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슬란드는 재생에너지를 활용해 전력수요를 100% 충당하는 국가다. 유라시아판과 북아메리카판이 만나는 지점에 있어 지각 활동이 활발하고, 화산 폭발이 잦아 지열을 이용한 발전이 쉽다. 또 U자형 계곡이 많고, 편서풍이 불어 수력 발전도 용이하다. 이 같은 지리적 특성으로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많아, 자연스레 이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관리하기 위한 기술 연구도 활발히 이뤄졌다.
반면 한국은 재생에너지 불모지다. 지리적 조건을 고려하면 태양광과 풍력 발전이 가능하지만, 각종 규제와 주민과의 마찰 등으로 활성화엔 어려움이 있다. 또한 정부는 지난해 11월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 목표치를 기존 30.2%에서 21.6%로 하향 조정했다.
국제에너지기구(IEA)가 지난해 발표한 ‘재생에너지 2022(Renewables 2022)’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국내 총 발전량 중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8.3%에 불과했다. 재생에너지를 얻기 용이한 지리적 특성을 가진 아이슬란드, 오스트리아, 캐나다 등을 제외하고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이 31.3%인 것을 감안하면 이는 매우 적은 수치다.
가상발전소(VPP) 시장은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높은 국가를 중심으로 활성화됐다. 발전량이 일정 수준 이상 확보돼야 안정적인 가격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일, 호주, 미국 등 가상발전소 시장이 활성화된 국가는 대부분 전체 전력 생산량 중 재생에너지 발전량 비중이 20% 이상이다.
현재 가상발전소 시장의 선두주자는 독일이다. 독일은 2000년 재생에너지법(EGG)을 제정해 재생에너지 비중을 대폭 확대했다. 이후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가상발전소 시장이 성장했다.
독일의 가상발전소 운영 기업 넥스트 크라프트베르케(Next Kraftwerke)는 전 세계 최대 규모의 가상발전소 전력을 보유하고 있다. 2009년 독일에 설립된 이후 유럽과 아시아에도 진출했다. 벨기에와 오스트리아(2014년), 프랑스(2015년), 폴란드와 네덜란드(2016년), 스위스와 이탈리아(2017년) 등 유럽 8개국과 일본(2020년)에 있는 발전기 4000기의 전력 네트워크를 통합 운영한다. 지난해 1~9월 넥스트 크라프트베르케 가상발전소에서 거래된 총 전력 규모는 1만1182MW에 달한다. 2022년 한국의 누적 재생에너지 설비 용량이 2만7103MW인 것을 고려하면 매우 큰 수치다.
덴마크와 호주도 독일의 뒤를 이어 가상발전소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덴마크의 최대 발전사 오스테드(Orsted)는 해상풍력 단지 조성과 가상발전소 운영에 필요한 자동조절기술을 개발해 보급한다. 호주는 민관협력을 통해 가상발전소 시장을 확대하고 있다. 호주 최대 전력회사 에이지엘(AGL)은 호주 연방 에너지청(ARENA)과 함께 남호주 인근 약 5만 가구에 가정용 태양광 설비를 설치하고 이를 통합해 5MW 규모의 가상발전소를 운영하고 있다.
유럽에 비해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적은 미국과 일본은 재생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저장하고 관리하기 위한 기술 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미국의 에너녹(ENERNOC)은 전 세계 12개국에서 6000MW 이상의 전력을 동시에 관리할 수 있는 수요대응(DR)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재생에너지 효율화에 힘쓰고 있다. 일본 간사이전력은 축전기와 DR 등을 활용해 11MW 규모의 실증사업을 진행 중이다.
세계적인 가상발전소 확대 흐름에도 국내에는 가상발전소가 전무한 수준이다. 전문가들은 재생에너지 발전 규모가 매우 작아 가상발전소 비즈니스가 성장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김종현 에너지기후변화학회 산업부회장은 “국내 가상발전소 시장은 20년 전부터 수익모델이 나오지 않고 있다”며 “해외의 경우 정부차원에서 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의 일환으로 가상발전소 사업자들의 수익까지 뒷받침해주고 있다”고 말했다.
한가희 기후솔루션 연구원은 “국가 차원의 탄소중립, 기업의 RE100 이행 등을 위해 재생에너지 확대는 필수”라며 “재생에너지 발전량 증가로 전력계통의 유연성이 필요해지면 가상발전소 역할도 매우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황원규 기자 wonq@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