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위기가정 ‘닫힌 문’ 여는 사회복지사
배유리 대전가정위탁지원센터 사회복지사가 A(18)군을 처음 만난 건 지난해 여름이었다. 아버지를 여의고 홀로 남은 A군은 자신이 입양아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되면서 심리적으로 크게 위축됐다. 아버지가 살아있을 때만 해도 왕래하던 친척들이 하나둘 연락을 끊었다. 무엇보다 경제적인 문제가 가장 심각했다. 식비는 물론 생필품을 살 돈도 없었다. 끼니를 거르는 날이 많았고 그마저도 라면으로 때우는 게 다반사였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지만 정부의 지원을 받을 방법은 마땅치 않았다. 미성년자였지만 만 18세가 넘어 시설 위탁이나 가정 위탁도 어려웠다. 배유리 복지사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지원 사업들을 수소문해 생계 주거비를 지원하는 ‘신한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을 A군에게 연결해줬다”면서 “덕분에 식료품과 그릇, 냄비, 세제 등 기본적인 생필품을 갖출 수 있었다”고 했다. 대전가정위탁지원센터에서는 A군의 성공적인 자립을 위해 후견인을 찾는 업무와 더불어 자립 교육 제공 등 사후 관리를 통해 지원을 이어가고 있다.
위기가정 지원사업에 ‘사회복지사’들이 핵심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이들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전국 각지 위기가정을 직접 발굴하고 민간 지원사업과 적절하게 연결하는 일을 맡고 있다. 특히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위기가정이 늘어난 올해는 사회복지사들의 역할이 더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위기가정은 자연 재난이나 사회 재난 앞에서 영구 빈곤층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위기가정을 적기에 신속하게 지원하는 사회복지사들의 역량이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사회복지사들은 정부의 복지망을 벗어난 위기가정을 직접 찾아나선다. 주서연 전주지역자활센터 팀장은 “월세를 내지 못해 집주인에게 고소를 당한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며 “밀린 월세에 고소 비용까지 더해져 안타까운 상황이었다”고 했다. 그는 “급할수록 상대적으로 빨리 지원이 이뤄지는 민간 제도를 찾게 된다”고 했다. 신한금융그룹 위기가정 재기지원사업은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면 일주일 만에 지원금이 지급된다. “지원 대상자로 선정됐다는 연락을 하면 ‘진짜 선정됐느냐?’라며 몇 번이고 되묻는 분이 정말 많아요. 그만큼 지원받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죠.”
심리적으로 위축된 대상자의 마음을 여는 일도 사회복지사의 몫이다. B(21)씨는 어린 시절 겪은 학대로 낯선 사람을 두려워하고 항상 불안감에 시달렸다. 알코올중독인 아버지를 피해 집을 나왔지만, 가스와 전기가 모두 끊겨 보름간 생라면과 수돗물을 먹고 지낼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았다. 월세도 밀려 당장 쫓겨날 판이었다. 인천 남동구의 성산종합사회복지관에서 일하는 정상범 사회복지사는 B씨를 만나 생활시설 입소와 아르바이트에 나설 것을 권유했지만 좀처럼 받아들이지 않았다.
“B씨는 사람들과 지내는 것을 두려워했어요. 위기가정 재기지원 사업에 신청해 체납금은 해결했지만, 근본적인 문제는 남으니까 상담을 지속했습니다. 상담일에 오지 않는 날이 많았지만, 생계비로 대형 마트에서 부식을 구매하는 날에는 꼭 참석했어요. 이때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점점 마음을 열더군요. 조금 더 시간이 지나니까 컴퓨터 그래픽 관련 직업을 갖고 싶다며 스스로 상담 요청을 했습니다. 현재는 컴퓨터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 취득 준비를 하고 있어요.”
사회복지사들은 사례 관리를 하면서 가급적이면 전화보다는 직접 만나서 상담하려고 애쓴다. 정 복지사는 “상담할 때 대상자들의 모습이나 표정을 관찰하게 되는데, 어두운 표정과 무기력한 모습이 차츰 풀릴 때쯤 자활 의지도 강해진다”면서 “지원 사업이 종료된 이후에도 환하게 웃으며 고맙다는 말을 전해들을 때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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