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Talk!
미국, 유럽 등 글로벌 기업들은 협력업체를 선정할 때 윤리경영을 비롯한 CSR(기업의 사회적책임) 측면을 면밀히 검토합니다. 베트남의 작은 직물업체였던 호 구암 가먼트(Ho Guam Garment)가 전체 생산량의 95%를 월마트, 시어스(Sears), 타켓(Target) 등 세계적인 유통기업으로 수출하게 된 비결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건비가 싼 베트남에서 윤리경영에 주의를 기울인 거의 유일한 직물업체였기 때문입니다. 반면, 국내 기업들은 해외 기업들의 이같은 조치에 “놀랍다”는 반응입니다. 윤리경영 등 CSR요소가 협력업체와의 거래를 재고하는 요소가 되는 것을 생소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일부 CSR 담당자들은 윤리경영을 강조하는 글로벌 기업에 “부럽다”는 목소리를 내비쳤습니다. CSR팀을 ‘돈 쓰는 부서’로 여기거나, ‘보여주기식 사회공헌’만 강조하는 기업 방침에 지친 탓이었습니다.
물론 동반성장과 상생이 화두로 떠오른 한국에도, 협력업체와 계약 시 CSR 요소를 고려하는 기업이 점차 늘고 있습니다. 2013년 글로벌 전자기업의 사회적책임연대인 ‘전자산업시민연대(이하 EICC)’에 가입한 SK하이닉스는 매년 각 협력사에 CSR 자가진단을 시행하고, 그 결과를 바탕으로 컨설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거래 중인 협력사가 윤리규범을 위반해 거래가 중단된 사례가 있다”면서 “사이버신문고나 핫라인(Hot-Line)에 접수된 내용을 바탕으로 징계위원회에서 심사, 최종 결정한다”고 전했습니다. 두산인프라코어는 지난해부터 협력사의 윤리경영, 노사관리, 환경관리 부분을 평가 항목에 추가했습니다. 협력사 전 직원을 대상으로 매년 1회 이상 윤리경영 교육을 실시하고, 필요시 매년 현장을 방문해 심사하고 있습니다. 한편, 서울시는 지자체로선 처음으로 올해 1월부터 시가 발주하는 공사·용역·물품구매 등 공공계약 시 협력업체의 CSR 이행자가진단표를 제출받고, CSR을 잘하는 곳에 최대 10.3점(100점 만점)까지 가산점을 주고 있습니다. 서울시 관계자는 “지난 3월 두 차례에 걸친 신규 용역 때 CSR 지표를 반영했는데, 작게라도 CSR을 실천하고 있는 업체가 대부분이었다”고 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은 협력업체의 CSR 문제를 나 몰라라 하는 대기업이 많은 것 같습니다. 지난주 지속가능보고서, 홈페이지 등에 ‘협력업체의 CSR 요소를 평가한다’는 내용을 게재한 주요 대기업 10곳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2004년부터 협력업체 CSR 평가제도(S-Partnership)를 도입한 삼성전기는 “아직 공개하기 조심스럽다”면서 부담스러워했습니다. “협력업체 선정 시 공정성과 투명성을 위주로 평가할 뿐 CSR을 고려하지 않는다”고 답변한 S-Oil 측은 CSR 개념을 사회공헌과 혼동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협력사 CEO의 기업관과 윤리관을 평가하는 것으로 알려진 S기업 관계자는 “CSR을 평가한다고 했다가 협력업체의 거센 반발로 사내 동반성장 게시판이 난리가 났다”면서 “중소기업에 CSR은 비용이고, 이를 평가하는 건 차별대우로 여기기 때문에 권장사항으로만 적용하고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협력업체의 제품, 서비스 문제가 터졌을 때 ‘모르쇠’로만 일관하는 기업 풍토도 이젠 바뀔 때가 됐습니다. 중소 규모의 협력업체가 인권, 환경, 안전 등 CSR 요소를 실천하려면 상당한 비용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들이 기업의 사회적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함께 고민하고 지원하는, CSR의 ‘동반성장’을 기대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