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전한 댓글 서비스·사회주택 건설… 사회적 기업은 ‘진화 중’
댓글 서비스 라이브리 건전한 댓글 달기 간편화
안성의료협동조합 의료·건강 협동조합 도입
사회주택 나눔하우징 노숙자 위한 집 만들어
지난 2007년 이후 국내 사회적 기업 대다수는 취약계층 고용에 중심을 둔 모델이었다. 하지만 사회적기업육성법 시행 5년이 지나면서 이론과 경험, 사회혁신의 열정을 겸비한 사회적 기업가들이 출현하면서, 사회적 기업의 영역과 모델이 다양하게 진화하고 있다. ‘사회적인 필요를 사업화’하기 위해 최신 IT 솔루션을 개발하거나, 협동조합 모델을 도입하고, 해외에서 들어온 소셜 펀딩 방식이나 사회임대주택 개념을 국내 토양에 맞게 뿌리내리는 등 업그레이드 중인 국내 사회적 기업현장을 취재했다.
“시작한 이유는 단순합니다. 정말 필요한데, 아무도 안 하니까 우리라도 해야겠다는 마음이었죠.” ㈜시지온의 김범진 대표는 사회적 기업을 ‘사회적 문제에 접근하는 기업’이라고 정의한다. 그가 생각한 문제는 바로 ‘악성 댓글’이었다.
김 대표는 “최진실씨 자살사건을 보면서 인터넷 댓글의 심각성을 느끼고, 친구 3명과 연구에 돌입했다”며 “편하게 쓸 수 있으면서도, 자신의 댓글에 책임감을 가질 수 있는 인터넷 소프트웨어를 개발했다”고 했다.
㈜시지온이 운영하는 댓글 서비스 ‘라이브리(LiveRe)’의 가장 큰 특징은 별도의 회원가입 없이도 댓글을 달 수 있다는 점. 김범진 대표는 “건전한 의견을 댓글로 달고 싶은 사람들은 정작 회원가입의 번거로움 때문에 댓글을 꺼린다”며 “트위터, 페이스북 등 자신의 SNS 계정이 있으면 그를 통해 댓글을 달 수 있는 시스템으로 댓글 달기를 간편화했다”고 설명했다.
본인의 SNS 계정을 이용하면, 올린 댓글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에도 게시된다. 이는 댓글을 쓸 때 한 번 더 생각하게 한다.
2009년 설립 후 창업멤버 전원이 부업에 매달려야 할 때도 있었지만, 지금은 주요 언론사를 포함, 300개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두고 있다. ‘라이브리’를 이용하는 웹사이트만 해도 1만7000개에 이른다. 2011년 5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사회적기업 인증도 받았다.
◇사회운동·사업을 동시에 ‘협동조합’형
‘안성의료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안성의료생협)은 경기도 평택·안성지역 4550명의 조합원이 출자해 만든 곳이다. ‘1차 의료를 환자 중심으로 실현해보자’는 게 설립 목적이다.
김보라 안성의료생협 전무이사는 “법인 설립을 했던 2001년 당시, 의료기관은 굉장히 권위적인 데다 상업화되어 있었다”며 “당시 유기농 농산물을 거래하는 생협이 생겨나고 있던 시점이어서, 먹을거리만이 아니라 의료와 건강문제도 협동조합 방식으로 해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처음 300명가량의 지역 의료인과 주민들이 1만~1000만원대까지 출자, 총 1억2000만원을 만들었다. 이 출자금으로 시작한 사업은 이제 안성의료생협 본점과 우리생협의원, 서안성 분점 등 3개 기관을 운영하며, 의사 14명을 포함한 100명의 직원이 35억원의 연 매출을 올린다.
출자한 조합원은 정기적인 건강검진과 개별상담, 발병 환자에 대한 만성질환자 관리 등의 혜택을 받는다. 불필요한 검사나 고가의 약 처방을 자제하기 때문에 진료 비용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편. 매출액 중 5억원은 지역 공동체를 활성화하고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등의 비용으로 쓰인다.
김보라 이사는 “보건의료 복지를 국가 예산으로 하려면 비용도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고, 민간에 넘길 수는 없으니 ‘공공적 성격을 갖는 민간’이란 제3섹터의 영역이 필요한데, 의료생협과 같은 사회적 협동조합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국형 사회적 금융 모델 만들 것”
금융가 애널리스트로 10년 이상 활약했던 성진경 오마이컴퍼니 대표의 관심은 ‘사회적 금융’이다. 성 대표는 “영국은 정부에서 사회적 기업을 지원하는 금융기관을 인증할 정도로 사회적 금융에 대한 중요도가 높다”고 설명했다. 퇴직 후 성공회대 시민사회복지대학원에서 사회적기업 과정을 공부하며, 미국의 킥스타터 같은 소셜 펀딩 방식을 시도키로 했다. 오마이컴퍼니는 지난 5월 1일 오픈한 소셜 펀딩 사이트로, 현재 8개의 사회적 기업 및 사회혁신기업의 소셜 투자가 진행되고 있다.
팝펀딩, 텀블벅 등 이미 자리를 잡은 소셜 펀딩업체도 있다. 팝펀딩은 지난해 ‘박원순 펀드’를 통해 50시간 만에 39억원을 모으는 데 성공한 데 이어, 최근에는 만화가 강풀 원작을 영화화할 계획인 ’26년’의 투자금을 소셜 펀딩으로 모집했다. 소셜 펀딩은 좋은 아이템과 사업능력에도 불구하고 자금난을 겪는 소기업이나 공연단체를 위한 대안으로 떠올랐다.
◇’사회주택’ 건설을 시도
노숙자 문제를 심각한 사회문제로 인식, 그들에게 집을 지어주고, 사후 관리까지 해주는 ‘사회주택’ 건설을 시도하는 사회적 기업도 있다. 취약 계층의 집수리나 인테리어 등을 주요 사업으로 벌이는 ‘나눔하우징’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나눔하우징의 이제원 실장은 “외국에는 민간이 기금을 마련해 취약계층이 많은 마을에 집을 짓고, 마을을 재생시키는 모델이 많다”며 “우리도 서울보증보험(8억)과 사회연대은행(3억)을 통해 사회주택기금을 마련, 올해 안에 시범건설을 시작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현재 우리가 직접 건설을 하고, SH공사가 매입을 하면, 다시 위탁을 받아 운영하는 방식을 협의 중”이라고 했다. 이 실장은 “정부가 민간의 능력을 신뢰하지 않는 것이 늘 아쉬웠다”며 “민간단체인 우리가 좋은 모델을 만들어 내면, 다른 사회적 기업들도 참여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전했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끊임없이 만들어야
사회적 기업은 기존에 없었던 새로운 사업영역을 개척하기도 한다. 2002년 지역자활센터에서 동고동락하던 3명의 기초생활수급권자와 함께 청소사업을 시작한 이철종 대표. 그가 운영하는 ‘함께일하는세상’은 설립 10년 만에 5개 자회사의 직원만 230명이고, 60억원의 연 매출을 올린다. 창업 첫 달 매출이 30만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놀라운 성과다.
이철종 대표는 “취약계층이 하는 사회적 기업은 품질이 떨어지고 서비스가 약하다는 선입견에서 벗어나기 위해 끊임없이 우리의 경쟁력을 보여줘야 한다”며 “단순 청소용역을 시작으로, 청소 교육훈련, 학교청소, 외벽 클리닝, 홈 클리닝, 청소 기자재 유통 등 지속적으로 사업영역을 넓혀왔다”고 성공 비결을 밝혔다. 이 중 교육훈련 사업은 1년도 안 돼 교육시설을 폐쇄하고 1억원을 손해 보기도 했다. ‘함께일하는세상’은 협동조합기본법이 발효되는 올해 말에 맞춰, 아파트 단지별로 가맹점을 만드는 소셜 프랜차이즈 형태를 구상 중이다.
이철종 대표는 “혁신적인 모델, 지역 공동체를 위한 모델, 공익 실현을 우선하는 모델 등 사회적 기업은 다양해야 한다”며 “우리처럼 시장과 접점을 많이 가진 업종에선 새로운 사업 모델을 찾아 사회적 기업의 길을 열어주는 사명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