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5월 8일(수)

“상처받기 싫어 관심 차단… 원래부터 무기력한 아이는 없어요”

대안학교 ‘성장학교 별’ 이끌어 가는 김현수 원장

“슬픈 사람들에겐 너무 큰소리로 말하지 말아요. 마음의 말을 은은한 빛깔로 만들어 눈으로 전하고 가끔은 손잡아 주고 들키지 않게 꾸준히 기도해주어요.”

이해인 수녀의 시 ‘슬픈 사람들에겐’의 첫 구절이다. 마음이 아프고 상했을 때, 우리는 다그치거나 가르치는 사람이 아니라 조용히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가족과 친구가 필요하다. 마음이 아프고 상한 청소년들에게 그렇게 어깨를 빌려주고 손을 잡아주는 학교가 있다. 바로 대안학교인 ‘성장학교 별’이다.

“예전엔 불행했는데 지금은 행복하다”는 준혁이(16). ‘성장학교 별’에 다닌 지 1년이 지났다. 왜 불행했는지 물어보자, 학교에서 친구들과의 관계가 힘들었단다. 아직도 준혁이는 그 시절이 편하지 않은지 고개를 돌린다.

이제는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극복하며, 다른 친구들의 상처까지 이해하고 품는‘넉넉한 별’로 성장하고 있는‘성장학교 별’학생들. 가운데가 학교를 시작한 김현수 원장이다.
이제는 자신의 상처를 조금씩 극복하며, 다른 친구들의 상처까지 이해하고 품는‘넉넉한 별’로 성장하고 있는‘성장학교 별’학생들. 가운데가 학교를 시작한 김현수 원장이다.

상윤이(13)는 “60억명 중의 하나에 불과한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스스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법을 배웠다”고 대견하게 말했다.

학부모 김보영(44)씨는 “따돌림 때문에 위축되어 있던 아들 동우(15)가 ‘성장학교 별’에 다닌 후로 밝아졌다”고 했다.

“예전엔 너무나 우울하고 무기력한 모습이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밝고 적극적이에요. 수업 발표회 때도 어찌나 씩씩하던지…. 심부름 하나도 싫어하던 애가 요즘은 음식물 쓰레기 버리는 건 으레 자신의 일로 여겨요.”

학교폭력, 따돌림, 우울증,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 등 다양한 어려움과 상처를 품었던 아이들. 이 아이들은 ‘성장학교 별’에서 자신의 상처를 들여다보는 법, 그 상처를 싸매는 법,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바라보고 어루만져 주는 법을 배우고 있다.

‘성장학교 별’을 시작해 꾸려 나가는 사람은 신경정신과 의사이기도 한 김현수(44) 원장이다. 자신이 어린 시절 겪었던 상처들이, 다른 사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람으로 키웠다고 했다. 가난한 달동네에서 자란 기억, 특히 중2 때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하면서 몇 개월간 가족들과 떨어져 친척집을 전전했던 기억, 학교 상담 선생님들에게 마음을 열면서 위로를 얻고 꿈을 갖게 되었던 기억 등.

“그런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아이들의 상처와 힘든 삶의 얘기를 들을 때, 남 일 같지 않다”는 김현수 원장은 2002년 ‘성장학교 별’을 시작했다. 매달 200명의 청소년 환자들을 상담하면서, “아예 이 아이들이 서로 상처를 나누고 치유하며 자신의 빛을 찾아가게끔 돕는 공간이 필요함을 느껴서”다.

‘성장학교 별’에는 매 학기 40~50명의 학생들이 다닌다. ADHD, 무기력증, 지적장애, 왕따 등 ‘성장학교 별’을 찾는 이유는 다양하다. 분노조절수업, 갈등해결수업, 자유글쓰기수업, 프로젝트활동 등 교과목도 여느 학교와 다르다. 이보경(30) 교사는 “각각의 학생들이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것이 목적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교실 복도 여기저기에는 ‘욕을 하면 사랑한다, 미안하다를 50번 말해야 한다’ 등 아이들이 스스로 정한 규칙들이 붙어 있었다. 아이들의 마음 성장을 위해, 이 학교에서는 부모 교육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게으른 아이도, 못난 아이도 없습니다. 게을러졌다는 것은 상처를 받아서 의욕이 사라지고 무기력해진 것입니다. 자신의 상처가 더 깊어질까 봐 스스로를 보호하다 보니 모든 것에 관심과 열정을 잃어버리게 된 것입니다.”

김현수 원장은 다양한 마음의 병을 앓고 있는 청소년들을 위해 부모와 사회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누구나 상처를 입습니다. 문제는 상처를 어떻게 치유하느냐, 극복하느냐입니다. 자녀의 상처가 곪아 터지기 전에, 상처를 드러내도 비난받지 않는 문화를, 오히려 서로 격려하고 응원하는 문화를 가정 안에 세워나가야 합니다.”

그는 “너무 상처 입어서 손을 뻗을 힘도 없는 아이들에게 어른들이 먼저 다가가고 손을 내밀어 주기를” 간곡하게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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