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멀쩡한 산림 파괴하고 탄소 배출 더 많아… ‘말로만’ 친환경?

‘바이오에너지’ 환경오염 논란

EU 등 국제사회서 장기적 퇴출 요구
기존 숲 없애가며 팜나무 생산 ‘논란’
과학자들 “탄소 배출, 화석연료 3배”

우드펠릿 생산을 위해 벌목된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주의 천연림 모습. 한국도 바이오에너지 생산을 목적으로 매년 캐나다산 우드펠릿을 수입하고 있다. /컨저베이션노스 제공

화석연료를 대체할 ‘대안 에너지’로 불리며 주목받던 바이오에너지의 위상이 흔들리고 있다. 국제 시민사회에서 ‘퇴출’을 요구하는 성명이 나오고, 유럽연합(EU) 등에서 환경 문제를 이유로 수입에 막대한 관세를 물리거나 장기적으로 퇴출 수순을 밟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면서다. 바이오에너지란 유기성 생물체인 ‘바이오매스(Biomass)’를 활용해 만드는 에너지원이다. 팜유, 사탕수수 등 식물성 자원뿐 아니라 음식 쓰레기, 축산 폐기물 등도 원료로 사용한한다. 바이오에너지는 화석연료보다 유해 물질 발생이 적은 것으로 알려져 대표적인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주목받았지만 최근에는 ‘가짜 친환경 에너지’라는 오명을 쓰며 국제사회 에너지 논쟁의 중심에 서는 신세가 됐다.

‘바이오에너지’ 대안 연료 아니다

바이오에너지 논란의 중심에 선 나라는 인도네시아다. 지구상 셋째로 산림을 많이 보유한 나라인 인도네시아는 바이오에너지 생산에 최적화된 곳으로, 세계 1위 바이오디젤 생산·수출국이다. 독일의 시장조사 업체인 ‘스태티스타’가 지난해 발표한 자료를 보면, 인도네시아는 2018년 기준 약 4060만t(톤)의 팜유를 생산하고 이 가운데 2930만t을 수출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지난해 경유에 팜유를 30% 이상 섞는 것을 의무화하는 ‘B30’ 제도를 도입했고 올해부터는 이 비율을 40%로 올릴 것이라고 예고했다.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B30을 선포하는 자리에서 “바이오디젤을 활용해 화석연료 의존에서 벗어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문제는 바이오에너지 생산 급증으로 산림 황폐화와 지역사회 파괴 문제가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팜유 생산 수익성이 높아지자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팜유 생산력이 높은 나라에서 기존에 있던 숲을 없애고 팜나무 심기에 나서고 있다. 이 때문에 기존 산림이 파괴되면서 생물 다양성과 선주민(원주민) 생활이 황폐화되고 있다. 기존의 나무를 팜나무로 바꾸기 위해 일부러 산불을 내기도 해 결국 탄소 배출량이 늘어난다는 지적도 있다. 팜유 활용을 감시하기 위한 네트워크인 ‘지속 가능한 팜유 산업 협의체(RSPO)’가 지난해 8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현재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에서 운영 중인 팜유 농장 면적의 4분의 3이 과거 멸종 위기 동물이나 식물이 서식하던 숲을 없앤 후 만들어졌다. 이 같은 이유를 들어 유럽연합은 2030년부터 팜유를 원료로 한 바이오디젤 사용을 금지하고, 2019년부터 8~18%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기로 했다.

석탄 대신 나무 태우면 친환경?

바이오에너지의 탄소 배출량이 화석연료보다 높다는 연구도 나오면서 국제사회의 ‘퇴출’ 목소리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2008년 과학저널 사이언스에 미국 프린스턴대와 아이오와대 공동 연구진은 ‘바이오에너지가 화석연료보다 더 많은 탄소를 배출한다’는 주장을 내놨다. 이들은 옥수수와 셀룰로오스를 이용해 바이오 에탄올을 생산하면 가솔린 생산 과정보다 탄소 배출량이 각각 93%, 50% 늘어난다고 했다. 비슷한 연구가 속속 쌓이면서 과학계에서는 ‘바이오디젤의 탄소 배출량이 높다’는 게 정설로 굳어지는 모양새다.

지난달 23일, 전 세계 과학자 500여 명이 공동으로 “바이오에너지 생산 과정에서 화석연료의 최대 3배에 달하는 탄소가 배출된다”면서 “바이오에너지는 친환경 에너지가 아니므로, 각국 정부가 이에 대한 지원을 중단해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내기도 했다. 팜나무 등을 심어 결과적으로 탄소 배출량이 줄어든다고 해도, 초기 팜유를 심거나 발전 원료가 되는 ‘우드펠릿(wood pellet)’을 만들기 위해 나무를 베어내고, 우드펠릿이나 팜유를 다른 나라로 수출하는 데 발생하는 탄소발자국을 생각하면 환경적 악영향이 더 크다는 뜻이다. 미국 환경단체 천연자원보호위원회(NRDC)가 지난해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바이오매스 발전의 경우 55년간 화력발전보다 탄소 배출량이 더 크다.

국내 상황은 국제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바이오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로 보면서 지원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은 바이오에너지 확대 속도가 가장 빠른 나라 중 하나다. 기후솔루션에 따르면, 2012년 10만6023MWh(메가와트시)에서 2019년 706만9877MWh로 증가했다. 매년 160%씩 높아지는 셈이다. 이는 정부의 ‘신재생 연료 혼합 의무화(RFS)’ 비율 향상 등 정책적 요인이 크다. RFS는 석유정제업자나 자동차가 경유에 일정 비율 이상 바이오디젤을 혼합하도록 의무화한 제도로, 정부는 오는 7월부터 현행 의무 비율을 3%에서 3.5%로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여기에 2012년부터 도입하고 있는 ‘신재생에너지 의무할당제(RPS)’도 한몫했다. 500㎿(메가와트)이상을 발전하는 사업자는 일정 비율 이상을 반드시 신재생에너지원에서 조달해야 하는데, 많은 발전 사업자들이 풍력·태양광 등 다른 재생에너지보다 편의성이 큰 바이오에너지 조달을 선호하기 때문이다. 김수진 기후솔루션 선임연구원은 “국내 바이오매스 발전은 대부분 ‘우드펠릿’이라고 하는 나무칩을 석탄에 혼합해 태우는 방식인데, 기존 석탄발전 설비를 그대로 쓸 수 있어 사업자 편의성이 크다”면서 “석탄 대신 나무를 섞어 태우는 건 석탄 발전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환경 단체들은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의 기준이 탄소 배출량 감소 여부가 아니라는 것을 문제 삼는다. 새로운 방식의 에너지원인지, 원료가 재생되는지를 기준으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현행법상 신재생에너지는 ‘신에너지’와 ‘재생에너지’를 아우르는 말이다. 신에너지는 ‘기존의 화석연료를 변환시켜 이용하거나 수소·산소 등의 화학반응을 통해 만들어진 에너지’이고, 재생에너지는 ‘햇빛·물·지열·강수· 생물 유기체 등을 포함하는 재생 가능한 에너지를 변환시켜 이용하는 에너지’다. 탄소 배출량 경감 여부 등은 고려 대상에서 빠져 있다. 김수진 선임연구원은 “재생에너지 중 바이오매스 의존도가 지나치게 높은 지금 상황에선 탄소 중립 달성은 어렵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국내 친환경 에너지 지원 정책이 국제적인 흐름에 맞게 바뀌어야 한다고 말한다. 김지석 그린피스 정책위원은 “탄소 발생 경감률 등 구체적 기준을 통해 친환경성 여부를 평가하는 방식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선하 더나은미래 기자 son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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