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7일(토)

공기업들 ‘인권경영’ 본격화… 35곳 중 7곳이 ‘2단계’ 인권 영향 점검 돌입

‘인권경영’을 위한 공기업들의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지난 8월 정부가 향후 5년간의 인권 정책을 담은 ‘제3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NAP)’을 확정하며 ‘기업과 인권’ 항목을 신설한 데 이어, 같은 달 국가인권위원회가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을 공표하며 인권경영 이행 계획서를 제출하라고 요구함에 따라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공기업들이 가장 신경 쓰는 ‘공공기관 경영 평가’에도 인권경영 점수가 포함됐다. 올해 평가부터 배점이 확 높아진 사회적가치 항목에 인권경영이 반영된 것이다.

인권경영이란 ▲기업 운영 ▲사업 실행 ▲이해 관계자(임직원, 지역 주민, 협력사)와 소통하는 데서 인권을 보호하고 존중하는 것을 말한다. 국가인권위원회가 내놓은 공공기관 인권경영 매뉴얼은 꽤 구체적 내용을 담고 있다. ▲인권경영 체계 구축(1단계) ▲인권 영향 평가 실시(2단계) ▲인권경영 사업 실행·공개(3단계) ▲구제 절차 제공(4단계) 등으로 인권경영 절차를 소개한다. 전담 부서를 꾸리고, 기업 운영과 사업에 대한 인권 영향 평가를 거친 뒤, 이 모든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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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나은미래는 우리나라 공기업 35곳을 대상으로 인권경영 준비 현황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절반 이상이 1단계인 ‘인권경영 체계 구축’ 단계를 밟고 있었다. 전담 직원이나 부서를 지정해 직원 교육을 하거나 인권경영 지침이나 선언문을 만들어 공표하는 단계다. 대체로 사회적 가치 전담 부서나 혁신·동반성장 관련 부서가 인권경영을 담당하고 있었다. 신년 조직 개편 때 인권경영 전담 부서를 새롭게 만든다는 응답도 있었다.

인권경영 관련 별도 의사결정 기구를 꾸린 기업도 9곳이나 됐다. 한국도로공사, 한국수자원공사, 한국토지주택공사(LH), 한국관광공사, 한국수력원자력, 한국조폐공사, 한국서부발전, 한국전력기술, 한국석유공사 등이 임직원과 인권 전문가, 협력사 등으로 구성된 ‘인권경영위원회’를 새롭게 조직했다고 밝혔다.

1단계를 넘어 2단계 ‘인권영향평가’에 진입한 공기업은 총 7곳이었다. 기업 운영과 주요 사업이 인권에 미치는 영향을 점검하는 단계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는 협력업체 근로자의 임금을 보장하는 ‘용역 계약 일반 조건’ 등 20건의 내부 사규와 지침을 인권 친화적으로 재정비했다. 한국조폐공사는 내부에 TF 형태로 별도 회의체를 구성해 각 부서의 인권 실태를 파악했다.

그랜드코리아레저(GKL)는 지난 10월 온라인에 ‘인권침해 신고’ 페이지를 신설했다. 성별이나 장애, 성적 지향 등으로 차별이나 인권침해를 당한 신고가 접수되면, 인권 담당 부서장을 거쳐 인권경영 위원들이 사장에게 시정이나 신고를 권고한다. 이 밖에 ‘갑질 피해 신고센터’ ‘성희롱·성폭력 고충처리위원회’ 등 기존 구제 제도와 연계하는 곳도 있었다.

인권경영은 전 세계적으로도 이미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영국, 독일 등 30국이 기업과 인권에 관한 NAP를 수립 또는 추진하고 있으며,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다국적 기업 가이드라인’, 유엔의 ‘유엔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등도 인권경영을 기업의 국제적 기준으로 제시하고 있다.

문형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려야 할 기본적인 자유와 권리로, 공기업뿐 아니라 모든 조직이 인권경영을 실천해야 한다”며 “제도나 평가 등 형식에 얽매이지 말고, 직원과 이해 관계자를 인간으로서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하면 된다”고 말했다.

 

[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 honey@chosun.com]

[한승희 더나은미래 기자 heehan@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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