고개를 든다. 오가는 이야기는 늘 같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한 장의 모금 캠페인 사진이 올라오면 비난의 댓글이 줄줄이 달린다. “모금단체가 가난한 지역 아이들의 비참한 모습을 노출하는 감성 팔이 안 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글에 “그 광고 볼 때마다 눈살 찌푸린다” “전문 배우도 있다는데 안 믿는다” 같은 댓글이 붙었다.

더나은미래는 해마다 반복되는 이른바 ‘빈곤 포르노(Poverty Pornography)’ 논란을 둘러싼 모금단체의 속사정을 들여다봤다. 빈곤 포르노의 정의는 학자들마다 조금씩 의견이 엇갈리지만 대체로 ‘빈곤 실태를 전달하는 것을 넘어 가난을 소품처럼 활용해 자극적으로 연출하거나 조작해 모금하는 것’을 가리킨다. 모금 활동가들은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문제 현상에 대한 인식과 직시가 필요하다”면서 “당장 지원이 절실한 사례를 사실 왜곡 없이 전달하는 캠페인마저 ‘포르노’라고 표현하는 것은 모금과 지원 활동을 크게 위축시킨다”며 현실적인 고민을 털어놨다.

지난 2019년 진행된 굿네이버스의 해외 여아 지원 캠페인 ‘소녀공간’은 그간 어둡게 묘사되던 아프리카의 이미지에서 벗어나 밝은 톤의 페이퍼 아트로 모금 콘텐츠를 구성했다./굿네이버스 제공

조작과 현실은 구분해야

빈곤 포르노라는 개념은 1980년대에 생겨났다. 국제적으로 자선 모금 캠페인이 급증한 시기다. 당시에는 아프리카 아동의 기아 실태를 고발하는 캠페인이 대부분이었다. 깡마른 아이들이 힘없이 누워 있거나 파리 떼가 온몸에 붙어 있는 사진과 영상들이 대중에게 충격을 줬다. 캠페인 하나로 수억 달러를 모금할 정도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아동 인권과 초상권 문제가 수면 위로 오르면서 자극적인 모금 콘텐츠는 점차 줄었다. 개도국의 절대 빈곤 상황이 그만큼 개선됐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일부 모금단체에서 상황을 조작해 연출한 콘텐츠를 만들기 시작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 따르면, 한 국제구호개발 NGO는 어업 활동에 동원되는 베트남 아동의 노동 현장을 촬영하기 위해 아이들을 수심이 깊은 강에 여러 차례 반복해서 들어가게 했다. 현지에서는 아동이 강에 들어가는 것이 위험해 하루에 몇 회 이상은 들어가지 않는다고 조언했지만 묵살됐다. 또 국내 모 방송사와 개발 NGO는 에티오피아의 열악한 위생시설 문제를 알리기 위해 현지 아동을 가축들이 이용하는 작은 연못에 데려가 물을 마시는 장면을 연출하기도 했다.

모금단체 관계자들은 “현실을 조작하는 문제들이 누적되면서 빈곤 실태를 있는 그대로 전해도 논란에 휘말리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 국제구호개발 NGO 관계자는 “빈곤 포르노의 역사를 보면 상황을 조작해 현실을 왜곡하는 게 가장 큰 문제인데, 어느 순간부터 빈곤을 소재로 하는 모든 모금 캠페인이 비판받게 됐다”면서 “주관적인 기준으로 ‘빈곤 포르노’ 여부를 판단하면 정작 도움이 필요한 곳에 도움의 손길이 닿지 못한다”고 말했다. 굿네이버스 미디어팀 관계자는 “해외 사업장을 다녀와 현장 모습을 캠페인으로 제작한 적이 있는데, 수차례 해외 출장을 다녔지만 전에 볼 수 없던 참혹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었다”면서 “당시 큰 충격을 받았고 그 경험을 있는 그대로 전달하고 싶어 어느 때보다 진심을 담아 만들었는데 아이들을 모금에 이용한다는 비판을 받았다”고 했다.

모금 캠페인의 딜레마

모금단체들은 고민이 깊다. 발굴하는 사례마다 상황이 제각각인 데다가 빈곤의 수준도 다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빈곤 포르노’라는 용어 자체에 대한 재정의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모금단체에서 국내 사업을 담당하는 관계자는 “국내에서도 대중이 외면한 사각지대에 있는 취약 계층들이 있고 21세기에 이런 일이 있나 싶을 정도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특수 사례도 있다”면서 “이러한 사례들을 발굴해서 캠페인을 열면 단체들이 모금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는 비판이 돌아오는 상황”이라고 했다.

모금단체와 협업 중인 영상제작센터 관계자는 “현장의 모습을 담을 때는 여러 날 반복해서 찍으면서 아이가 어떻게 사는지 직접 얘기를 듣고 소통한다”고 했다. 그는 “때로는 본능적으로 영상 쪽 일을 해온 사람만의 감으로 ‘좋은 그림’이 떠오를 때가 있지만 포기할 때가 잦다”며 “대부분 그 아이의 삶과 무관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국제구호개발 NGO의 해외지부에 머무는 한 관계자는 “수혜 아동을 능동적인 주체로 받아들일 수 있게 캠페인을 구성해야 한다는 걸 모르지 않지만 그걸 위해 또 다른 연출을 할 수도 없다”면서 “아이들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담으려고 억지로 책상에 앉혀서 연필을 쥐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말했다.

빈곤 현실을 그대로 전하는 캠페인은 기부자들의 동정심을 일으켜 지갑을 열게 한다. 아름다운재단 기부문화연구소가 지난해 발표한 ‘기빙코리아2020′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기부자들은 기부하게 된 이유로 ‘사회적 책임감’ (30.8%)과 ‘동정심’(29.3%)을 꼽았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주요 기부 동기로 꼽힌 동정심 혹은 이타심이 나쁘다고만 볼 수 없지만 사회적 책임감으로 인한 기부가 늘어야 안정적인 기금 마련이 가능하다”면서 “이를 위해 빈곤 상황을 조명하는 것을 넘어 지원 이후의 결과까지 모금 콘텐츠에 담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수혜자도 기부자도 마음 다치지 않도록

국내 비영리 모금단체들의 캠페인 방식은 점차 변화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는 ‘아동 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10대 기본 원칙’을 지난 2014년 발표했다. 개도국의 빈곤 아동을 대상으로 캠페인을 벌일 때 지켜야 할 가이드라인이다. 구체적으로 ▲빈곤의 구조적 원인·맥락 파악 ▲아동과 보호자에게 능동적으로 참여할 권리 보장 ▲아동의 사생활 보호에 대한 권리 보장 ▲아동의 상황과 말을 조작·왜곡 금지 등이 담겼다.

국내에서는 사례 스토리에 아동이 얼마나 힘든 상황인지보다 그동안 ‘어떤 도움’을 받았는지를 녹여내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굿네이버스에서 진행하는 ‘저소득가정 여아지원사업’의 경우, 모금 캠페인 영상에는 “지난 2년 동안 5600여 명의 소녀에게 (반짝반짝 선물 상자가) 전달되었습니다”라는 문구가 강조돼 있다. 사업 결과라는 객관적 수치를 활용해 취약계층 아동의 삶에 발생한 변화들을 소개하는 방식이다.

사례 현장과 인물을 페이퍼 아트나 일러스트로 표현하는 캠페인도 있다. 지난 2019년 진행된 해외 여아 지원 캠페인 ‘소녀공간’의 경우, 어둡고 낙후된 모습으로 그려지는 아프리카의 이미지에서 탈피해 밝은 톤의 페이퍼 아트로 모금 캠페인을 구성했다. 지난해 열린 국내 학대 피해 아동 지원 캠페인 ‘안녕, 아이야’에서는 학대 피해 아동의 현실과 후원 사업으로 인해 변화될 일상을 일러스트로 표현하기도 했다. 올해부터는 해외 아동 일대일 결연 캠페인 ‘같이여행’이 해외 아동과의 결연을 아동과 함께 떠나는 여행에 빗대어 표현하며 후원을 통해 아동과 공유하는 긍정적인 의미들을 캠페인 영상에 담았다.

시민 참여형 모금 캠페인도 좋은 모델로 평가받는다. 대표적인 사례로 2017년부터 매년 열리는 ‘STEP FOR WATER 희망걷기대회’가 있다. 시민이 4㎞ 길이의 코스를 걷는 과정에서 다양한 미션을 수행하며, 깨끗한 물을 얻기 위해 매일 4시간 동안 걷는 개발도상국 아동의 일상을 간접 체험하게 된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지난해부터는 비대면으로 진행되고 있다. 황성주 굿네이버스 나눔마케팅본부장은 “외면하지 말아야 할 우리 이웃들의 삶을 돌아봐야 한다는 취지에서 그들의 어려움을 간접 체험하고 자발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캠페인 콘텐츠”라며 “기부자들이 불편한 마음을 갖지 않고 기부에 동참하고, 수혜자도 자신들의 권리를 충분히 보장받을 수 있는 모금 콘텐츠를 개발하는 일에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글 싣는 순서>
①모금이 탄생하는 시간
②’빈곤 포르노’를 휴지통에 버리시겠습니까?
③기부에 관한 오해와 진실
④MZ가 말하는 기부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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