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한수정의 커피 한 잔] 쓰레기 만드는 기업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

‘예쁜 쓰레기’. 형용 모순이다.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2월 진행된 ‘화장품 어택(attack)’ 캠페인은 모순된 단어의 조합인 ‘예쁜 쓰레기’의 존재를 우리에게 확인시켜주었다. 환경운동단체 녹색연합은 화장품 용기는 예쁘기만 할 뿐 거의 재활용이 되지 않는 쓰레기이며, 정부는 ‘포장재 재질·구조 등급표시 및 분리배출 표시에 관한 고시’ 개정안에서 화장품 회사만 제외해 특혜를 주고 있다고 폭로했다.

화장품 회사는 소비자의 주목을 끌기 위해 다양한 재질의 장식, 부속품을 화장품 용기에 붙인다. 또 단가가 낮고 휴대성이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대부분 소용량을 선호한다. 그런데 이런 용기는 재질과 크기의 문제로 대부분 재활용이 불가하다. 사실상 90% 이상의 화장품 용기에 ‘재활용 어려움’이라는 라벨이 붙어야 하는데, 화장품 업계는 수출 진작과 브랜드 이미지 하락 등을 이유로 들며 이 행정예고를 번번이 피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시민들의 어이없음은 충격과 허탈의 롤러코스트를 거쳐, 분노로 조직됐다. 2주간 8000개의 ‘예쁜 쓰레기’를 모은 시민들은 화장품 회사의 사옥 앞에서 화장품 용기 쓰레기를 펼쳐 놓고 요구했다.

“쓰레기를 만든 사람이 책임져라!”

한국사회에 기후시민의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캠페인만큼 풀뿌리가 스스로 움직인 적이 있었을까. 그간 기후변화 이슈가 제기될 때마다 개인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안타까워만 하던 시민들이, 구체적인 범인으로 화장품 회사를 지목하고 그들을 법과 제도로 규제하기로 한 것이다.

시민들은 SNS를 통해 캠페인을 확산하고, 자신뿐 아니라 지인들을 독촉해 빈 화장품 용기를 모았다. 전국의 제로웨이스트 가게, 로컬푸드 상점, 공정무역 카페 등이 수거장소로 등록하면서 일이 커졌다. 쓰레기가 쌓인 사옥을 보는 화장품 회사는 당황했다. 그들은 곧바로 화장품 용기를 수거하는 대리점 숫자를 늘렸고, 그 용기를 재활용해 만든 기념품을 선보이며 ‘더욱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미온적으로 대응했던 정부도 화장품 용기에 재활용 등급을 표시하기로 결정했다.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그 물건을 만들어 이익을 본 사람의 것이다. 선택한 소비자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고? 화장품 판매대에서 선택할 수 있는 수십만의 물건이 모두 재활용 불가 용기에 담겨 있다면 사실상 소비자는 선택에 따른 책임을 가질 수 없는 상태인 셈이다.

기후시민은 한발 더 나아가 이런 쓰레기가 적극적으로 사용될 수 있도록 플랫폼을 열어 둔 기업에도 책임을 묻기 시작했다. 바로 하루에 830만개의 재활용 불가 일회용기의 사용을 기반으로 막대한 이익을 거둬들이는 배달 애플리케이션(앱) 플랫폼 기업들을 지목한 것이다. 한국의 배달 음식 시장은 코로나와 함께 2020년 매출 17조3000억원을 기록하며, 2500만명의 가입자를 이뤄냈다. 이 가운데 모바일 주문이 16조 5000억원에 이른다고 하니 거대한 배달 음식 시장에서 플랫폼 기업의 위력을 느낄 수 있다.

지난 6월 한 배달앱은 ‘일회용 수저 안 받기’ 체크 박스를 ‘일회용 수저 받기’로 바꿨다. 일회용품을 안 쓰려는 사람에겐 편리함의 보상을, 쓰려는 사람에겐 불편함의 페널티를 준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일회용품 사용 개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고 하니, 배달앱들은 일회용품에 관한 자신들의 책임과 역할을 보다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얼마 전 경기도 공공배달앱인 ‘배달특급’에서 화성·동탄 일부 가맹점에서 ‘다회용기 사용 시범사업’을 시작했다. 다회용기를 사용하고 식기세척을 스타트업에게 맡기는 등의 여러 개선 사항이 눈에 띄었다. 그러나 배달앱 3사의 시장점유율이 90%인 마당에 공공배달앱이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다 하더라도 이 시스템을 배달앱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문제해결은 요원하다.

다시, 책임은 누구의 것인가. 일회용품을 양산하고, 그 쓰임을 부추기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기는 기업들의 것이어야 한다. ‘예쁜 쓰레기’와 ‘편리한 쓰레기’를 거부하는 기후시민들은 이미 자발적 불편함을 감수하며 빈 용기와 장바구니를 선택했다. 영향력 있는 기업이 책임을 회피하고 직무 유기를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일회용품 쓰레기를 사옥 앞에서 마주하기 전에.

한수정 아름다운커피 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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