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미래’를 만드는 ‘더 나은 디자인’을 말하다
[대담] 에치오 만치니 밀리노공대 명예교수-차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
사회문제 해결책으로 ‘디자인’이 떠오르고 있다. 환경을 고려하는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나 창의적인 전략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씽킹’이라는 용어는 더 이상 낯설지 않다. 지난 25일에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지속가능성 관련 국제 디자인상인 ‘서울디자인어워드’ 시상식이 열렸다. 올해로 5회를 맞은 서울디자인어워드는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에 상을 수여한다.
이번 대회에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디자인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밀라노공과대학의 에치오 만치니(Ezio Manzini) 명예교수(79)가 심사위원으로 참여했다. 지속가능한 디자인 분야에서 30년 이상 활동해 온 그는 사회혁신 디자인 국제 네트워크인 ‘DESIS(Design for Social Innovation and Sustainability)’의 설립자이기도 하다. 2016년에는 사회혁신을 위한 디자인 입문서인 그의 저서 ‘모두가 디자인하는 시대’ 한국어판도 출간됐다.
서울디자인어워드를 주관하는 서울디자인재단은 지난달 차강희 홍익대학교 교수(62)를 신임 대표이사로 임명했다. 홍익대학교 산업미술대학원 교수인 차 대표는 과거 LG전자 디자인연구소장으로 ‘초콜릿폰’, ‘프라다폰’ 개발을 주도하며 ‘슈퍼디자이너1호’로 선정된 인물이다. 차강희 교수는 “그간의 경험을 토대로 공공 디자인 관점에서 새로운 변화를 만들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나은미래는 지난 25일, 엣지오 만지니와 최강희 서울디자인재단 대표이사를 만나 ‘지속가능성과 디자인’에 관해 물었다.
―글로벌과 한국의 ‘지속가능한 디자인’은 어느 단계에 와있다고 보나.
에치오 만치니=상황이 매우 복잡하고 분열되어 있어 딱 잘라 답변하기 어렵다. 지속가능한 디자인이나 사회변화를 위한 디자인 자체만 놓고 보면 30년 전과 비교해 훌륭한 사례가 많아진 것은 사실이다. 이번 서울디자인어워드에서 발표된 프로젝트만 봐도 ‘지속가능한 디자인’이 매우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특히 과거에는 유럽이나 미국처럼 일부 국가만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몰두했다면, 현재는 다양한 여러 국가에서 참여하며 국경을 넘나들고 있다. 그러나 안타깝지만 여전히 많은 디자이너가 관행대로 환경과 사회문제를 악화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차강희=한국의 디자인은 전자제품이나 가전제품을 통해 알려졌기에 지속가능성보다는 첨단 영역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7년 전쯤부터는 한국에서도 지속가능한 디자인에 대한 고민이 이뤄지고 있다고 본다. 사회문제를 해결하려는 공공 디자인부터 자연환경을 위한 재활용 디자인 등의 사례가 있다. 또 국내에서도 연령·성별·국적·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관련 기관이 등장하고 있다(2020년 ‘서울특별시 유니버설디자인센터’가 설립됐으며, 지난해 5월부터 서울디자인재단 내 유니버설디자인팀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큰 규모의 산업 변화와 비교하면 작은 부분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런 노력이 씨앗이 되어 점점 확장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속가능한 디자인과 사회혁신 디자인을 확산하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인가.
차강희=지금까지와는 다른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혁신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공감대 없이는 우리 사회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방법론을 펼치기가 어렵다. 세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디자이너와 디자인 프로젝트가 사회적 공감대를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과거에는 디자이너라는 직업이 아름다운 것을 만드는 역할을 했다면, 지금은 새로운 관점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역할도 맡게 됐다. 더 낮고 어둡고 험한 곳에 눈길을 두는 디자이너가 ‘지속가능한 지구’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에치오 만치니=먼저 디자인에 대한 정의를 확장해야 한다. 전통적으로 디자인은 제품을 기능적으로 나아지게 만드는 것으로 인식됐다. 그러나 디자인은 ‘목적을 위해 설계하는 것’을 의미한다. 사실상 모든 것에 ‘디자인 접근’이 가능하기에, 제품 외에도 더 많은 것을 디자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한다. 다음으로 제품 중심의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속가능한 디자인 초기에는 환경친화적인 무언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여겨졌다. 제품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행동 방식 자체를 지속가능한 방식으로 움직이도록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인간 중심적 사고를 탈피해야 한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모든 것이 인간을 기준으로 만들어졌다. 이제는 지구에 함께 존재하는 다른 모든 생명체를 위한 디자인을 생각해야 한다.
차강희=지금까지는 ‘인간을 위한 디자인’으로 모든 것이 인간 중심으로 기획되고 설계됐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를 위한 디자인’으로 전환해 인간과 사회, 자연환경 등 모든 것이 함께 공존하며 발전하는 방향이 되어야 한다.
―디자인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매력적으로 들린다. 그러나 디자인 씽킹을 비롯한 사회혁신 디자인 프로젝트가 아이디어나 초기 모델에 그친다는 지적도 있다.
에치오 만치니=현실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기에 복합적으로 바라봐야 한다. 사고방식과 행동 양식을 변화하게 만드는 것도 개별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큼 중요하다. 때로는 단지 아이디어와 초기 모델에 불과한 프로젝트도 시각과 태도를 바꿀 수 있다. 해결책을 찾는 과정은 늘 제안과 수정이 반복된다. 실질적으로 모든 과정이 언제나 다음을 위한 초기 모델인 것이다. 초기 모델을 일련의 과정으로 생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사회적 네트워크와 공동체를 구축해야 한다. 현대 사회의 큰 문제 중 하나는 고립과 과도한 개인주의다. 사회혁신 프로젝트가 협력을 촉진하는 역할을 할 수 있겠지만, 지금까지의 사례들은 개별적이고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 이제는 공공과 국가가 나서서 사회문제 해결을 위해 협력할 수 있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차강희=상상력을 동원해 미래를 만드는 일을 하는 것이 디자이너였다. 꿈과 비전을 실현하는 일은 쉽지 않다. 새로운 방법론을 통해 무언가를 혁신하는 데는 많은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자이너에게는 언제나 고객이 있다. 고객은 디자이너가 생산하고 만드는 것을 결정한다. 사회혁신 디자인의 다음 단계를 위해서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과의 협력’이 굉장히 중요하다. 디자인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신념에 공감하고 도와주는 ‘우리 편’이 필요하다. 서울디자인재단은 사회문제를 해결하는 디자인 프로젝트에 상을 주는 서울디자인어워드 등을 통해 같은 신념을 가진 사람들을 계속해서 응원할 계획이다.
김규리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