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1일(목)

“건물 무너진다” 해도 근무 강요… 밀어내기식 하도급이 낳은 최악의 人災

방글라데시 참사 근본 원인은

“건물 벽에 커다란 균열이 보였어요. 노동자들이 공장 입구에 모여서 ‘들어가지 않겠다’며 출근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생산관리 매니저가 ‘걱정 말라’면서 저희들을 억지로 건물 안에 밀어 넣었어요. 오전 8시 반, 일을 시작하자마자 ‘쾅’ 하는 굉음이 들렸습니다.”

지난 24일, 방글라데시 다카 메디컬 대학병원에서 만난 로지나(여·23)씨는 가늘게 떨고 있었다. “모두 거짓말이었어요.” 그녀는 감각을 잃은 왼쪽 다리를 쳐다보며 눈물을 훔쳤다.

사망자 1130명. 부상자 2500명. 방글라데시 사상 최악의 산업재해다. 지난 4월 24일 의류 공장 ‘라나플라자’가 무너져내렸다. 사고 발생 한 달이 지나도록 정확한 실종자 수가 집계되지 않을 정도다. 생존자들은 “공장주는 이미 알고 있었다”면서 ‘예견된 참사’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1 방글라데시 다카의 염료공장에서 한 어린이가 아무런 방호장비도 없이 염료를 사용해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2 지난달 24일 무너져 내린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참사 현장. /보이스(VOICE)제공
1 방글라데시 다카의 염료공장에서 한 어린이가 아무런 방호장비도 없이 염료를 사용해 작업을 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2 지난달 24일 무너져 내린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참사 현장. /보이스(VOICE)제공

◇ ‘사고’가 아니라 ‘살인’이다?

사건 하루 전부터 건물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지난달 23일 화요일 오전, 빌딩 외벽에 금이 간 것을 발견한 노동자들이 건물 밖으로 달려나갔다. 몇 시간 뒤, 신고를 받고 출동한 산업경찰관이 건물 상태를 점검한 후 공장 가동을 중지할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공장주들은 “내일 일하지 않으면 3일치 월급을 깎겠다”며 출근을 강요했다고 한다. 참사 현장에서 만난 카디자(여·18)씨는 “사고가 이미 5년 전부터 예견됐다”면서 “라나플라자 건물이 원래 5층으로 지어진 건물인데, 5년 전부터 불법으로 3개 층을 증축했고, 건축법상 허용되지 않는 질 나쁜 콘크리트, 철근을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사건 당일 건물이 무너지는 것을 발견하고 창문으로 나가 가까스로 목숨을 구했다.

인구에 비해 땅이 좁은 방글라데시는 주로 큰 연못을 메워 그 위에 건물을 세운다. 지반이 약하다는 얘기다. 라나플라자는 땅을 메우는 과정에서도 건축법상 압축 기준을 위반했다. 건물도, 땅도, 옥상에 설치된 거대한 발전기 4대를 지탱하기엔 역부족이었다. 1000명 이상의 사상자를 발생시킨 라나플라자 건물 소유주와 공장주 12명은 ‘고의 살인죄’ 혐의로 체포돼 경찰의 조사를 받고 있다.

◇ 꼬리 잇는 하도급 구조…“노동자는 운다”

Womenworkingworldwide_그래픽_노동착취_GAP의생산공급과정_2013

건물 붕괴가 예견됐는데도 공장 가동을 강행한 이유는 무엇일까. 전문가들은 “공장주 잘못도 있지만, 하도급 구조를 생산하는 글로벌 의류 브랜드들에 근본적인 책임이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방글라데시에는 약 4500개의 의류 공장이 있다. 이곳에서 350만명의 노동자가 연간 180억달러(약 20조원)를 수출한다. 최근 중국의 인건비가 상승하면서 글로벌 의류 브랜드들이 방글라데시로 옮겨왔기 때문이다. 지난달 무너져내린 라나플라자도 월마트, 프라이마크, 타미힐피거, H&M에 물품을 납품하고 있었다.

방글라데시에서 15년간 의류공장을 운영해온 한 사장은 “글로벌 브랜드 바이어들은 개발도상국에 있는 의류공장에 하도급을 주고, 공장들에 ‘더 싼 가격에, 질 좋은 제품을, 더욱 빠르게 생산하라’는 압력을 가한다”고 하소연했다. “공장들은 바이어가 요구하는 기한 내에 생산이 어렵지만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 작은 규모의 하도급 공장에 하도급을 줘서 납기일을 맞춘다”고도 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하도급은 결국 인건비 절감을 위한 노동력 착취로 이어진다. 현재 방글라데시 의류 노동자들의 임금은 약 4만3000원 수준. 이마저도 지난 2010년 근로자들이 시위를 벌여 80% 인상한 임금이다. 전명숙 전남대 경영학과 교수는 “갭(GAP)을 예로 들면, 개발도상국 전역 수백개의 의류 공장에 하도급을 주는데, 아웃소싱 업체를 따로 두기 때문에 하도급 공장과 갭(GAP)이 계약할 일이 없다”면서 “언제든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도급 구조를 개선할 필요 없이, 문제가 발생한 개도국에 하도급을 끊으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 3월 방글라데시 철수를 발표한 월트디즈니를 비롯, 타겟(Target)과 나이키도 방글라데시 공장 숫자를 줄였다.

◇ 소비자에게도 책임이 있다

사람들은 티셔츠 하나를 볼 때도, 가격·색상·질·세탁 방법 등을 면밀히 따져 구매한다. 그러나 티셔츠를 만들고 있는 노동자는 누구이고, 이들의 근로 조건이 어떠한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하용만 아름다운가게 홍보팀장은 “자라, 유니클로, H&M, 갭(GAP) 등이 전 세계에 공장을 확대하게 된 것도, ‘패스트 패션’에 소비자가 반응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자라, 유니클로, H&M의 국내 매출액 합계는 전년보다 60% 증가했다(금융감독원 전자공시).

한편 방글라데시 의류 공장 참사를 계기로 변화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사고 이후 라나플라자로부터 제품을 납품받은 브랜드 프리마크, 베네통, 망고 등의 페이스북엔 ‘다른 브랜드의 옷을 입겠다’는 소비자의 경고 메시지가 급증했다. 미국 청년들은 1990년대부터 ‘스웨트숍 반대운동(Anti-Sweatshop movement)’을 전개했다. 이는 5년 뒤 미국에 13세 이하의 아동노동금지, 지역 실정에 맞는 임금 지불 등의 행동 규칙을 수립하는 성과를 가져왔다.

이미영 (주)페어트레이드코리아 그루 대표는 “최근 바이어와 생산자가 노동 기준을 합의하는 공정 무역 세션이 활발해지고 있다”면서 “이젠 소비자들도 저렴한 제품 뒤에 숨겨진 근로자들의 눈물을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유진 더나은미래 기자
다카=주선영 더나은미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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