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⑤ 우리의 고객에 대해 서술하시오

오승훈의 공익마케팅

당신의 조직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분명히 보여주겠다. 지금 조직의 구성원들을 한 자리에 모은 다음 A4 한 장씩을 나눠주자. 맨 위에 한 줄만 적어놓으면 된다.

‘우리의 고객에 관해 서술하시오.’

대부분 조직에서 3가지 중 하나 이상의 현상이 나타난다. 첫째, 구성원마다 다른 고객을 서술한다. 대표는 30대 주부, 팀장은 30~40대 여성, 팀원은 젊은 여성. 이렇게 각기 다른 고객을 서술한다. 고객이 다르면 제품이 다르다. 대표는 30대 주부를 위한 제품을 만들고, 팀장은 30~40대 여성을 위한 제품을 만든다는 의미다. 한 배를 탔으나 서로 다른 목적지를 보고 있다는 증거다.

둘째, 포괄적으로 고객을 정의한다. 31세의 신혼 주부와 39세의 10년 차 주부가 원하는 것은 다를 수 있다. 같은 39세의 10년 차 주부라도 자녀의 나이, 부부의 라이프 스타일, 소득 수준에 따라 필요한 상품은 다르다. 30대 주부 전체를 만족하게 할 수 있는 상품은 없다.

셋째, 서술하지 못한다. 선물을 고를 때도 받을 사람의 직업, 지위, 나이, 성별, 패션 스타일, 습관 등을 고려하는데, 돈을 내고 상품을 구매하라면서 고객에 대해 모르는 것이 가능할까? A4 반 장 이상을 채우지 못한다면 고객을 안다고 할 수 없다.

이런 현상은 고객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해법은 간단하다. 하나의 고객으로 명확히 정의하는 것이다. 이제 우리의 고객을 ‘37세의 결혼 8년 차 주부이며, 5살 남자 자녀가 있고, 남편은 중소기업 과장’처럼 구체적으로 정의하자.

이쯤에서 의문이 생긴다. 저렇게 고객을 정의하지만 실제로 구매하는 사람은 저 범위를 넘어선다. 32세의 미혼 여성이 구매할 때도 있고, 심지어 미혼 남성이 구매할 때도 있다. 이것 때문에 많은 조직에서 고객을 명확하게 정의하는 것에 부정적이다.

상품을 구매하는 것은 고객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다. 당신이 지금 입고 있는 옷을 구매한 것은 당신이라는 사람인가, 당신이 가진 니즈인가? 어제 친구와 함께 마신 커피는 당신과 친구라는 사람이 구매한 것인가, 두 사람이 함께할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이 필요해서인가? 37세의 결혼 8년 차 주부와 32세의 미혼 여성이라는 사람은 다르지만, 그들의 니즈는 같을 수 있다.

마케팅에서 타깃팅(Targeting)은 고객이 아니라 고객의 니즈를 정의하는 것이다. 1964년 미국 포드에서 출시한 머스탱(Mustang)은 자동차 역사에 기념비적인 자동차다. 수많은 자동차 브랜드가 벤치마킹했으며, 젊음과 컨버터블의 이정표가 되었다. 머스탱의 마케팅 전략 수립 시, 목표 고객은 청년이었다. 뜨거운 태양 아래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도심과 해변을 누비는 상상을 했다. 그러나 시장에 출시되었을 때 머스탱을 주로 구매하는 고객은 중장년층이었다. 스포티함을 즐기는 ‘청년’이 아니라, 스포티하게 인생을 즐기고 싶은 ‘니즈’가 머스탱을 원했다.

사회 문제를 바라볼 때도 마찬가지다. 수혜자의 니즈를 제대로 정의해야 문제가 해결된다.

스탠포드대학교 디자인 스쿨 대학원 과정 중에는 “Design for Extreme Affordability”라는 수업이 있다. 다양한 전공의 학생들이 팀을 구성해, 세계 빈곤층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제인 첸(Jane Chen)을 비롯한 리누스 리앙(Linus Liang), 라훌 패니커(Rahul Panicker), 나가난드 머티(Naganand Murty)는 ‘임브레이스(Embrace)’라는 팀을 구성했다.

임브레이스(Embrace)의 초기 목표는 개발도상국의 병원에서 이용할 수 있는 저가형 인큐베이터를 개발하는 것이었다. 조산아는 체온을 유지가 힘들어 저체온증으로 여러 질병에 걸리거나 사망에 이른다. 전 세계에서 매년 2000만 명의 조산아가 태어나는데, 그중 400만 명이 한 달 이내에 저체온증으로 사망한다. 인큐베이터는 조산아가 정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지만, 2만 달러의 가격 때문에 개발도상국에서는 이용이 어렵다.

방학 중에 네팔 등 현지로 조사를 떠난 제인(Jane)과 동료들은 그들의 생각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 병원이 아닌 가정에서의 출산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저가형 인큐베이터는 병원이 아니라 일반 가정의 산모와 산파에게 필요했다. 게다가 대부분의 병원이 도시에 있어서 조산아를 데리고 병원까지 안전하게 가는 것 자체가 문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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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브레이스가 발명한 임브레이스 워머

그들이 개발한 ‘임브레이스 워머(Embrace Warmer)’는 침낭, 상변화물질(Phase Change Materials), 충전기로 이루어져 있다. 이중 상변화물질은 고체에서 액체, 액체에서 기체, 액체에서 고체 등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하는 물리적 변화 과정을 이용해 열을 축적하거나 방출한다. 임브레이스 워머(Embrace Warmer)에 쓰인 상변화물질은 사람의 체온인 37도가 녹는 점이어서, 고체 상태에서 뜨거운 물을 붓거나 전기로 충전한 뒤 침낭 속에 넣으면 조산아가 체온을 유지할 수 있게 해준다. 가벼워서 쉽게 휴대 가능하며, 방수 처리된 침낭 등은 끓는 물을 이용해 살균도 쉽게 할 수 있다. 가격은 기존 병원용 인큐베이터 가격의 1%인 200달러다. 2011년 인도에서 판매를 시작해 현재까지 약 20만 명의 조산아들을 살렸다.

만약, 개발도상국의 산모만 바라봤다면 어떤 인큐베이터가 나왔을까. 우리가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는 돈 없는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불안전한 출산이다. 마케팅은 좋은 상품을 만들어서 잘 파는 것이 아니라, 고객의 문제를 발견하고 그것을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다. 사람이 아닌 그 사람이 처한 문제를 제대로 정의할 때, 더 나은 세상으로 변화될 수 있다.

사진 및 통계 참조: http://embraceglobal.org

ⓥ 임브레이스 테드 영상 보기 (4분 39초)

마케터.
세 글자로 저를 소개할 수 있는 그날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마케팅은 더 많은 사람을 위해 쓰여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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