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3일(토)

[더나미 책꽂이]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외

머물고 싶은 동네가 뜬다
‘슬세권’이 주목받고 있다. 슬세권은 슬리퍼와 세권(勢圈)을 합친 말로, 슬리퍼를 신은 가벼운 복장으로 카페, 편의점, 영화관, 쇼핑몰 등 각종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주거 지역을 일컫는다. 젊은 세대의 주거지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이기도 하다. ‘골목길 경제학자’라 불리는 저자는 도시의 미래를 동네에서 찾는다. 그는 코로나19 확산으로 기존 유통 산업에 찾아온 위기를 집 주변 ‘동네’가 주목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 강조한다. 동네 상권을 중심으로 형성된 로컬의 핵심은 다양성이다. 저자는 각 지역만이 가진 역사, 문화, 공동체 등을 활용해 동네를 차별화된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 책은 앞서 출간된 ‘골목길 자본론’ ‘인문학,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다’과 함께 저자의 ‘로컬 비즈니스 3부작’의 완결편에 해당한다.
모종린 지음, 알키, 1만9000원

내 친구 압둘와합을 소개합니다
시리아 내전이 만 10년을 맞았다. 그간 시리아에서 발생한 난민은 1150만명에 이른다. 이들은 터키, 레바논 등 이웃국가로 몸을 옮겼다.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의 고통은 길어지고 있지만 이들을 향한 혐오의 시선은 누그러들지 않는다. 저자는 시리아 난민 압둘와합을 ‘친구’로 소개한다. 압둘와합은 시리아에서 변호사로 일하다 한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첫 번째 시리아인이다. 저자도 압둘와합을 처음 만났을 당시를 회상하며 이국적인 외모와 문화적 차이로 거부감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이후 친분을 쌓으며 속사정을 알게 되고, 이슬람과 난민에 대해 이해하기 시작했다. 저자는 “북한과 전쟁이라도 나면 한국인도 난민이 될 수 있다”고 말한다. 2020년 기준 국내에 체류하고 있는 난민은 3454명. 고국으로 돌아갈 수 없는 난민과 좀체 어울리지 못하는 한국 사회에 부드러운 통찰을 날리는 책이다.
김혜진 지음, 원더박스, 1만4800원

살릴 수 있었던 여자들
한 여성이 총격 사건으로 사망했다. 범인은 남편이다. 그는 아내와 자녀 둘을 향해 차례로 총을 쏘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남편의 가정폭력이 일가족 살해로 이어진 실제 사건이다. 미국의 가정폭력 전문가인 저자는 이 사건을 통해 비극의 원인을 분석한다. 로키는 마약중독자에 폭력을 일삼는 남편이었다. 아내 미셸은 아이들을 친정으로 보내고 남편을 상대로 접근금지명령을 신청했다. 이에 로키는 친정 집 창문을 깨고 들어와 미셸의 부모를 인질로 삼고 미셸을 협박했다. 결국 경찰에 체포된 로키는 며칠 만에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다. 누군가의 안전보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시스템 속에서 미셸은 폭력의 그늘을 벗어나지 못했다. 저자는 “아내가 가정폭력 가해자인 남편을 떠나지 않은 것은 역설적이게도 살기 위한 선택이었다”고 말한다. 세계적으로 하루 평균 137명의 여성이 가정폭력으로 목숨을 잃지만, 가정폭력은 가정이라는 관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해법은 없을까. 책에는 아내 살인을 예견하는 징후 22가지가 나온다. 가정폭력을 ‘긴급한 공중보건 문제’라고 지적한 저자의 치밀한 분석이 돋보인다.
레이첼 루이즈 스나이더 지음, 황성원 옮김, 시공사, 1만9800원

악취
“대학생 오빠들이랑 한 시간 데이트하고 3만원 용돈 받는 거예요.”
문자메시지 하나가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 않았던 저자는 ‘딱 한 번만’이라는 생각으로 성착취에 응했다. 그때까진 몰랐다. 성착취 남성들은 천천히 옥죄어왔다. 데이트는 성폭행으로 이어졌다. 저자는 지난 10년간 과거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본인의 몸에서 나는 ‘악취’에 끝없이 자책했다. 책에는 저자가 겪은 미성년자 성착취 기록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사건은 종결돼도 피해자들의 고통은 끝나지 않는다. ‘그때 그러지 않았다면’하는 자책의 시간이 이어질 뿐이다. 저자도 그랬다. 그는 “누군가에겐 내 악취가 경고라도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책을 썼다고 말한다.
강그루 지음, 글항아리, 1만3500원

미래가 불타고 있다
세계적인 환경운동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저자가 기후위기를 주제로 책을 냈다. 기후운동의 바이블로 불리는 ‘이것이 모든 것을 바꾼다’ 이후 5년 만에 내놓은 신작이다. 기후위기를 ‘기후재앙’이라고 칭하는 저자는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기후위기 대응을 하나씩 소개한다. 그레타 툰베리를 필두로 한 청소년들의 움직임, 기후변화를 핵심 의제로 당당히 미국 하원 의원에 당선된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등은 시민이 건설하려는 미래를 간접적으로 보여준다. 또 키스톤 XL 송유관과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반대 시위, 브리티시컬럼비아 산불 등 지난 10년간 기후변화 논의에서 전환점이 됐던 사건들도 조명한다. 결국 모든 이야기는 ‘그린뉴딜’로 모인다. 저자는 그린뉴딜을 “확실하게 불을 끌 수 있는 종합적이고 총체적인 계획”이라고 강조한다. 책은 재생에너지로의 전환, 녹색 산업으로의 전환, 오염 산업에 피해 입은 지역에 대한 보상 등 구체적인 방안들을 담고 있다. 날이 갈수록 더 격렬하게 불타는 지구의 불을 끄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나오미 클라인 지음, 이순희 옮김, 열린책들, 2만2000원

김지강 더나은미래 기자 rive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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