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유통업자는 9290원 받는데 만든 사람 손에는 130원뿐

1만5600원짜리 티셔츠 가격의 비밀

“당신의 옷이 어떤 공장에서 생산되는지 알아보세요. 당신의 옷 가격을 알려 드립니다.”

미국 온라인 의류판매회사 에벌레인(Everlane) 홈페이지의 메인 화면에 적힌 문구다. 하얀색 여성 티셔츠를 클릭하자 가격 밑에 제품이 생산된 공장 정보가 나타났다. “이 공장은 LA 사무실로부터 10분 거리에 있습니다. 공장 주인인 김 사장님은 LA 의류 산업 분야에서 30년 넘게 일했고, 이 공장을 2004년에 열었습니다. 생산 과정이 투명한 것을 확인하고, 니트 생산의 대부분을 이곳에 부탁했습니다.”

제품 설명 하단에는 옷이 제작돼서 소비자에게 전달되기까지 지출되는 모든 비용이 공개돼 있다. “면화 가격 2.75달러, 재단 비용 35센트, 바느질 1.35달러, 염색 50센트, 마무리 작업 1.25달러, 운송 50센트 등 티셔츠 원가는 총 6.75달러입니다. 중간 유통 비용을 더하고 나면, 최종적으로 당신은 15달러에 티셔츠를 구매하게 됩니다.”

에벌레인은 지난 5월부터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 정보와 옷 제작을 위한 모든 비용을 홈페이지에 공개하기 시작했다. 의류 생산 과정을 투명하게 알리기 위함이다. 벨기에의 고급 의류 사이트인 ‘아니스트바이(Honest By)’도 제품의 생산망과 가격을 사이트에 공개하고 있다. 옷을 만드는 과정까지 알려준다.

“해당 니트는 벨기에 베비코(Bewico)라는 회사의 18명 직원이 33분 동안 재단했고, 5명의 직원이 10분 동안 니트를 짜고, 5분 동안 다림질을 했고….”

지난 4월 1200명 이상 사망자를 낸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붕괴 사고 이후, 글로벌 의류 업계가 인식 개선에 나섰다. 소비자들에게 옷의 가격만 공개하던 기존 관행에서 벗어나, 옷이 제작되는 모든 과정과 비용들을 공개하기 시작한 것. 이들은 “생산자·노동자·운송업자 등 의류 제작 전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소비자 인식이 달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맥클린_그래픽_윤리적경영_폴로셔츠가격_2013

◇ 1만5600원짜리 폴로 셔츠의 비밀

우리가 입고 있는 옷의 ‘진짜 가격’은 얼마일까. 지난달, 캐나다의 컨설팅회사 ‘오루크그룹(O’Rourke Group Partners)’은 1만5600원짜리 폴로 셔츠의 원가를 계산했다. 1만5600원짜리 폴로 셔츠의 원가는 총 6310원. 원단 및 재단 비용으로 4100원, 운송비와 관세로 1150원이 지출된다. 구매대행(에이전시) 업체에 200원을 주고, 소모 부품 등 제조 간접비로 80원을 지출하고 나면, 780원이 남는다. 그중에서 공장 주인은 650원의 수익을 챙기고, 남은 130원을 노동자에게 지급한다.

공장 주인은 직원의 5배를 벌고, 노동자는 구매대행 업체보다 적은 돈을 번다. “불합리한 구조”라고 방글라데시 인권단체 보이스(VOICE) 총 디렉터 아흐메드 마흐무드(47)씨가 방글라데시 노동자의 현실을 지적했다. 그는 “방글라데시의 인건비는 세계에서 가장 싸고, 중국 인건비의 절반 수준”이라면서 “소비자들이 저렴한 티셔츠를 구매할 수 있는 것은 5400개 공장에서 400만명의 노동자가 적은 인건비를 받고 일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폴로 셔츠의 원가와 인건비를 분석한 캐나다 언론인 로즈마리 웨스트우드(Rosemary Westwood)는 “그동안 옷의 제조 과정에 관심 없던 캐나다 소비자들의 태도가 확연히 달라졌다”며 “소비자가 한 셔츠당 1만5600원보다 많은 돈을 지불할 때 진정한 변화가 이뤄진다”고 덧붙였다.

◇ 15만원짜리 고급 벨트의 인건비가 고작 700원

“원가를 최대한 절감할 수 있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하나는 가장 열악한 환경에서 생산하는 것이다. 임대료를 최대한 적게 내려면 가건물이나 지하로 들어가야 한다. 두 번째는 하도급 업체끼리 경쟁을 붙여서 최대한 낮은 가격에 제품을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하면 4만원짜리 제품을 1000원에 사는 것도 가능하다.”

30년간 제조업을 해온 국내의 한 의류 분야 사회적기업 대표의 말이다. 그는 “한국의 제조 환경도 방글라데시 상황과 다를 바 없다”고 설명했다. 15만원짜리 고급 벨트의 원가는 총 7000원. 가죽 원단 및 재단 비용으로 2500원, 벨트 버클 비용으로 2500원이 지출된다. 공장 주인이 1300원의 수익을 챙기고, 노동자에게는 700원이 돌아간다.

이 대표는 “유통업자는 7000원에 구입한 벨트를 매장에서 3만5000원에 팔고, 패션회사 브랜드가 붙으면 벨트 가격은 15만원으로 껑충 뛰어오른다”면서 “50만개를 주문하고 제품에 흠집이 있다며 갑자기 계약을 취소하는 업체들 때문에 문 닫은 공장도 많고,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들도 많다”고 덧붙였다.

공정무역 사회적기업인 ㈜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g:ru)’ 이미영 대표는 “공정한 임금이란 최소한의 의식주가 보장되는 수준을 말하는데, 노동자에게 모든 책임을 떠넘기려는 것이 문제”라면서 “바이어와 생산자가 적절한 원료 및 임금을 합의하는 문화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톰슨리서치_그래픽_윤리적경영_세계SPA업체매출순위_2013

◇ 글로벌 기업, ‘윤리적 경영’ 바람 부나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붕괴 사고 이후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이 확대되고 있다. 지난달 세계 2위 의류 유통업체인 스웨덴 H&M의 주도로 글로벌 기업 30곳은 의류 공장 환경을 개선하겠다는 협약을 맺었다. 이들은 방글라데시에 있는 의류 공장 5000여개의 화재 예방 및 공장 안전 기준 강화를 위해 매년 50만달러씩 5년 동안 갹출해 기금을 마련하기로 했다. 독일 유통업체인 C&A, 영국계 프리마크, 미국 패션업체인 캘빈클라인 등도 협약에 동참했다.

미국의 의류업체 ‘알타 그라시아(Alta Gracia)’는 윤리적인 생산 및 경영으로 명성을 얻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의류를 생산할 때, 노동자들에게 최저임금의 3배인 생활임금(Living wage)을 지불했기 때문. 알타 그라시아의 매출액은 약 4000억달러. 현재 800여 대학의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최근 미국 대학생들은 시애틀·LA·뉴욕 등 12개 도시에서 갭(Gap) 등 글로벌 의류 업체들을 대상으로 ‘방글라데시 노동 환경 개선’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이와 맞물려 노동자의 환경과 생활을 배려하는 알타 그라시아의 선호도는 더욱 높아지고 있다. 전명숙 전남대 경영대학 교수는 “다국적 기업의 생산 체제가 변화하면 전 세계 의류 공장 노동자들의 삶도, 개도국의 환경도 바뀌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정유진·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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