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에 대기업 노하우 전수… 파트너십 발휘해 동반성장
농산물 생산해 유통하는 ‘자연찬 유통사업단’
현대글로비스 유통망으로 판매처 확보 어려움 해결
현대차 퇴직 임원 초빙… 재무·회계 노하우 전수 ‘㈜이지무브’ 매출 급성장
40억 지원 받은 ‘안심생활’ 요양보호사 육성해 중년층 여성 취업 도와
최근 대기업에 ‘사회적기업’ 바람이 불고 있다. 전문성과 열정을 갖춘 사회적기업을 발굴·지원하거나, 직접 사회적기업을 설립하는 대기업도 많다.
고용노동부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은 지난해 12월 사회적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국내 대표기업 22곳과 ‘1사1사회적기업 협약식’을 개최했다. 이 기업들은 사회적기업과 파트너십을 맺고, 1대1 맞춤형 컨설팅 지원과 경영 노하우를 전수한다.
‘더나은미래’는 1사1사회적기업의 대표적인 성공사례를 취재한다. 첫 번째는 현대자동차그룹의 파트너 사회적기업인 ㈜이지무브·㈔안심생활·자연찬 유통사업단이다.
‘자연찬 유통사업단(이하 자연찬)’은 국내 영농장애인과 농촌 취약계층이 생산한 농산물을 유통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은 건 올해 6월이지만, ‘자연찬’은 설립되기까지 3년 6개월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이 유통사업은 국내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모델이라 철저한 연구와 검증이 필요했다.
관련 분야 전문가를 찾던 김세열 자연찬 대외협력팀 본부장은 기업 사회공헌의 일환으로 장애인 이동 편의를 지원하고 있는 현대자동차그룹 사회문화팀을 직접 찾아가 이 사업의 필요성을 전했다.
장애인 4인 가족의 월 평균소득은 170만원으로, 일반 4인 가족 월 평균소득(480만원)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영농장애인의 경우 이보다 더 열악한 120만원이다. 국내 영농장애인은 13만명에 달하지만, 좋은 제품을 생산하고도 판매처를 확보 못 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사업 필요성에 공감한 현대자동차그룹은 그때부터 김 본부장과 함께 사업 구상에 들어갔다. 영농장애인 관련 연구 사례를 찾고, 물류 및 유통 전문 기업인 현대글로비스의 도움을 얻어 농산물 유통망을 확인했다.
김 본부장은 “사업 기획안을 한 페이지로 작성해서 기업에 보냈는데, 사업 모델을 구체화한 두꺼운 기획안이 돌아왔다”면서 “사업에 성공하려면 정부와 민간기업, 공공기관, 사회적기업 등 4개 주체가 각각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도표까지 만들어서 보내줘 놀랐고 또 고마웠다”고 귀띔했다.
현대글로비스는 3년간 총 30억원의 운영자금과 유통·물류 분야에 경영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자연찬은 지난 6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 자연찬 1호 직영점을 열었다. 이곳에서는 영농장애인을 포함한 소외계층이 생산한 총 3500여종의 농산물이 판매된다.
◇마케팅·재무·회계 노하우를 전수
㈜이지무브는 국내 최초로 장애인용 보조기구를 생산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이지무브는 2010년 6월 설립 이후 5개월 만에 13억원의 매출액을 올리고, 지난해엔 약 25억원의 연간 매출액을 달성할 정도로 성장했다. 비결은 무엇일까.
오영두 ㈜이지무브 기획팀 실장은 “이지무브는 영리기업 못지않은 재무·회계·연구개발(R&D) 노하우를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3년 동안 약 30억원을 ㈜이지무브에 지원하기로 하면서, 철저한 역량강화 시스템을 도입했다. 가장 좋은 방법은 현대자동차그룹 내의 제조 및 재무·회계 전문가를 ㈜이지무브에 파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내부 직원을 파견하면, 경영 간섭이 될 수 있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고심 끝에 기업에서 오랫동안 전문성을 쌓은 임원급 퇴직자 중에서 사회적 가치 실현에 관심이 높은 전문가 두 명을 초빙했다. 이들은 재무·회계 및 연구개발(R&D)부서의 이사로 재직하면서 현대자동차그룹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오 실장은 “국내에 장애인용 보조기기를 생산하는 업체가 거의 없다 보니, 이지무브가 자체적으로 제품을 연구·개발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었다”면서 “현대기아차에서 제품의 연구·개발 전 과정을 총괄했던 이사님이 디자인 콘셉트부터 기술 개발까지 이지무브만의 생산라인을 구축했다”고 전했다.
㈜이지무브는 사회적기업 제품은 품질이 열악하다는 오해를 없애기 위해 식약청으로부터 의료기기 품질인증인 ‘GMP’ 인증도 받았고, 2011년 7월에는 알앤디(R&D) 벤처기업 인증을 받고, 기업부설연구소도 설립했다.
◇사회적기업의 지속성·확장성 함께 고민
㈔안심생활은 요양보호사를 육성해 장년층 여성의 취업을 돕고, 노인 및 장애인에게 건강상담·방문요양 등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적기업으로, 2007년 고용노동부 인증을 받았다. 지금까지 350명이 일자리를 찾았고, 수혜자 수는 무려 5만5000명에 달한다.
㈔안심생활과 현대자동차그룹의 인연은 ‘사회적기업 육성법’ 시행(2007년 7월) 1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6년부터 ㈔안심생활에 휠체어장치를 장착한 특수 차량을 지원해온 현대자동차그룹은 고용창출형 사회적 기업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2010년 ㈔안심생활에 3년간 40억원을 지원하기로 협약을 맺었다.
김재현 ㈔안심생활 팀장은 “일반적인 갑을 관계를 예상했는데, 현장에서 함께 일하는 파트너 같았다”면서 “단순히 돈만 지원하고 끝나는 게 아니라, 제2·제3의 안심생활이 생겨날 수 있도록 세밀한 사업계획을 구상해줘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안심생활은 전국 취약계층이 요양보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소셜 프랜차이즈’ 구축을 준비하고 있다. 가맹점 형태와 비슷한데, ㈔안심생활은 가맹비를 받지 않고 오히려 임대보증금과 운영을 지원해줄 계획이다. 현대자동차그룹으로부터 재무·회계 노하우를 전수받은 ㈔안심생활 직원이 가맹점으로 파견돼 기관 운영과 행정 처리도 돕게 된다.
김 팀장은 “안정적인 직장이 없어 어려움을 겪는 요양보호사들이 자립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최재호 현대자동차그룹 사회문화팀 과장은 “사회적기업가들은 기업이 놓칠 수 있는 소외계층의 현실을 잘 알고 있고, 전문성과 사회를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을 지니고 있다”면서 “지속가능한 사회적기업의 생태계를 조성하기 위해, 기업이 가진 비즈니스 노하우를 공유하고 아낌없는 지원을 하는 게 우리의 목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