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ver Story] 세이브더칠드런 글로벌 콘퍼런스서 본 기업 파트너십 혁신 현장
“빈곤·교육문제, 기업과 NGO 홀로 해결 불가능… 협업 점점 늘어날 것”
“글로벌 기업의 사회공헌 흐름이 확 바뀌고 있다.”
국제구호개발 NGO ‘세이브더칠드런’ 최혜정(54) 마케팅본부장의 말이다. 그녀는 지난 6월 중순 영국 런던의 ‘글로벌 기업 파트너십 콘퍼런스(GCPC·Global Corporate Partnership Conference)’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다. 매년 열리는 이 콘퍼런스는 30개 회원국이 모여 최근 기업과 NGO가 어떻게 협업하는지 모델 사례를 공유하는, 세이브더칠드런 내부의 학습장이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전 세계 120여개 사업장, 159개 이상의 기업과 파트너십을 체결한 97년 역사의 NGO다. 기업들의 후원금만 1700억원(2014년)으로, 영국 내에서 모금액 기준 2위 단체다. 이 때문에 이 콘퍼런스는 글로벌 기업 사회공헌의 흐름, 세계 각국의 이슈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현장이다. 재작년에는 유니레버 부사장이 ‘공급망(value chain) 측면에서 원료 공급부터 생산, 판매 소비 전 과정에서 어떻게 CSR 활동이 전개되는지’를 발표했다고 한다.
NGO가 여는 콘퍼런스에 글로벌 기업 부사장이 직접 나와 사례 발표를 하는 모습을 우리나라에서는 상상조차 하기 힘들다. 하지만 글로벌 NGO에선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고 한다. 6조원의 사회공헌 비용을 쓰고도, NGO로부터 “갑질하는 기업” “NGO가 사회공헌 하도급 업체냐”라며 비판받는 한국 기업의 ‘파트너십 문화’에 주는 시사점은 없을까(2014년 전경련 사회공헌백서 기준, 주요 기업은 2조8000억원, 기업재단은 3조2000억원을 사회공헌으로 썼다).
지난 2일 최혜정 본부장을 만났다. 이어 리타 지로티(Rita Girotti) 세이브더칠드런의 글로벌기업파트너십 그룹(GCPG·Global Corporate Partnership Group) 대표를 이메일 인터뷰했다. 이들을 통해 글로벌 기업 파트너십 혁신 현장을 엿볼 수 있었다.
―이번 콘퍼런스에서 가장 화제가 되었던 핵심 주제는 무엇이었는가.
최혜정(이하 최)=’가치 공유 파트너십(Shared Value Partnership)’이었다. 예전에는 기업이 사회공헌 분야를 정한 후 파트너 NGO를 찾거나, 아니면 NGO가 기업을 찾아가 사업을 제안하는 식이었다. 하지만 최근 2~3년 새 기업과 NGO가 아예 ‘태스크포스팀’을 꾸려서 처음부터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는 사례가 무척 늘었다. 기업의 가치와 NGO가 추구하는 가치 중 공통된 가치를 찾아서 함께 협력하자는 취지다.
―가치 공유 파트너십은 무엇이며, 왜 필요한가.
리타 지로티(이하 지로티)=전통적인 사회공헌보다 한발 더 나간 형태다. 지금까지 기업에서 세이브더칠드런 글로벌 사업장을 방문해 자원봉사도 하고, 기업 임직원 기금 모금도 했다. 기업과 ‘공동 프로모션’을 통해 고객들을 세이브더칠드런 사업에 참여시키기도 했다. 최근에는 기업과 NGO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식, (유통) 물류나 IT 지원 등 각각의 전문성을 교환하는 방식으로 파트너십을 맺는다. 전통적인 기부가 아닌, 비즈니스 방식이다. 그 이유는 빈곤, 교육, 건강 등 엄청난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업이 매우 중요해졌고, 이 문제는 기업이나 정부, NGO가 단독으로 해결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방식은 기업에도 성장과 혁신을 이끄는 새로운 물결이 될 것으로 본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NGO는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서로 다른 집단이다. 가치(Value)를 공유한다는 게 말처럼 그리 쉽지는 않다.
최=가령 A라는 기업이 자신들의 가치를 ‘중·고생용 과학서적 출판전문업체’라고 규정하면, 이 회사의 목표는 과학책을 최대한 많이 팔아서 수익을 얻는 것이다. 하지만 ‘중·고생의 과학적 마인드를 높이는 것을 목표로 하는 회사’라고 가치를 규정하면 어떻게 될까.
저개발국가에 과학 교육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게 중요해진다. 어떤 기업이든 우리 사회에 미치는 가치가 있다.
―공유 가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전략적인 파트너십을 맺은 대표 사례가 궁금하다.
최=빌게이츠재단은 아프리카에서 영·유아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백신을 개발해왔다. 하지만 문제는 ‘온도에 민감한 백신을 어떻게 유통할 것이냐’이다. 아프리카에서 유통 채널을 가장 잘 갖춰놓은 기업은 어디일까. ‘코카콜라’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뭉친 기관이 무려 5곳이다. 빌게이츠재단은 리서치를 통한 백신 개발을 맡고, 코카콜라는 백신이 도달하기 어려운 오지(奧地)의 유통망과 마케팅 노하우를 제공한다. 액센추어 컨설팅사는 전체 프로젝트 관리를 맡고, 유에스에이드(USAID)와 글로벌 펀드(The global fund)는 자금과 인프라를 담당한다. 코카콜라 85주년이었던 2010년에 처음 파일럿 형태로 탄자니아에 500개의 의료 백신을 전달했다. 이후 이를 5000개로 늘리며, 가나와 모잠비크로 배분을 확대했다. 유통 비용은 25%나 절감됐다. NGO는 사업을 효과적으로 할 수 있었고, 기업도 자신의 전문성을 갖고 참여해 이 지역의 비즈니스 스킬을 키울 수 있었다.
―한국의 많은 기업도 정부 및 NGO와 파트너십을 맺고 사회공헌 활동을 하는 사례는 많다. 최근의 글로벌 기업 트렌드가 전통적인 방식과 가장 크게 다른 점은 무엇인가.
최&지로티=이전의 사회공헌은 이사회, 주주, 직원 등으로부터 ‘이 일을 우리 기업이 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도전을 계속 받아왔다. 기업 활동과 상관없다고 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일회적이고 단편적인 사회공헌이 많고, NGO와의 관계도 파트너가 아니라 후원자·수혜자의 관계였다. ‘공동의 목표’를 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공유 가치 파트너십’은 기업과 NGO가 공통된 핵심 성과 지표를 세운다. 글로벌 제약회사 글락소 스미스클라인(이하 GSK)과 세이브더칠드런은 2013년 공통의 목표를 세웠다. GSK는 신약 개발 R&D를 하고 싶어 했고, 세이브더칠드런은 최빈국의 신생아 사망률을 낮추고 싶었다. GSK는 신약 개발 투자를 확대, 100만명의 영·유아에게 이 혜택이 도달할 때까지로 목표를 세웠다. GSK는 폐렴 예방을 위한 아동친화적 항생제와 구강청결제 등 신약을 개발했고, 세이브더칠드런은 태어난 지 2주가 안 된 신생아에 이를 사용해 사망률을 낮췄다. 16개국을 통해 600만파운드(105억원)가 투자됐고, 수익의 20%는 보건 교육에 재투자해 1만명의 보건 전문 인력을 키워냈다. 이 사업은 아시아 미얀마에도 확대됐고, 나이지리아에도 확대될 예정이다.
―기업과 NGO를 각각 만나보면 서로에 대한 불만이 많다. 기업은 어디까지 개입해야 하는지, NGO는 어느 선까지 기업에 보고해야 하는지 등 파트너십에 관한 역할이 잘 정의돼 있지 않다 보니 생기는 문제다. 글로벌 기업과 NGO의 협업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는가.
최=2012년 세이브더칠드런은 ‘글로벌 기업 파트너십 그룹(GCPG)’을 설립하고, 아예 기업 파트너십 대상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정해놓았다. 4개 혹은 그 이상의 시장에서 모금 활동을 하는 기업일 것, 최근 3년간 매년 300만달러(35억원) 이상의 기부를 하는 기업일 것이다. 지난 6월에는 글로벌 기업 파트너십을 위한 아시아센터를 싱가포르에 오픈했다. 이는 단지 기부 금액 때문에 정한 기준이 아니다. 글로벌 규모가 가능할 때 할 수 있는 이슈나 미해결 문제를 체계적·전문적으로 함께 발전시키기 위해서다. 좋은 파트너십을 위해서는 사업을 시작하기 전 태스크포스팀을 꾸리는 등 셋업(set-up) 과정이 매우 중요하다. 세이브더칠드런은 이후 해결할 문제를 찾는 1단계부터 결과물 도출 계획을 세우는 6단계까지 총 여섯 단계 과정을 기본으로 한다.
―’공유 가치 파트너십’을 하려면 기업 내부의 협조 체제가 잘 이뤄져야 할 텐데, 내부의 협력을 어떻게 이끌어내는가.
최=한국의 한 기업 임원에게 이 얘기를 했더니, ‘공유 가치를 기업 내에서 어떻게 설득하느냐’고 묻더라. 그건 NGO가 기업한테 한두 장 제안서 써서 설정해줄 수 없는 것이다. 기업의 가치는 자신들의 존재 이유인데, 이걸 어떻게 외부에서 설득할 수 있나.
―어떤 기업들이 ‘공유 가치 파트너십’에 참여하고 있으며, 이들이 얻는 효과는 무엇인가.
지로티=불가리, GSK, 이케아재단, 유니레버, 액센추어, 존슨앤존슨, 프록터앤갬블(P&G) 등 9개 글로벌 기업이 세이브더칠드런과 장기 전략적 파트너십을 맺고 있다. 이를 통해 브랜드 명성을 높이고, 경쟁사와 차별화할 수 있으며, 지역 사회와 가치를 공유하고, 글로벌 사업장에서 일하는 임직원을 단합시키고, 이머징 마켓에서 판매를 늘리거나 투자를 확대할 수 있다.
―우리나라는 기업도, NGO도 ‘파트너십’과 ‘협업’이 익숙지 않은 문화인데, 앞으로 어떤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는가.
최=2010년 이후 UN 등 국제기구에도 공통으로 얘기하는 용어가 ‘임팩트(impact)’와 ‘가치(Value)’다. 저개발국에 학교를 하나 세워주는 데 그치지 않고, 아동의 교육과 삶의 질이 높아졌는지에 대한 변화를 추구하다 보니, ‘파트너십’이 가장 중요해지고 있다. 이제 우리나라 기업도 갑을 개념이 아니라 NGO와 전문적인 파트너로 함께 일한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NGO도 측정 가능한 목표 설정, 리서치, 사업의 효과성을 기업에 내밀 수 있어야 한다. NGO 스스로 ‘임팩트 보고서’를 낼 만한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
―최 본부장은 다국적 광고 회사인 레오버넷코리아 제작이사를 거쳐, 22년 경력의 광고계를 그만두고 2008년 비영리단체인 세이브더칠드런으로 옮겼다. GS홈쇼핑과 협업해 ‘신생아 살리기 모자 뜨기 캠페인’을 7년째 성공시켰다. 영리 기업에서 비영리 NGO로 옮긴 지 8년째인데, 좋은 파트너십을 위해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는가.
최=세이브더칠드런에 첫 입사 후 펀드레이징 국제 콘퍼런스가 열린 스웨덴에 갔을 때 일이다. 자기소개를 할 때 ‘저는 광고계에서 20년 넘게 일하다 NGO에 왔어요’ 했더니, 모든 사람이 뜬금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알고 보니 참석자 절반 이상이 광고나 마케팅 기업에서 일하다 온 사람들이었다. 우리나라는 영리와 비영리를 너무 경계 짓고, 사고방식과 일하는 방식도 크게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의 정체성은 NGO냐 기업이냐가 아니라, ‘아이들에게 긍정적 변화와 나은 세상을 만들어주는 기관’이다. 앞으로 3년 동안 ‘나도 학교 가고 싶다’고 외치는 소녀들이 왜 학교에 갈 수 없는지, 수많은 문제를 멋진 파트너십을 통해 해결해보고 싶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방식으로!(최 본부장은 최근 ‘스쿨미캠페인’의 일환으로 ‘아프리카 소녀를 위한 해결책 1·2’로 구성된 컬러링북을 출시, 액션서울, 교보문고와 함께 수익을 전액 기부하는 공익 연계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박란희 편집장
송선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