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14일(월)

[Who Cares Wins] ESG 20주년, 기업은 무엇을 배려해야 하는가?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 실장

올해는 글로벌 콤팩트가 기업 지속가능성 제고를 위해 ‘Who Cares Wins(배려하는 자가 승리한다)’ 보고서를 통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개념을 세상에 발표한지 20주년이 된 해다. 2004년은 글로벌 콤팩트가 창립된 지 4년 남짓한 시기였고, 인권, 노동, 환경 원칙에 이어 반부패에 관한 10번째 원칙이 완성된 직후였으며, 유엔 기구로서의 위상도 확립하기 전이었다.

2000년 유엔에서는 전 세계 정상들이 모여 ‘새천년개발목표(Millennium Development Goals)’라는 개발 의제를 채택하고, 전 지구적 지속가능성 여정에 대한 본격적인 닻을 올렸다. 이 야심 차고 원대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참여가 필수적이었다. 기업이 사람과 지구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최소화하고, 긍정적 영향을 극대화함으로써, 비즈니스가 지속가능한 발전 달성에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국제사회에 형성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유엔에서는 기업뿐만 아니라, 학계, 노동계, 시민사회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지속가능성에 관한 기업 이니셔티브인 ‘글로벌 콤팩트’를 만들었다. 몇 해 뒤에는 기업들의 책임있는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이 개념을 ‘금융 시장’과 연결해야 한다는 합의에 이르렀다. 이렇게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의 제안으로 골드만삭스, BNP 파리바, HSBC, IFC, 모건 스탠리, 웨스트팩, 세계은행그룹 등 전 세계 20여 개의 선도 금융기업 및 기관들이 모여 공동 작업의 산물로 ‘Who Cares Wins’ 보고서가 작성됐다.

이 보고서는 ‘재무 분석, 자산 관리 및 주식 거래에 ESG 이슈를 더욱 효과적으로 잘 통합하기 위한 금융업계의 권고사항’이라는 부제를 달았다. 보고서의 목표는 ESG 이슈를 정의하고, 지속가능성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촉발하고, 창의적이고 사려 깊은 금융 접근방식을 지원하는 것이었다. 기업의 지속가능성 생태계 조성을 위한 기업, 규제 당국, 증권거래소, 투자자, 자산관리사, 증권사, 회계사, 투자분석가, 금융 자문사 등 다양한 금융 시장 행위자의 역할 또한 제시됐다.

보고서는 성공적인 투자는 ‘활기찬 경제’를 기반으로 하며, 이러한 경제는 ‘건강한 시민 사회’에, 이러한 사회는 궁극적으로 ‘지속가능한 지구 환경’에 달려 있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투자 시장은 국제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에 기여하는 방식으로 환경 및 사회적 영향을 관리하고, 개선해야 하며, 이는 모든 시장 행위자의 이해관계와도 부합한다고 말한다.

이는 2006년 지속 가능한 투자환경 조성을 지원하는 ‘유엔 책임투자원칙(UN Principles for Responsible Investment·이하 PRI)’의 발족으로 이어졌으며, ESG를 고려한 투자 철학과 운용, 의사결정과 공시에 대한 원칙이 마련됐다. PRI는 ESG 투자와 금융 시장 형성에 중요한 시작점이 되어, 현재 5500여 곳 이상의 연기금,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금융기업 및 기관들이 참여하며 120조 달러가 넘는 자산을 관리하는 세계최대 책임투자 이니셔티브로 성장했다. PRI를 발족한 UNGC 역시 2004년 6월 보고서 발행 당시 1500여 개였던 회원 수는 현재 2만5000여 곳에 이르러 세계 최대 기업 지속가능성 협의체가 됐다.

지난 20여 년간 세상은 매우 빠른 속도로 변해왔다. 산업계와 금융계 역시 많은 부침을 겪었다. 금융위기를 지나며, 대안적 자본주의와 이해관계자 자본주의의 흐름은 더욱 짙어졌다. 예측보다 훨씬 빠른 기후변화와 그로 인한 위협, 코로나 팬데믹의 고통 속에서 지구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인류의 고민도 깊어졌다. 그렇다면, 사람과 지구의 공존과 지속가능성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주체인 기업은 사회 속에서 어떻게 존재해야 하는가. 기업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배려하면서 경영을 해야 하는가. ESG 20주년, 성인의 해를 맞아 보다 심층적이고,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위기 상황에서, 더 이상 ‘기업이 해오던 기존의 방식(business as usual)’은 유효하지 않다. 생존을 위한 새로운 대안과 해결 방안을 모색해야 하는 숙제가 기업들 앞에 펼쳐지고 있는 시점이다. 비즈니스 환경은 지속가능성을 중심에 두고 ▲법제화, 규제화 ▲재무 성과 연계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이 더욱 강력해지고 있다. 이는 기업의 리스크와 기회를 새롭게 정의하고, 기업 운영 철학과 전략, 자원 배분의 변화와 이해관계자 소통까지 동시에 해내야 하는 갈수록 어려운 도전과제가 기다린다는 뜻이다. 어느 때보다 의지를 가진 리더십의 역할이 중요해지고 있으며, 모두의 동참이 절실하다. 

오랜 시간 기업의 지속가능성 운동을 해오면서, 때로는 세상과 기업이 더디 변하는 것 같아 회의에 사로잡힐 때도 있었다. 다시 천천히 ‘Who Cares Wins’ 보고서를 읽으며 지난 20여 년간의 시간을 떠올려보았다. 20여 년 전 몇몇 리더들로부터 시작된 지속가능성을 향한 열망이 세상을 이토록 변화시켜 왔음을 상기하며, 다시 ‘지속가능한 발전’을 향한 여정을 묵묵히 걸어가야겠다고 다짐하게 된다. 기업과 금융 생태계를 보다 지속가능하게 구축해 나가는 일은 너무나도 중요한 일인 까닭이다.

기업들과 리더들이 지속가능성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하고 책임있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근로자이자, 투자자이자, 소비자이자, 지역사회 구성원이기도 한 우리의 관심과 노력, 동참 역시 매우 절실하다. 기업의 변화는 시장과 사회의 변화와 함께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이해관계자들은 더 많은 영향력을 발휘하며 기업과 함께해야 한다. ‘아무도 소외되지 않는(No one left behind)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우리는 여전히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이은경 유엔글로벌콤팩트한국협회 실장

필자 소개

세계 최대 기업 지속가능성 유엔 이니셔티브인 유엔글로벌콤팩트의 한국네트워크에서 초창기부터 일하며 실무총괄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협력하며 ESG 전반, 특히 기업과 인권, 젠더 및 DEI, 컴플라이언스 분야에 활발한 강의와 자문 등을 하고 있으며, 기업의 지속가능성 생태계를 만들고 ESG 내재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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