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기물 가운데 환경에 악영향을 가장 많이 미치는 것은 단연 플라스틱이다. 폐기물 비중이 가장 클 뿐만 아니라 매립할 경우 자연 분해되는데 수백년이 걸리고 소각을 할 땐 다량의 온실가스를 내뿜는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환경 분야 주요 공약으로 쓰레기 처리를 매립과 소각 중심에서 재활용을 기반으로 하는 열분해 방식으로의 전환을 내건 이유다.
유엔(UN)에서도 오는 2024년 말까지 세계 첫 플라스틱 오염 규제 협약을 만들기로 합의했다.<관련기사 유엔, 2024년까지 세계 첫 ‘플라스틱 규제 협약’ 만든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 석유화학 기업들은 플라스틱을 열분해 방식으로 처리하는 ‘화학적 재활용’을 미래 산업의 핵심 기술로 지목하고 연구·개발과 양산 체제 구축에 힘을 쏟고 있다.
폐플라스틱 재활용 기술은 크게 기계적 재활용과 화학적 재활용 기술로 나뉜다. 기계적 재활용은 사용 후 플라스틱을 원료로 분쇄·세척·선별·혼합 등의 기계적 처리 과정을 거쳐 재생 플라스틱을 제조하는 과정이다. 공정이 비교적 단순하고 조기에 사업화할 수 있어 대부분의 플라스틱 재활용이 기계적 재활용 기술을 이용한다.
석유화학 기업들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화학적 재활용이다. 화학적 재활용은 고분자 형태의 플라스틱을 화학적 반응을 통해 분해하는 기술이다.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통해 만들어진 폐플라스틱 열분해유는 원유 대신 석유화학제품의 원료로 사용할 수 있다. 재활용기술 개발이 어렵고 상용화하기까지 많은 비용이 필요하지만 여러 번의 재활용에도 처음의 물성을 그대로 유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때문에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 화학적 재활용의 점유율이 점차 확대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삼성증권 ESG연구소는 2020년 90만t에 그친 전 세계 화학적 재활용 제품 생산 규모가 오는 2030년 410만t으로 4배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같은 기간 전체 플라스틱 재활용 시장에서의 점유율도 6.6%에서 20.6%로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국내 석유화학 기업들은 화학적 재활용 시장을 선점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자를 벌이고 있다. SK지오센트릭(전 SK종합화학)은 지난 15일 미국의 재활용 기업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에 5500만 달러(약 680억원) 규모의 지분 투자를 했다. SK지오센트릭은 지난해 9월부터 화학적 재활용 시장에 진출하기 위해 퓨어사이클과 파트너십을 맺고 협력 관계를 구축해 왔다. 퓨어사이클 테크놀로지는 폐플라스틱에서 오염물질과 냄새, 색을 제거한 초고순도 플라스틱 재생원료를 뽑아내는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양사는 올해 1월 한국 생산공장 설립을 위한 주요조건합의서(HOA)를 체결했다. 이를 통해 올해 내에 한국 합작법인을 설립하고 공장 건설에 착수해 2024년 말까지 울산미포국가산업단지 내에 폐플라스틱 재활용 생산설비를 구축할 계획이다.
국내 페트(PET) 1위 생산 기업인 롯데케미칼은 직접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개발하고 양산체계를 갖추기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다. 2030년까지 울산 페트 공장의 연 생산량 34만t 전량을 화학적 재활용 페트 생산으로 전환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우선 2024년까지 1000억원을 투자해 연 생산량 11만t 규모의 화학적 재활용 페트 공장을 신설하고자 기술 협력 등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화학적 재활용 기술을 이용해 제품 상용화에 나선 곳도 있다. SK케미칼은 지난해 10월 세계 최초로 화학적 재활용으로 만든 플라스틱 소재인 ‘코폴리에스터’를 상업 생산해 화장품 업체에 납품하고 있다. 올해부터 화학적 재활용 페트인 ‘스카이펫 CR’을 제주 삼다수에 공급하고 있다.
구지선 KDB미래전략연구소 연구원은 “화학적 재활용의 기술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계 간 활발하게 협력을 하고 기술 최적화를 이뤄 상업 가속화가 이뤄지고 있다”며 “화학적 재활용 시장은 친환경 흐름과 함께 지속가능경영을 위한 비즈니스로 지속적으로 각광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고 했다.
강명윤 더나은미래 기자 my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