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스코프3가 온다] 韓, 스코프3 공시율 35%… 선제 대응 안하면 수출길 막힌다

국내 200대 기업 중 70곳만 스코프3 공시
동종업계 내에서도 공시 항목은 제각각
호주·EU 등 공시 의무화 대비 선제 대응

호주 80%, 유럽연합(EU) 71%, 한국 35%.

기업의 공급망 전체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량인 ‘스코프3(Scope3)’ 데이터를 공시하는 기업 비율이다. 국제 비영리 환경단체 CDP(탄소정보공개프로젝트)의 ‘글로벌 공급망 리포트 2022(Global Supply Chain Report 2022)’에 따르면, 지난해 CDP에 기후 데이터를 공시한 1만8500개 글로벌 기업 중 스코프3 데이터를 포함한 기업은 7000곳이다. 국가별로 살펴보면 호주 기업이 80%로 가장 높았고, EU 소속 기업도 71% 수준으로 조사됐다. 한국은 공시 세부항목이 불분명한 국가로 분류돼 전체 데이터에서 빠져 있다.

국내 자체 조사 결과로는 주요 기업의 35%가 스코프3 공시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SG행복경제연구소가 지난해 11월 국내 시가총액 상위 2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서 스코프3 관련 항목을 공시한 기업은 70곳(약 35%)에 불과했다. 업종별로는 체계적인 공정으로 제품의 전과정평가(LCA) 데이터를 확보하는 자동차부품업이 87.5%로 가장 높았고, 비교적 탄소추적이 쉬운 금융지주(77.8%), 비금융지주(64.7%), 은행·증권·카드(62.5%) 등도 과반을 넘었다. 하지만 식음료, 엔터테인먼트, 전문기술, 제약·바이오, 철강·기계 등 대부분 업종이 10%대로 공시 비율이 낮았다.

[스코프3가 온다] 韓, 스코프3 공시율 35%... 선제 대응 안하면 수출길 막힌다

전문가들은 스코프3로 상징되는 공급망과 소비자까지 고려한 탄소배출량 측정에 대응하지 않을 경우 수출기업들의 발목을 잡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진단했다. 특히 무역의존도가 높은 국내 기업에 매출 타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민 탄소중립연구원 대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는 스코프3 공시를 의무화하는 규정을 올해 안에 확정할 예정이고, 유럽은 기업지속가능성보고지침(CSRD)를 통해 내년부터 공시가 의무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글로벌 공급망에서 협력사 위치에 있는 한국 기업의 수출길이 막히지 않으려면 스코프3에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업들은 스코프3 공시 자체에 어려움을 호소하지만, 구체적으로 항목을 포함하는지가 더 큰 문제다. 구체적인 측정 범위와 측정법이 구축된 스코프1(기업이 직접 배출한 배출량)·스코프2(에너지 사용에 따른 배출량)와 달리 스코프3는 명확한 규정이 존재하지 않아 동종 업계 안에서도 세부 공시 항목이 제각각이다.

지난해 스코프3를 공시한 IT 기업 6곳의 지속가능경영보고서를 살펴본 결과, 스코프3 공시 항목이 모두 달랐다. 이들 기업은 세계자원순환연구소(WRI)의 온실가스 프로토콜 가이드라인을 참고해 스코프3를 측정했지만, 측정 항목 수는 크게 차이났다. KT의 경우 스코프3와 관련된 가이드라인 15개 항목 중 10개 항목을 충족했고, SKT는 9개, 삼성SDS는 8개 항목을 측정했다. 반면 LG유플러스는 3개 항목에 그쳤고, 카카오와 엔씨소프트는 1개 항목에 불과했다.

SKT는 협력사와 함께 배출량을 측정하고, 검증 체계 모니터링을 통해 스코프3 공시를 구체화하고 있다. SKT 관계자는 “원자재·서비스구매부터 투자에 이르기까지 데이터의 형태와 양이 다양해 취합과 산정에 어려움이 있었지만, 관계사들의 협력으로 스코프3 공시를 구체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SKT의 스코프3 배출량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9개 항목을 공시하고 있고, 아직 포함되지 않은 항목도 산정방법과 과정을 고도화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스코프3가 온다] 韓, 스코프3 공시율 35%... 선제 대응 안하면 수출길 막힌다

이옥수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파트너는 “동종 업계 안에서도 공시하는 세부 항목이 다르면 기업간 경쟁력을 비교할 수 없다”며 “글로벌 ESG 데이터 기관의 표준화된 원자재별 온실가스 배출량 측정 툴을 활용하거나 비슷한 공급망을 보유한 협력사나 동종업계 간 협력을 통해 스코프3의 신뢰도를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HD현대는 지난달 17일 조선업계 온실가스 배출량 스코프3 산정 표준화를 위한 프로젝트에 들어갔다. 자사 조선 계열사인 한국조선해양·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현대삼호중공업을 비롯해 국내 주요 조선사인 대우조선해양·삼성중공업이 참여한 공동 프로젝트다. 스코프3 배출 산정 방법을 공유·검증해 표준화하고, 이를 글로벌 가이드라인을 마련하겠다는 취지다.

HD현대 관계자는 “국내 조선사들과 ‘탄소발자국 원팀’을 꾸려 향후 글로벌 조선업 탄소중립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며 “스코프3는 이해관계자 모두가 머리를 맞대야 할 일인만큼 앞으로 글로벌 조선사, 국제해사기구 등 국제기관들과 협력도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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