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가능한 개발, 변화의 현장⑤ 아프리카 말라위
NGO 중심 사업 벗어난 현지 주민 중심 개발 성과
치오자 마을_2011년 버섯 재배 시작 버리는 옥수숫대 활용 등 친환경 적정 기술로 성공
치무트 CDC 조합원_전문가에 경작 지도 받고 재배한 옥수수 팔아 소득 가게 열고 자녀 학교 보내
붉은색 흙더미 위로 빗방울이 후드둑 떨어졌다. 땅으로 스며든 빗물은 10분도 안 돼, 물웅덩이를 만들었다. 진흙탕이 돼버린 땅 위로 푸른 옥수수밭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보기와는 달리, 지금이 1년 중 가장 배고픈 시기예요.” 김선 굿네이버스 말라위 지부장이 옥수수밭을 가리키며 입을 열었다. “4월에 수확한 옥수수가 다 떨어질 시점”이란다. 치오자 지역 주민들의 한 달 평균 소득은 17달러.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생활하는 주민이 75%를 넘는다. 반면 물가는 높다. 한 끼 식비가 0.5달러, 신발 한 켤레가 20달러, 책 한 권이 10달러에 달한다. 인구의 85% 이상이 농사를 짓는 나라 말라위. 우기철에도 농부들은 배가 고프다.
◇현지 맞춤형 개발, ‘적정 기술’
세차게 퍼붓는 소나기 사이로 흥겨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치오자 마을 창고에 들어서자,’이달의 수확왕’으로 선정된 세파니(33)씨가 덩실덩실 몸을 흔들고 있었다. 세파니씨는 지난 2011년 6월부터 느타리버섯 재배를 시작했다. 굿네이버스로부터 버섯 종균과 배지(버섯 배양을 위해 사용되는 영양물질)를 공급받고, 재배 노하우를 교육받았다. 1년 후, 성과는 놀라웠다. 1년 동안 옥수수를 키워 벌어들인 수익(4만5000콰차·18만원)보다 버섯 재배를 통한 소득(5만콰차·20만원)이 더 높았다. 세파니씨는 “버섯은 건기, 우기 상관없이 연중 내내 재배할 수 있어서 수입이 안정적이다”면서 “자녀 4명이 학교에 가게 됐고, 비누(50콰차·200원)를 살 수 있어서 깨끗한 옷을 입게 됐다”며 환하게 웃었다.
굿네이버스는 지난 2011년부터 치오자 마을의 약 50가정을 선정해, 버섯 재배 사업을 시작했다. 마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자연 재료를 활용했다. 주민들은 수확 이후 버려지는 옥수숫대 줄기를 엮어 버섯 배지를 만들었다. 비닐하우스는 쓰러진 대나무를 활용했고, 적정 온도 유지를 위해서는 옥수수 숯을 사용했다. 벌목이 금지된 말라위에서 옥수수로 만든 배지와 숯은 연료비 절감은 물론 친환경적인 ‘적정 기술’이었다. 이들이 수확한 느타리버섯은 시장은 물론 유명 레스토랑에도 판매되고 있다. 김 지부장은 “수확한 당일 판매가 원칙이라, 신선하고 맛이 좋아 인기가 많다”면서 “올해는 버섯 재배만으로 1가구당 월 150달러 소득을 얻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현지 자립형 교육, 달라진 주민들
말라위의 수도 릴롱궤로부터 42㎞ 떨어진 카추마(Cathuma) 지역으로 들어갔다. 20평 남짓한 교실 안에 15명의 주민이 빙 둘러앉아 있었다. “구호와 개발의 차이가 뭘까요?” 김 지부장이 질문을 던지자, 주민들이 손을 번쩍 들었다. “구호는 일시적으로 주고 끝나지만, 개발은 오랜 기간 커뮤니티를 기반으로 이뤄진다” “구호는 기부자가 주도하고, 개발은 주민들이 직접 주도한다” 등 다양한 답변이 쏟아졌다. 김 지부장은 “주민들의 인식 개선이 급선무였다”면서 교육을 시작한 이유를 설명했다. 말라위는 지난 50년간 해외 원조에 의존해왔다. 많은 국제 NGO들이 말라위를 다녀갔지만, 식량이나 구호 물품을 단순 지원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공짜’에 익숙해진 주민들은 스스로 일할 기회를 놓쳤고, 자립 방법을 잊어버렸다. 50년이 지난 지금, 말라위 정부 예산에서 해외 원조로 이뤄지는 비중은 40%를 차지한다. 반면, 굿네이버스는 지역개발사업에 주민들을 참여시키고, 이들이 마을 개발을 주도하도록 한다. 마을 주민들로 구성된 지역개발위원회(Community Development Committee·이하 CDC)가 사업 목표, 내용, 방법, 시기 등 모든 것을 결정한다. 굿네이버스는 뒤에서 서포트(지원)만 한다. 김 지부장은 “주인의식이 생기자, 주민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면서 한 가지 에피소드를 전했다. “지난해 치오자 지역개발위원회가 굿네이버스 사무실로 돈을 들고 찾아왔어요. 주민들로부터 유치원 급식비의 10%를 받아 적립해온 마을 기금이었죠. 치오자 지역 내 15개 유치원 학부모들이 ‘협동 경작’을 하기로 결정했으니, 좋은 비료를 자기들에게 팔라고 하더군요. 공짜로 달라는 게 아니었죠. 공동 경작할 땅은 치오자 마을 추장에게 기부받았대요. 경작 소득은 전부 치오자 마을 유치원 어린이들을 위해서만 쓴다고 하더군요. 똘똘 뭉쳐 마을의 자립을 고민하는 그들 모습에 감동했습니다.”
◇말라위에 싹튼 ‘협동조합’, 소득 증대 이뤄
므렌가(30)씨는 지난 2010년 6월, 치무투(Chimutu) CDC의 조합원이 됐다. 초기 자본이 전혀 없던 므렌가씨는 CDC로부터 옥수수 씨앗과 비료를 일단 무료로 지원받아 경작을 시작할 수 있었다. 말라위 농림부에서 파견 나온 전문가로부터 경작 방법도 세밀히 지도받았다. 대신 수확한 이후에는 씨앗과 비료 값에 해당하는 옥수수 7가마를 조합에 반납했다. 가족들이 한참을 먹고도 10가마가 남았다. 추수 시기가 한참 지난 뒤, ‘보릿고개’ 무렵에 옥수수를 팔았더니 평소보다 배를 벌었다. 므렌가씨는 이 돈으로 과자, 비누 등을 파는 잡화점을 열었고, 그의 두 자녀는 학교에 갈 수 있게 됐다. 이 마을의 조합원은 총 200명. 이들이 치무투 CDC에 반납한 옥수수들은 마을 개발을 위해 사용됐다. 치무투 CDC 개발위원장인 보츠마니씨가 마을의 소득 증대 현황을 설명했다.
“조합원으로부터 돌려받은 옥수수 1400가마 중에서 480가마를 판 수익금으로 교실, 창고 등 건물들을 보수했습니다. 또 고등학교를 졸업한 마을 청년 9명을 조합 직원으로 고용해서, 조합원들의 집을 1년에 3번씩 방문하도록 했어요. 이들은 각 가정의 어려움을 살피고, CDC의 발전 방향을 연구하는 역할을 하죠. 남은 옥수수는 겨울에 1가마당 3500콰차(1만4000원)에 팔아서, 마을 기금으로 적립했습니다. 옥수수를 7가마 이상 반납한 주민들은 그에 비례하는 수익금을 배당받아, 더 많은 돈을 저축하기도 했죠.”
김 지부장은 “올해부터 WFP가 치무투 CDC의 옥수수를 시가보다 높은 가격에 사서, 말라위나 기타 다른 나라 기업들에 판매하기로 약속했다”고 전했다.
‘물질’이 아닌 ‘사람’을 중심에 둔 개발. NGO가 아닌 현지 주민이 중심에 선 개발. 당장의 배고픔과 아픔을 걱정하던 말라위 주민들도 이제 당당히 꿈을 꾸기 시작했다.
릴롱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