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성소수자 47% “쉼터 입소 거부 당해”
띵동, 브라이언임팩트 지원으로 전용쉼터 마련
김은하(가명)씨는 스무살 되던 해에 집을 나왔다. 성(性)소수자라는 사실을 밝힌 후 불거진 가족과의 갈등과 가정폭력 탓이다. 한동안 친구 집에 머물렀지만 오래 있을 수는 없었다. 몇 개월 후 지역의 청소년 쉼터를 찾았다. 대부분 쉼터는 남녀 공간을 분리해 운영한다. 트랜스젠더인 김씨는 생물학적으로 남성이라 여성 공간에 머물 수 없었다. 그렇다고 남성 청소년과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면 본인이 괴로울 것 같았다. 결국 입소한 날 아르바이트 자리와 고시텔을 구해 다음 날 퇴소했다.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위기청소년을 돕는 지원 체계 안에서 소외된다. 최근에는 청소년 성소수자 차별 금지 조항을 담은 학생인권조례 폐지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학교에서도 설 자리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센터 띵동(이하 띵동)은 이들의 긴급주거지원을 위한 ‘야간센터 숨숨’을 오는 25일부터 운영한다. 전국 최초의 청소년 성소수자 쉼터다. 인력부족으로 낮에만 열던 센터를 주 2회 24시간 운영할 예정이다. 센터에서는 휴식과 상담, 식사 등을 제공한다. 장기간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시설로 연계해주거나, 의료 지원도 한다. 성폭행 피해자는 전문 기관에서 치료를 받으며 트라우마를 회복할 수 있도록 돕는다.
띵동은 청소년 성소수자를 이들을 돕는 국내 유일 NGO다. 2015년 설립된 이후 민간의 후원만으로 운영되고 있다. 청소년 성소수자 언제든 머물 수 있는 센터를 운영하고 상담을 제공하는 등 다양한 지원 활동을 펼친다. 지난해에는 브라이언임팩트가 사회문제를 해결할 혁신조직을 대규모로 지원하는 사업 ‘임팩트그라운드’ 2기로 선정됐다. 총 3억원을 지원받는다. 띵동은 이달부터 지원금을 활용해 긴급주거 지원 등 청소년 성소수자를 위한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이들이 가장 집중하는 사업은 주거지원이다. 띵동이 2021년 발표한 ‘청소년 성소수자 탈가정 경험과 고민 기초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탈가정 경험이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는 153명 중 62명(40%)이었다. 탈가정 후 달라지기를 기대한 부분은 ‘정서적 안정과 스트레스 해소’라는 답변이 82.4%로 가장 높았다. 40.3%는 신체 안전을 위해 집 밖으로 나갔다고 답했다. 보고서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은 성소수자 혐오적인 사회 속에서 ‘존재의 위기’를 경험하며, 특히 성소수자를 거부하는 가족 안에서 심각한 스트레스를 겪고 있다”고 설명했다.
해당 보고서에 따르면 트랜스젠더, 젠더퀴어 청소년 응답자 중 47.4%는 “성별 정체성으로 인해 쉼터에 입소하지 못했다”고 답했다. 입소를 했지만 쉼터 직원이나 청소년 이용자들에게 혐오 발언을 들어 적응에 어려움을 겪은 사례도 있다. 선호찬 띵동 사무국장은 “고시원이나 찜질방과 같은 시설을 구해서 나가더라도 남녀 공간이 분리돼 있어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어 “24시간 지원 체계가 반드시 필요한 이유”라고 말했다.
띵동 전문 심리상담도 제공한다. 청소년 성소수자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상담가가 주 1회 정기적으로 센터에 방문해 상담을 진행한다. 띵동 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정신 건강’ 문제다. 가족의 학대, 성소수자 혐오발언과 폭력 등을 경험한 청소년 성소수자는 정신건강의 위기를 지속적으로 안게 된다.
하지만 성소수자 친화적인 상담 자원은 부족하다. 2021년 여성가족부가 국정감사에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전국 238개 청소년상담복지센터에서 진행한 상담 중 성소수자 관련 상담은 전체의 0.05%(60건)에 불과했다. 반면 띵동이 지난 2015년 1월부터 2021년 12월까지 시행한 상담·위기지원 건수는 3196건이었다. 2021년 한 해 동안 카카오톡 채널에서는 청소년들과 2583건의 소통이 이뤄졌다. 띵동은 브라이언임팩트에 제출한 미래비전 계획서에서 “어떤 국가 통계에서도 드러나지 않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의 삶과 위기의 심각성이 띵동 상담을 통해 드러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띵동은 위기지원 연계망을 전국으로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24시간 긴급주거지원의 경험을 분석해 다른 청소년 기관 및 쉼터와 공유하고, 띵동의 지원 모델을 확산할 예정이다. 선호찬 사무국장은 “얼마 없는 청소년 성소수자 지원 자원마저 서울과 수도권에 몰려 있다”며 “전국 쉼터 종사자 교육을 지원하고, 지역 청소년 단체와 협력하는 등 전국에 있는 청소년 성소수자들이 필요할 때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변화를 이끌어내고 싶다”고 말했다.
최지은 기자 blo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