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에드먼스·신현상 대담] 혼란의 시대 ESG 전략을 말하다
‘ESG의 종말(The end of ESG)’이 현실로 닥친 것일까. 5일(현지 시각) 글로벌 펀드 네트워크 칼라스톤(Calastone)에 따르면, 지난 4개월간 영국 투자자들이 ESG 펀드에서 인출한 자금 규모는 20억파운드(약 3조3540억원)에 달했다. 5~7월에 월평균 3억3000만파운드(약 5500억원)이 빠져나갔고, 지난달에만 9억5300만파운드(약 1조6000억원)를 매도했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과 유럽에서 반(反)ESG 정서가 고조되면서 관련 펀드 자금을 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올초 논문을 통해 ‘ESG의 종말’을 예고한 알렉스 에드먼스 런던비즈니스스쿨 교수는 “기업·투자자·학계 등에서 동시다발적으로 ESG에 관심을 보이면서 오히려 여러 오해와 혼란이 유발됐다”고 말했다. 그는 “ESG의 종말은 ESG 경영이 끝났다는 것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며 “ESG가 더는 특별한 것이 아닌 세상이 됐기 때문에 기업들은 그저 일반적인 비즈니스 활동 속에서 ESG 경영을 이어나가면 된다는 뜻”이라고 강조했다.
ESG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행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올초 국내 사회혁신 분야 대표 연구자로 꼽히는 신현상 한양대학교 경영대학원 교수와 에드먼스 교수를 서울 중구 아트조선스페이스에서 만났다.
-한국에서 개최된 ‘라이프이즈굿 어워드'(Life’s Good Award)에서 여러 사회혁신가들을 만났다고 들었습니다.
에드먼스=유독성 잔류물 없이 물에 녹는 플라스틱 소재를 개발한 ‘솔루텀’, 휴대용 담수화 장치를 제안한 ‘노나 테크놀로지’ 등 사회를 변화시킬 영향력이 있는 몇 가지 혁신적인 솔루션을 봤습니다. 특히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해소하는 보조공학기기와 플랫폼을 제공하는 ‘닷(DOT)’이 인상깊게 남았습니다. 닷은 이번 어워드에서 1등을 거머쥐기도 했죠. 전 세계적으로 2억8500만명의 시각장애인이 있는데, 대부분은 후천적 시각장애인입니다. 이들은 어렸을 때부터 점자 읽는 법을 배우는 선천적 시각장애인과 다릅니다. 그래서 닷이 개발한 점자정보단말기 ‘닷패드’에 높은 점수를 줬습니다. 닷패드는 시각장애인이 텍스트뿐 아니라 그림·그래프 등 다양한 그래픽을 쉽게 읽도록 돕기 때문이죠.
신현상=‘배리어프리를 위한 세상을 지향한다’는 닷의 소셜미션도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최근 기후변화가 심화하면서 기업은 환경 문제 해결에 초점을 두곤 하는데, 소외된 약자를 조명하는 닷의 아이디어가 강력한 사회혁신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는 ESG 요소 가운데 ‘S’(사회)보다는 ‘E’(환경)에 집중하는 분위기입니다.
에드먼스=전 세계적인 현상이죠. 결국은 측정이 얼마나 용이한가의 문제예요. 탄소배출량, 수자원 사용량 등을 정량화하는 건 쉽습니다. 하지만 기업이 직원의 안전·복지를 어느 정도 보장하고 있는지. DEI(다양성·형평성·포용성) 수준을 얼마나 증진했는지를 데이터로 제시하는 건 어렵습니다. 또 기업이 탄소배출량을 감축했을 경우 얻을 수 있는 재무적 이익은 계산 가능하지만, 지역사회 내 사회적약자를 지원했을 때 생기는 이익은 가시적으로 수치화하기 어렵죠. 이런 복합적인 이유로 기업은 환경 문제에 훨씬 더 집중하는 겁니다.
신현상=ESG 공시나 평가 기준도 환경 위험(environmental risk)에 대해서는 엄하게 규제를 합니다. 비용을 부과하는 등의 제재를 가하는 식으로요. 하지만 기업이 장애인을 고용하지 않았다고 해서 엄청난 리스크가 생기지는 않잖아요. 결국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해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환경 부문에 관심을 더 기울일 수밖에 없는 거죠.
-기업이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요?
에드먼스=사회적 가치는 단순히 사회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뿐 아니라 인생을 좀 더 즐겁고 아름답게 만드는 것을 포함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례로 디스플레이 회사가 고해상도 화면을 제작해 소비자가 갈라파고스 제도를 방문하지 않고도 야생동물과 자연생태계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행위이죠.
신현상=보통 기업은 부정적인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를 줄이는 데 집중하죠. 에드먼스 교수께서는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줄이는 것과 동시에 긍정적인 외부효과(positive externality)를 늘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것까지 사회적 가치의 영역으로 본다는 게 핵심 포인트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면서 이윤을 창출한다. 이상적인 이야기 같은데, 실제 사례가 있나요?
에드먼스=유럽 최대 통신사 보다폰(Vodafone)은 모바일 결제 플랫폼인 ‘엠페사(M-Pesa)’를 만들었습니다. 금융서비스에 접근할 수 없는 아프리카인들을 위해서죠. 보다폰이 엠페사를 만들었을 당시 케냐 주민의 대부분은 은행 계좌를 창설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있었습니다. 은행 자체가 많이 없었거든요. 이들은 주로 현금을 사용했는데, 현금은 위조·분실·도난의 위험이 있었죠. 보다폰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안전하게 입금, 인출, 송금, 제품 결제 등을 할 수 있는 금융 플랫폼을 만든 것입니다. 엠페사를 활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지면서 해당 지역의 경제가 부흥했고 더 많은 아프리카인은 보다폰을 구매하기 시작했죠. 결국 보다폰은 자사 서비스 이용자를 늘리면서 수익을 창출했고, 사회적 가치도 만들어낸 겁니다. 현재 엠페사는 케냐·탄자니아·레소토·모잠비크 등에서 사용되고 있으며 단순한 모바일 결제뿐 아니라 현지 은행과 연계한 대출, 저축 상품 등을 제공하는 종합적인 금융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에드먼스 교수께서는 이윤과 사회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방법으로 ‘파이코노믹스’를 제시했죠. 이에 대해 설명해주세요.
에드먼스=파이코노믹스(Pieconomics)는 사회를 위한 가치 창출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새로운 비즈니스 접근방식입니다. 기업이 직원을 육성하며 소외된 약자를 위한 제품을 개발하고, 환경 회복에 노력을 기울이면 직접적으로 이윤을 추구하는 것보다 더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다는 설명이죠.
신현상=이윤 창출은 기업의 설립 목적이 아니라 결과물인 셈입니다. ESG경영도 마찬가지에요. 현재 기업들은 ESG리스크를 관리하기 위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ESG경영을 하는데 여기에만 포커스가 맞춰진 느낌이에요. 이보다 더 본질적인 ‘ESG경영이 왜 필요한지’가 실은 훨씬 더 중요한데 말이죠. ESG경영을 통해 무엇을 바꾸고자 하는지에 대한 목적을 설정해야 할 때입니다.
-기업의 목적, 어떻게 정해야 할까요?
신현상=기업의 목적은 기업이 존재하는 이유, 사회에 기여하는 방식을 의미합니다. 기업이 누구를 위한 것이며, 왜 존재하는지 정의하는 게 목적이죠. 그래서 목적을 설정할 땐 ‘누구에게 서비스를 제공할 것인가?’ ‘이 기업이 존재함으로써 어떻게 세상이 나아지는가?’란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합니다. 발달장애아동을 위한 성장호르몬을 개발하거나, 지역과 지역을 연결하는 더 빠른 철도를 개발하는 것 등이 목적일 수 있죠.
에드먼스=한가지 예를 더 들어볼게요. 카카오는 회사의 존재 이유를 ‘기술과 사람이 만드는 더 나은 세상’이라고 얘기합니다. 지난 3년간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를 덮친 상황에서 카카오는 확진자 동선을 추적하는 기술을 개발했고, 백신 접종을 받을 수 있는 의료기관에 대한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이는 카카오에 직접적인 수익을 가져다주지는 않지만, 기업의 브랜드 이미지를 제고해 더 많은 이용자를 확보할 수 있도록 하죠. 또 코로나 바이러스 확산을 줄이는 건 경제 회복에 도움을 줘 카카오가 자사 시장을 보존하고, 원활한 경영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합니다. 결국 기업이 파이를 키울 수 있는 최고의 방법은 사회를 변화시키는 목적을 세우는 것입니다.
김수연 기자 yeo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