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0일(토)

[Cover story] 김만갑 교수·굿네이버스 개발… 대한민국 적정기술제품 1호 ‘G-Saver’

추위는 물론 가족의 삶까지 데워주는 ‘적정기술’

다섯 아이의 아버지, 푸릅돌찌(43)씨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 몽골 울란바토르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인 하일라스트 지역. 언덕 꼭대기에 위치한 그의 집까지 가는 길 내내 몇 번이고 거친 숨을 몰아 쉬며 주저앉았다. 하지만 투덜거릴 수는 없었다. 주민의 60% 이상이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이곳에서, 아이들은 매일 이 언덕길을 오르내리며 물을 길으러 다닌다. 언덕, 언덕마다 몽골 전통 가옥인 ‘게르’와 판잣집이 가득한 모습은 1970년대 우리나라의 달동네를 떠올리게 했다.

푸릅돌찌씨는 초등학교 경비 일을 하며, 노모와 다섯 아이를 부양하고 있다. 한국에서 손님이 온다고 들뜬 푸릅돌찌씨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G-Saver 덕에 올해 아빠 노릇을 제대로 했다”며 고마워했다. ‘G-Saver’는 기온이 영하 40도까지 내려가는 겨울이 1년 중 8~9개월이나 이어지는 몽골의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 축열 난방 장치다. 열원(熱源) 보존시간을 연장해줄 뿐만 아니라, 매연 또한 감소시키는 효과가 있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기술인‘적정기술’이 몽골 울란바토르시 하일라스트 마을에 사랑과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적정기술제품,‘ G-Saver’를 안고 있는 사람이 푸릅돌찌씨, 그 오른편에서 아이를 안은 채 활짝 웃는 사람이 이 제품을 개발한 김만갑 교수다.
가난한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을 위한 따뜻한 기술인‘적정기술’이 몽골 울란바토르시 하일라스트 마을에 사랑과 행복을 선물하고 있다. 적정기술제품,‘ G-Saver’를 안고 있는 사람이 푸릅돌찌씨, 그 오른편에서 아이를 안은 채 활짝 웃는 사람이 이 제품을 개발한 김만갑 교수다.

“매년 겨울 들어가는 연료비 때문에 1년 내내 허리가 휘었어요. 연료를 안 때면 얼어 죽으니, 나무와 석탄은 어떻게든 마련해야 하죠. 그래서 빚을 질 때도 많고, 연료비 때문에 가족들 먹을 것도 장만 못 할 때가 다반사죠. 그런데 새 난방장치 덕분에 연료비가 절반으로 줄어 제가 우리 아들딸들 공책·연필·신발까지 사줬다니까요.”

푸릅돌찌씨는 그동안 아빠 노릇 제대로 못 했다며 목이 멨다. 어느새 아빠 곁으로 온 둘째 딸 체르마(14)는 “아빠가 이번에 학용품을 사 주셔서 학교 가는 게 더 좋아졌다”며 배시시 웃는다. “난로에 나무를 한가득 넣어 불을 피워도 3시간쯤 지나면 꺼지는 통에 그 추운 새벽에 일어나 불을 때야 했다”는 큰아들 비얌자르갈(18)은 “G-Saver를 설치한 후로는 난방이 6시간 넘게 유지돼서 푹 자도 된다”고 좋아했다.

‘G-Saver’라는 축열 난방 장치를 개발해 가난한 사람들의 집뿐 아니라 삶까지 따뜻하게 데워준 사람은 한국인 김만갑(54) 교수다. 2008년부터 지금까지 KOICA(한국국제협력단) 전문봉사요원으로 몽골 국립과학기술대학교 건축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는 1년 전 이맘때 몽골의 삶이 한창 외롭고 힘들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까 고민하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결심’을 앞둔 어느 날, 가난한 환경에서도 열심히 공부하던 한 학생이 한국어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했는데, 순간 목이 메 울었다고 했다. 이야기를 하면서 다시 눈물이 그렁거렸다.

미상_사진_적정기술_G-Saver_2010“제가 그때 부끄러워서 운 거였습니다. 한 것도 없는데 고맙다고 하니 말이죠. 내가 봉사한다고 오긴 왔지만, ‘정말 사랑하는 마음이 맞나’ 돌아보게 되더라고요. 조금 힘들다고, 조금 불편하다고 돌아갈 궁리를 하며 투덜대던 건 아니었나 반성하게 되었죠.”

그날부터 김만갑 교수의 ‘몽골 추위와의 전투’가 벌어졌다. 너무 춥다고 투덜대던 모습에서 이 추위 속에 얼어 죽고 배고파 죽는 사람들을 어떻게 구할까를 고민하는 모습으로 바뀌었다. 그렇게 1년여의 연구와 시행착오 끝에 대한민국 적정기술 제품 1호, ‘G-Saver’가 탄생했다. ‘적정기술’이란 저개발국, 저소득층, 소외계층의 빈곤 퇴치와 지역사회 개발, 삶의 질 향상 등을 위해 개발된 기술을 의미한다. 저개발국, 저소득층을 둘러싼 환경과 상황에 ‘적정’하고, 저개발국, 저소득층이 구하기에 ‘적정’한 재료이자 ‘적정’한 가격이면서, 빈곤·질병·물 부족 등 그들이 처한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적정’한 기술인 셈이다.

‘G-Saver’의 원리는 기존 난로 위에 열 재료를 흡수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장치를 설치해 열원을 보존하는 것이다. 지난 1년간 설계와 제작만 50여 차례를 반복했다. 정해진 실험실이나 실험 대상이 있는 것도 아니니, 이 게르, 저 게르를 찾아다니며 실험했다. 추운 겨울, 밖에서 실험하느라 손발이 꽁꽁 얼곤 했다. 지난 겨울 하일라스트가 속한 행정구 ‘칭길테’구의 적극적인 도움과 국제구호개발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지원으로 100가정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도 실시했다. 하일라스트의 동장 자르갈새항(35)씨는 “울란바토르시에서도 신경 쓰지 않는 우리 마을을 위해 한국에서 온 교수님과 NGO가 일을 한다는 게 너무 감사하고 한편으론 부끄러워 제 일인 양 열심히 도왔다”며 영하 40~50도에서 집집을 돌며 시범 운영하던 몇 달 전을 떠올렸다.

김만갑 교수와 ‘굿네이버스’는 적정기술제품 1호, ‘G-Saver’의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몽골에 첫 번째 사회적 기업을 세우는 셈이다. 사회적 기업화를 통해 일자리를 만들고, 저소득층의 추위 문제를 해결하고, 수익환원을 통한 지역사회개발 기여를 꿈꾼다. ‘적정기술은 현지인과의 합작품’이라는 굿네이버스 대외협력팀 이성범(34) 팀장은 “그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답은, 그 안에서 삶을 살아내는 현지인에게서 나온다는 것을 깨달았다”며 “우리가 좀 더 잘산다고 우리의 관점이나 우리의 방식을 고집하면 절대로 답을 얻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불볕더위로 숨이 막히는 한국과 달리, 몽골은 벌써 겨울의 기운이 느껴졌다. 울란바토르시에만 몽골 전통 가옥 ‘게르’에서 사는 사람은 80만명에 달한다. 그들의 올겨울이 우리나라 사람들의 도움으로 좀 더 따뜻해지길 희망한다.

→ ‘G-Saver’란

‘G-Saver’의 원리는 기존 난로 위에 열 재료를 흡수하는 물질로 이루어진 장치를 설치해 열원을 보존하는 것. 지난 겨울 하일라스트가 속한 행정구 ‘칭길테’구의 적극적인 도움과 국제구호개발단체인 ‘굿네이버스’의 지원으로 100가정을 대상으로 시범 운영도 실시했다.
※굿네이버스(www.gni.kr)를 통해 몽골의 ‘가난한 겨울’을 도울 분들은 (02)1599-0300으로 연락하면 됩니다.

울란바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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