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제3섹터는 정부(제1섹터)와 시장(제2섹터)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공익’의 영역을 담당해 왔다. 올해는 제3섹터에 대한 정부 지원이 쏟아지면서 생태계가 크게 확장됐다. 내년에는 양적·질적으로 더욱 커다란 변화가 예상된다. 현장 활동가 100여 명이 주목한 내년 트렌드를 바탕으로 키워드 10개를 골랐다.
#시민력(力)
소수의 리더가 세상을 움직이는 시대는 지났다. 시민 한 사람 한 사람의 힘, 시민력(力)이 중요한 시대가 왔다. 정부나 기업은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의 힘을 빌리고 있다. 시민은 적극적으로 정부나 지자체에 정책 의제를 제안하고, 더 나아가 직접 예산을 편성하거나 정책 결정에 참여하기도 한다. 서울시가 집행하는 시민 참여 예산만 2018년 기준 한 해 700억원 규모에 이르는 상황. 2019년은 더 강력해진 시민력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한 해가 될 것이다.
#굿 굿즈(Good Goods)
스타의 사진을 넣은 머그잔이나 티셔츠 등의 상품을 흔히 ‘굿즈’라 부른다. BTS굿즈, 엑소 굿즈 등이 대표적이다. 최근에는 밀레니얼 세대를 중심으로 ‘착한 굿즈’를 뜻하는 굿 굿즈에 대한 관심이 확산하고 있다. 환경적으로 좋은 의미를 가졌거나 사회 참여의 의미가 담긴 굿 굿즈를 구매하면 소비자인 동시에 기부자가 되는 흐뭇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특정 프로젝트를 지원하면 굿 굿즈를 제공하는 방법으로 기부자를 모으는 비영리단체들도 있다. 굿 굿즈의 수요와 공급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블록체인(Blockchain) 기부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기부가 여러 가지 형태로 시도될 전망이다. 블록체인 기술의 최대 장점인 ‘조작 불가’는 기부 체계의 투명성 확보 과제를 말끔히 해결한다. 블록체인 기반의 기부 플랫폼을 통하면 내가 낸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됐는지 상세하게 알 수 있다. 블록체인의 ‘트래킹(tracking·추적) 기술’ 덕분이다. 중국 ‘앤트 파이낸셜’은 기부자가 기부금 이력과 사용 현황 등을 추적하는 서비스를 내놨고, 미국 스타트업 ‘벡스트360’은 블록체인 기술로 커피 수확부터 제조·판매에 이르는 전 과정을 추적해 생산자에게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한다.
#북한
최근 남북 경제 협력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비영리단체나 사회적 경제 조직들이 ‘북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북한 경제 체제 특성상 공유 경제에 익숙하기 때문에 협력하는 일이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얘기다. 지난 9월에는 남북교류협력사회적경제연대가 ‘남북 교류 협력 사회적 경제 포럼’을 개최, 사회적 경제 조직과 북한의 협력 방안에 대해 논의를 진행했다. 최근 산림청이 주최한 ‘산림 일자리 정책 심포지엄’에서도 북한 산림 지원 사업에 사회적 경제 조직의 참여 여부가 주요 관심사로 다뤄졌다.
#소비밸(Social mission and Business Balance)
‘소셜미션과 비즈니스의 밸런스’를 줄여 이르는 말이다. 과거 소셜벤처들은 이들이 내건 소셜 미션에 비해 비즈니스 마인드가 부실한 경우가 많았다. 최근 몇 년 새 소리 소문 없이 사라지는 소셜벤처들이 늘면서 ‘과연 미션만으로 버틸 수 있느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이나 안정적인 수익을 얻는 것도 중요해졌다. ‘워라밸’이 좋은 직장의 요건으로 여겨지듯 ‘소비밸’은 소셜벤처의 지속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조건이 될 것이다.
#제로(Zero) 문화
줄이는 것으론 만족하지 못한다. 아예 ‘제로(0)’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린다. 이유는 단 하나, 환경 보호다.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는 ‘제로 웨이스트’, 플라스틱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 ‘제로 플라스틱’ 등의 제로 문화가 내년에는 더욱 확산된다.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동물에서 추출한 소재가 들어 있지 않은 ‘애니멀 프리(animal-free)’ 화장품과 식품 수요도 늘어날 전망. 대기 오염물질을 배출하지 않는 ‘제로 에미션(zero emission· 무공해)’ 차량도 대중화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청년 네트워크
20~30대 청년이 주도하는 ‘공론화의 장’이 활성화된다. 청년 정책 마련에 고심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이 청년 네트워크를 조직해 정책 설계에 활용하기로 한 것이다. 여성가족부는 올해 말 청년 관점의 성 평등 개선 방안을 제안하는 ‘다음세대위원회’를 출범한다. 서울시는 내년 초 청년 위원들로 구성된 ‘서울시 청년자치정부’를 만든다. 서울시의 청년 네트워크 조직 청년허브는 기후, 젠더, 남북문제 등을 연구하고 정책을 제안하는 ‘아시아청년연구모임’을 내년 출범한다.
#자본 연대
시민이 자본을 모아 함께 일어서는 ‘자본 연대’가 강화된다. 정부 지원금이나 기업 후원에 기대지 않고 시민과 사회적 경제주체들이 기금을 마련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 내년 1월 출범을 앞두고 설립 준비에 한창인 ‘사회가치연대기금’에는 사회적 경제 조직뿐 아니라 시민사회, 노동계 등도 동참했다. 민간 주도의 추진단을 꾸려 소셜벤처, 지역 경제, 도시 재생 등에 자금을 융통하는 기금 설립을 준비 중이다. 시민이 돈을 모아 부동산과 같은 공동의 자산을 소유·운영함으로써 젠트리피케이션에 대비하는 ‘시민자산화’도 자본 연대의 한 형태라고 볼 수 있다.
#사이드 허슬러(Side Hustler)
‘일자리’의 풍경도 바뀐다. 최근 직장인 사이에서 확산하는 ‘사이드 허슬’은 본업 이외에 별도의 개별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이 복수의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N잡러’와 비슷한 개념이다. 사이드 허슬러 중에서는 본업을 유지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예 직장을 그만두고 프로젝트만 진행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들에게 ‘평생직장’이나 ‘퇴사’는 무의미한 단어다.
#콜렉티브 임팩트(Collective Impact)
뭉치면 살고, 영향력도 커진다. 제3섹터에서는 정부, 기업, 시민단체, 학회 등 여러 조직이 다자 간 협력으로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일고 있다. 기업과 기업이 뭉치기도 하고, 기업과 지역민이 협력하기도 한다. 또 여러 곳의 기업이 함께 지자체와 손잡기도 한다. 서울 용산구에 입주해 있는 아모레퍼시픽·LG유플러스 등 4개 기업은 올해 ‘세계 환경의 날’을 맞아 지역 학교와 자원봉사센터 등과 연합해 재활용품을 이용한 정원을 만들었다. 과거 기업들이 개별 프로그램으로 이미지 홍보를 하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더나은미래 취재팀 csmedia@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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