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혈사제’ 김남길의 추억이 깃든 골목팝업
내년 1월 5일까지 서울 성요셉 문화거리에서
지난 23일, 서울 서소문 인근 우리나라 최초의 주상복합아파트인 ‘성요셉 아파트’ 앞 골목길. 건물 곳곳에 적힌 ‘구담시티’라는 글자가 눈에 띄었다. 이곳은 SBS 드라마 ‘열혈사제’ 가상 배경인 ‘구담구’를 재현한 특별한 공간이다.
방송 제작사 스튜디오S와 길스토리아이피가 조성한 ‘구담시티’는 골목길 상점과 협업해 드라마 속 캐릭터의 이야기를 입힌 상품을 판매하는 팝업 프로젝트로, 골목 전체가 ‘열혈사제’ 거리로 재탄생했다. 골목팝업을 기획한 길스토리아이피의 금윤경 대표는 “글로벌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K콘텐츠를 활용해 지역을 알리고, 상권을 살리는 모델을 구축했다”고 밝혔다.
◇ 구담편의점부터 작전실, 비밀금고까지…현실판 열혈사제
성요셉아파트를 등지고 앞을 바라보니, 주변 낡은 건물과 대비되는 회색빛 현대식 건물이 우뚝 서 있었다. 이 곳은 50년 넘은 무허가 판자 창고 부지를 재활용해 복합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한 ‘중림창고’다.
팝업스토어가 마련된 중림창고에 들어서니 1층은 드라마 속 ‘구담 편의점’으로 꾸며져 있었다. 선반에는 김해일(김남길) 신부의 애정 음료로 스토리텔링된 ‘구담 뱅쇼’부터 다양한 캐릭터 굿즈가 즐비했다. 상품마다 드라마 속 인물들의 스토리가 담겨 있어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보물창고였다. 전혜인(32) 씨는 “열혈사제 팬이라 모든 상품이 갖고 싶어졌다”며 넛버터와 쌍화탕을 한가득 안고 웃었다.
계단을 따라 올라가니 2층에는 드라마 속 ‘구담 작전실’이 재현돼 있었다. “찾았다!” 한 관람객의 외침에 가서 보니, 벽면에 김해일(김남길) 신부가 친필로 메시지를 남긴 포스트잇이 붙어있었다. 팝업 관계자는 “공간 곳곳에 배우들의 친필 메모가 숨겨져 있다”고 설명했다.
지하에서는 열혈사제1의 ‘대범무역 비밀금고’가 재현된 공간이 기자를 맞이했다. SNS에서 유행 중인 ‘돈다발 인증샷’을 남겨봤다. 별관에선 김해일 신부와 ‘구담네컷’도 촬영했다. 이곳은 ‘열혈사제2’에 나온 김해일 신부와 박경선(이하늬) 검사의 비밀 접선 장소인 인생네컷 부스를 ‘구담네컷’으로 탈바꿈한 것이라 했다.
◇ 골목가게 10곳과 협업한 ‘지역상권 살리기’ 프로젝트
중림창고를 나와 맞은편 가게로 발걸음을 옮기니, ‘구담시티 인증가게’라는 황금색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 프로젝트에 협업하는 골목 가게는 10곳. 커피방앗간, 국밥집, 책방 등 다양한 가게들이 구담시티와 함께 재탄생했다. 관람객들이 구담편의점에서 ‘구담패스(3000원)’를 구매해 가게에 방문하면, 10% 할인 혜택을 준다.
고소한 커피 냄새에 이끌려 들어간 가게 ‘커피방앗간’에는 구담시티의 평온함을 담았다는 커피인 ‘구담블렌드’가 판매되고 있었다. 10년째 같은 자리에서 장사하고 있다는 주재현(52) 커피방앗간 사장은 “보통 평일 아침과 점심에만 인근 직장인이나 거주자들이 방문했었는데, 구담시티 생기고부터는 처음 오는 분들도 많이 온다”며 “주말에도 방문객이 늘어 직원을 한 명 더 충원했다”고 말했다.
빵집 ‘버터조셉’에서는 드라마 속 요한 캐릭터가 즐겨 먹던 ‘초능력 모카빵’을 맛볼 수 있었다. 빵 안에 가득 찬 크림이 삐져나오는 걸 보면서 ‘요한이가 입에 크림을 묻히고 먹을 수밖에 없었겠다’ 생각했다. 마지막 모카빵을 손에 넣은 관람객 성경희(47)씨와 김은하(47)씨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함께 왔다고. 이들은 팝업에 벌써 두 번째 방문이라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성 씨는 “다른 팝업스토어와 다르게 소상공인과 같이 하는 프로젝트라 더욱 의미 있는 것 같고, 골목가게 음식들이 다 맛있어서 또 오게 됐다”고 했다. 김 씨는 “김남길 배우 팬이어서 오게 됐는데 맛집들을 알고 간다”고 했다.
작년 6월에 가게를 오픈한 최혜영(35) 버터조셉 사장은 작년 겨울과 올해의 골목 분위기가 ‘확연히 다르다’고 표현했다. 그는 “젊은 층과 외국인 방문객이 늘어나 경기가 안 좋은 데도 불구하고 지난해보다 매출이 올랐다”며 “이 지역을 모르는 분들에게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된 것 같아 의미있다”고 전했다.
◇ “K콘텐츠는 수익 창출 넘어 소셜임팩트를 내는 강력한 도구”
금윤경 길스토리아이피 대표는 “K콘텐츠는 단순히 수익 창출을 넘어 소셜임팩트를 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며 구담시티의 의의를 설명했다. 그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드라마나 예능 촬영지를 유치하기 위해 돈을 지불하기도 하는데, 정작 지역 주민이나 소상공인이 얻을 수 있는 이익이 거의 없다”며 “유명한 드라마 촬영지도 포토존 외에는 관람객들이 즐길 수 있는 거리도 부족해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지역에 콘텐츠를 입혀서 여러 번 방문하게 하면 거기가 ‘지브리 스튜디오’가 되는 것”이라며 “제작사와 지역활동가, 지자체가 협력해 좋은 사업 모델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구담시티는 단순한 드라마 팝업을 넘어 지역 상권을 살리고, 콘텐츠를 통해 지역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이 특별한 공간은 서울 성요셉 문화거리(서울 중구 서소문로 6길) 일대에서 내년 1월 5일까지 운영된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누구나 방문할 수 있다.
조유현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