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리사 파이크 쉬히 환경담당이사
‘죽어버린 지구에서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본사 현관 입구엔 미국 환경운동가 데이비드 브라워(David Brower)가 남긴 글귀가 커다랗게 적혀 있다. 환경 단체인가 싶지만 미국 아웃도어 브랜드 ‘파타고니아’ 얘기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매년 총매출의 1%는 지역 환경 단체들에 기부하고,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땅을 사들여 자연보호 구역으로 만들기도 한다. ‘댐을 없애자’며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과소비도 줄이라고 권유한다.
특이한 건 또 있다. 본사 복도엔 서핑보드가 줄지어 있고, 회사 알림판엔 그날의 파도 정보를 공유한다. 좋은 파도가 오는 날엔? 서핑보드를 들고 10분 거리 바다로 뛰어들면 끝이다. 1984년 회사 내 어린이집을 만들고, 직원들을 위한 ‘근무시간 선택제’를 도입한 곳. 미국 유명 경제 잡지 포천지에서 ‘지구상에서 가장 쿨한(coolest) 기업’으로 꼽힌 곳, 1972년 만들어져 올해로 43년 된 ‘오래된 기업’이다. 지난달 24일 국내 파타고니아 도봉산점 개점을 기해 한국을 찾은 리사 파이크 쉬히(Lisa Pike Sheehy·사진) 파타고니아 환경프로그램 담당 이사를 만나 인터뷰했다.
―파타고니아를 설명하는 말들이 여럿 있다. 환경을 위해 애쓰는 기업, 직원이 중심이 된 회사, ‘필요하지 않으면 재킷을 사지 말라’는 광고 문구까지. 실제 본사 분위기가 궁금하다. 이본 쉬나드의 책 제목처럼 정말로 파도가 치면 서핑을 하러 나가는 게 가능한가(파타고니아 창립자인 이본 쉬나드는 기업에 대한 본인의 철학을 책에 담았다. 제목은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
“물론이다(웃음). 근무 환경은 직원들에게 굉장히 우호적이다. 본사 직원이 500명 정도인데, 모두가 하나의 큰 공동체다. 파타고니아는 미국에서도 가장 앞서 사내 어린이집을 만든 곳 중 하나다. 나도 풀타임 워킹맘인데, 애 둘 다 회사 어린이집에서 키웠다. 지금 네 살 반이 된 아들은 4개월 때부터 함께 회사에 나오기 시작했다. 온 회사가 나서서 함께 아이들을 기르는 분위기다. 당연히 일에 더 집중할 수 있다. 전체 직원의 50% 정도가 여성이다. 직원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한번 입사하면 떠나지 않는다. 주변에 20년, 25년 이상 근무했다는 사람들이 수두룩하다.” 그는 “올해로 파타고니아에서 일한 지가 12년째인데, 아직도 출근할 때 행복하다”고 했다.
―파타고니아에 오기 전엔 10여년간 환경 분야 비영리단체에서 일했던 것으로 안다. 비영리단체에서 영리 기업인 파타고니아로 옮긴 이유는 무엇인가.
“환경정책으로 대학원을 나왔고, 그 전후 쭉 환경 분야에서 활동했다. 환경 분야에서 파타고니아의 진정성을 익히 알고 있었고, 환경 분야 풀뿌리 단체들과 재단들 사이에서 파타고니아의 명성이 굉장히 높았다. 파타고니아가 가진 자원을 활용하면 비영리에서보다 훨씬 더 큰 임팩트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파타고니아는 2013년 미국 아웃도어 시장점유율 2위다. 이 기업의 시작은 암벽 등반가이자 열혈 서퍼였던 창립자 이본 취나드와 그의 친구들 몇몇이 모여 암벽 등반 도구를 만드는 ‘취나드 장비회사(Chouinard Equipment)’를 차린 것이었다. 장비는 큰 성공을 거둬 미국 내 최대 공급자까지 됐지만 돌연 생산을 멈췄다. 그의 장비들로 암벽이 크게 훼손되는 걸 목격했기 때문. 뼛속부터 ‘대자연 애호가’인 이들이 만든 회사이다 보니 환경과는 처음부터 떼려야 뗄 수 없는 사이다. 환경에 최대한 해를 끼치지 않으면서 자연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한 좋은 장비와 옷을 만드는 것. 지난 40여년간 변한 적이 없는 파타고니아의 핵심 가치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어떻게 줄여 왔나.
“1991년, 면과 폴리에스터, 나일론, 울 등 네 가지 종류의 섬유 생산망을 조사했다. 당시 우리는 당연히 면이 가장 깨끗하고 자연 친화적이라고 생각했다. 아니었다. 목화 재배엔 엄청난 화학비료가 들어갔다. 화학물질이 엄청난 양의 온실가스도 배출한다는 것도 알게 됐다. 한 번 죽은 땅은 되살리려면 5년 넘게 걸렸다. 1996년 ‘우리가 저질러놓은 것들은 우리가 나서서 깨끗이 하겠다’고 약속했다. 물론 쉽지 않았다. ‘유기농 면화’ 생산자도, 소비자도 너무 적었다. 완전히 새로운 시장을 만들어야 했다. 그 뒤로 꾸준히 기존 면화가 얼마나 지속 가능하지 않은지 알렸다. 이제 파타고니아 모든 면은 유기농 재배된 목화로 생산된다. 우리는 유기농 면화를 거래하는 비영리단체인 ‘오가닉 익스체인지(Organic Exchange)‘의 창립 멤버이기도 하다. 이런 방식으로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 노력해 왔다.”
플라스틱병을 폴리에스터로 재활용한 플리스 원단, 심는 것만으로도 흙을 되살리는 마(麻) 소재, 죽은 거위나 오리로부터 얻은 털만으로 만든 점퍼…. 연구와 혁신을 거듭해 새롭게 만든 친환경 소재만도 수십 종이다. 외부의 환경 단체들을 돕는 데도 힘을 쏟는다. 지난해 총매출 6억6000달러의 1%인 660달러(약 72억원)가량을 770곳의 환경 단체에 지원했다. 1985년부터 지난해까지 환경 분야로 지원된 돈만도 약 700억원에 달한다.
“2년에 한 번씩 지원 단체들을 대상으로 ‘풀뿌리 활동가들을 위한 콘퍼런스(Tools for Grassroots Activist Conference)’를 개최한다. 3일 반에 걸친 행사인데, 약 120~135명의 환경 활동가들이 참여한다. 전액 우리가 비용을 부담한다. 미디어랑 일하는 법, 이슈를 잘 알리는 법, 구글이나 인터넷 같은 여러 기술 도구들을 잘 이용하는 법 등에 관한 트레이닝을 받는다.”
파타고니아의 중요한 철학 중 하나는 ‘비즈니스를 통해 다른 기업들도 참여시키고 영감을 불어넣어야한다(inspiring)’는 것이다. 지난해 파타고니아에서는 서핑용 웨트 슈트를 만드는 새로운 천연고무 소재 ‘유렉스(Yurex)’를 개발했다. 기존 합성고무 소재인 네오플렌을 대체할 소재가 있을지, 수년간의 리서치와 연구 끝에 나온 결과다. 이후 파타고니아는 그 모든 과정과 노하우를 공개했다. ‘산업 전반에 알려 전체가 함께 바뀌어야 변화가 크다’는 철학에서다.
―이런 활동들을 지속하면서도 성장하는 게 가능한가.
“가능하다. 계속해서 성장하는 게 파타고니아의 목표다. 다른 기업에 영감을 주고 선례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파타고니아는 빠른 성장이 아닌 ‘건강하고 느린 성장’을 추구한다. 돈 자체만이 목표가 아니다. 회의를 할 때에도 ‘100년 후, 200년 후엔 이 정도에 도달하도록 목표를 잡자’는 식이다. 어떤 회사들은 굉장히 빠르게 재정적으로 팽창하지만 지속 가능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우리가 보는 성장은 떡갈나무 같은 거다. 자라는 데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큰 뿌리를 갖게 된다.”
이런 활동이 가능한 건 ‘가족 소유 기업’으로 운영되기 때문이다. 수익이 목적인 주주의 입맛에 따라 좌지우지되지 않았기 때문. 그는 “정말 많은 글로벌 기업이나 투자자들이 우리 회사를 사겠다거나 파트너가 되자고 찾아오지만, 파타고니아는 절대 쉬운 길을 택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여러 이야기가 많지만, 회의적인 목소리도 높다. 기업이 여러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회사에 처음 입사했을 때 이본 창립자는 나한테 ‘우리 직장 내 최고의 일을 한다’며 웃었다. 돈을 버는 대신 어떻게 잘 쓸지 고민하는 부서란 것이다. 기업은 해결해야 할 책임이 있고, 비즈니스를 통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제품을 생산하는 ‘생산망’에 대해 잘 알아야 하고, 고객에게 알려야 한다. 기업이 아니면 누가 책임지겠나. 다만 ‘보여주는 식’에 그치는 건 안된다. 비즈니스와 ‘좋은 일’이 분리되면 그것 역시 위선이다. 개인의 역할도 크다. 과소비는 많은 환경 문제의 근원이다. 사기 전에 두 번 생각하고, 품질과 철학과 환경에 투자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