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 인터뷰] 김경일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
김경일(52) 아주대 심리학과 교수의 하루 일정은 빠듯했다. 낮 12시 30분. 약속된 시간에 딱 맞춰 도착했다. 점심으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끝나면 곧바로 분당으로 이동해 연달아 회의 2개를 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요즘 여러 대중 강연을 통해 ‘스타 교수’로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유튜브에 강연이 올라오면 조회 수 10만회 정도는 쉽게 넘기고, 50분짜리 긴 강연도 100만회를 넘긴다. 심리학의 문턱을 낮춘 그의 강연에는 늘 ‘행복론’이 담겨있다. 새해를 닷새 앞둔 지난달 27일, 서울 서초구에 있는 게임문화재단 사무실에서 김경일 교수를 만났다. “행복의 빈도를 높여라”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확신을 가져라”고 주문하는 그에게 행복의 조건을 들어 봤다.
잘 선택한다는 것
―지금 행복하십니까?
“3시간 전에 행복했고요. 내일 오후 5시에는 행복할 거예요. 이게 제 답입니다.”
―무슨 뜻입니까?
“‘지금 행복하냐’고 묻는 건 ‘지금 기온이 몇 도야?’라고 질문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해요. 행복은 상황과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니까요.”
―본인만의 ‘행복 전략’이 있습니까?
“적당히 근시안적으로 살아요. 번아웃이 올 정도로 일하면서 일정 중간에 친구와 막창을 먹는 약속을 끼워넣는다거나 커피 마시고 수다 떠는 시간도 따로 만들어두는 거죠. 연료를 주입해야 다음 일정을 소화할 수 있어요.”
―행복은 어쩌면 잘된 선택의 결과가 아닐까요?
“어느 하나를 선택한다는 건 나머지를 버린다는 뜻입니다. 무언가를 좋아서 하는 선택 같지만 사실은 싫어하는 걸 제외한 걸 선택하는 거예요. 역설적이게도 그래서 나쁜 경험이 많은 사람들은 결정이 쉽고 빠릅니다. 많은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한 거죠. 영어적으로 표현하기도 어려운 ‘주책맞다’ ‘오지랖 넓다’는 말을 덜 해야 해요.”
―모든 선택지가 싫으면 어떻게 되나요?
“선택하기 굉장히 어렵죠. 시쳇말로 ‘선택 장애’라고 부르는 상황인데요. 선택지가 두 가지일 때, 모두 좋거나 모두 싫거나 하면 선택하기 쉽지 않죠. 정치도 마찬가지죠. ‘누가 돼도 똑같아’라고 하지 말고 일단 참여하고 나쁜 경험이라도 해야죠.”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지 않습니까?
“그럴 수 있죠. 선택은 후회와 맞닿아 있거든요. 결과적으로 잘못된 선택을 동력으로 삼으려면, 일인칭 시점으로 바라봐야 해요. 많은 사람이 인칭을 혼합해서 쓰는데 이럴 경우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볼게요. ‘오판이 내려졌네’ ‘운이 안 좋았다’고 말하면 앞으로 발전하기 어려워요. 학습효과가 없으니까요. ‘내가 잘못 생각한 게 있다’고 해야죠. 두 번째로는 잘못된 선택도 확신을 갖고 해야 합니다. 자신 있게 틀리면 망신 한 번 당하고 앞으로 절대 같은 실수를 안 하니까요.”
잘 쉰다는 것
―팬데믹 이후 인류는 ‘극대화된 삶’에서 ‘적정한 삶’으로 간다고 했습니다.
“적정한 삶이라는 건 사실 ‘적정 기술(Appropriate Technology)’에서 온 겁니다. 대량 생산과 첨단 기술이 행복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데서 출발한 개념이에요. 식수가 부족한 아프리카 마을에 대자본을 들여 수도관 공사를 하기보다 도넛 모양의 물통에 끈을 연결해 바퀴처럼 끌면서 식수를 운반할 수 있게 하는 거죠. 우리 삶의 욕구도 굉장히 다양해졌기 때문에 많이 가져서 해소하는 데는 한계가 있어요.”
―욕심을 부리면 안 된다는 흔한 말 같습니다.
“일본을 대표하는 기술 기업인 소니가 왜 주저앉았을까요.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저는 과잉 기술 때문이라고 봐요. 법인이 아니라 한 개인으로 보면, 실패하는 인생도 힘든 인생도 대부분 과잉으로 망합니다. 그러니까 일과 여가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며 ‘워라밸’을 원하고는 있지만, 정작 사람들은 그걸 못 해요. 주말마다 도로 위는 자동차로 미어터지죠. 그 사람들은 금요일까지 일한 사람들이에요. 쉬어야 하는데, 놀아야 하는데, 또 과잉 에너지를 쓰면서 일요일까지 돌아다니는 거예요.”
―잘 쉰다는 건 어떤 겁니까?
“누군가 제게 취미를 물어보면 ‘잠’이라고 답해요. 취미 생활을 마치고 나면 기분이 좋아지고 활력이 생기고 자아존중감도 높아져야 해요. 그래서 잠을 자는 게 취미이자 잘 쉬는 방법이에요. 잠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소위 죽지 않기 위해서 에너지를 축적하는 기능적 잠이 있고, 자신을 위해 만끽하는 잠이 있어요. ‘꿀잠’이죠.”
―가족 혹은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은 좋은 거 아닌가요?
“자기를 소진시키면서 욕구를 해결하지 못한 채 끊임없이 어딘가로 가야 한다는 강박으로는 행복에 도달할 수가 없습니다. 적정 기술처럼 작은 자원으로 만족의 빈도를 높이는 것이 행복의 기술이죠.”
―빈도를 높인다?
“우리 뇌는 트라우마같이 아주 극단적으로 힘든 기억이 아니라면 강도보다는 빈도를 기억해요. 이를테면 하루에 자질구레하게 안 좋은 기억이 5개면 굉장히 안 좋은 날로 기억하는데, 반대로 자잘한 좋은 일이 5번 있으면 굉장히 행복한 날로 기억하는 겁니다.”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한국 사람들의 특징은 결과의 크기와 목적지에 집착해요. 그걸 버리면 됩니다. 비행기를 타고 미국 그랜드캐니언을 가도 빈도가 확 줄기 때문에 만족이 오래가지 못해요. 적정한 삶은 빈도와 여정 이 두 가지에 관심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달성됩니다.”
―우리가 잘못 살고 있는 건가요?
“한국 사람들이 기본으로 만족 기제가 잘 발달돼 있지 않아요. 그래서 한 번에 세게 행복을 누려야 만족할 거라고 생각해요. 행복감은 ‘아난다마인드’라는 신경전달물질이 나와야 느낄 수 있는데, 아시아 특히 한국인들의 생성량이 현저히 적어요. 반대로 아프리카인들은 아난다마인드 생성량이 풍부해서 적게 가져도 쉽게 행복해지죠. 피부색이 다르듯 인종적인 차이입니다.”
―노력이 필요하다는 말씀인데, 머리로 이해하더라도 행동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큰 부자들의 공통된 특징이 뭔지 아세요? 행복의 빈도를 느낄 줄 안다는 점이에요. 마크 저커버그 패션이 화제가 된 적이 있죠? 평범한 회색 반소매 티, 후드티였어요. 명품을 걸치면 주변에 다가오는 사람의 수가 확 줄거든요. 겸손한 모습을 보이는 게 아니에요. 다양한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고 행복의 빈도를 높이는 전략이 있는 거죠. 기부할 때도 거액을 한 번에 하는 게 아니라 여러 번 나눠서 하잖아요.”
―올해 조금 더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요?
“나와 다른 사람을 많이 만나보세요. 좋은 선택을 하려면 많이 만나고 들어야 합니다. 비슷한 사람끼리 편향된 정보를 갖고 선택하면 반드시 후회가 많아져요. 그리고 다음 선택을 주저하게 되죠. 다양한 가치관을 접하면 자기 주관을 갖게 되고,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도 알게 됩니다. 누군가에겐 힘들고 괴로운 일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상대방과 적정한 거리를 두는 법을 깨우치는 것도 살아가는 데 필요한 소양입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