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익신고의 세계]
공익신고자 보호법있지만
위반해도 벌금형이 대부분
내부에선 보복에 해고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위한 사회복지시설인 ‘나눔의 집’ 직원들이 법인의 후원금 유용 의혹을 폭로한 지 50일째다. 공익제보자들의 문제 제기로 지방자치단체 감사와 경찰 수사가 이뤄졌고 시설장까지 교체됐지만, 갈등은 오히려 깊어지고 있다. 공익제보자들은 “새 운영진이 회계 권한을 넘기라고 지시하고 업무용 프로그램 접근 권한도 삭제했다”며 “요양보호사들을 시켜 제보자들을 감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공익제보자들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공익을 위해 용기 낸 제보자를 위한 ‘공익신고자 보호법’이 올해로 시행 10년째를 맞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우선 공익신고자로 인정되는 일부터 까다롭다. 또 보호법을 위반해도 처벌이 약하고 실형으로 이어지는 사례도 드물다. 대법원에 따르면, 공익신고자 보호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건은 총 10건이다. 이 가운데 8건이 벌금형으로 마무리됐다. 사회의 부조리에 눈감지 않고 나선 공익제보자를 보호할 방법은 없는 걸까.
누가 배신자인가
대기업의 발전소 설비 담합을 폭로한 A씨. 그가 처음부터 공익제보에 나선 건 아니다. 2014년 사내 감사팀에 메일을 보냈지만, 다른 부서로 보내졌다. 문제가 해결되지 않자 입찰을 주관한 한국수력원자력에 사실을 알렸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제보 사실이 회사에 알려졌고, 사측은 고객사 협박과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해고당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7년 공정거래위원회에 효성과 LS산전 등이 발전소 설비 입찰에서 담합을 벌인 사실을 신고했다. 사건을 접수한 검찰은 피의자들을 기소하면서 A씨를 공범으로 함께 재판에 넘겼다. 결국 A씨는 1심에서 벌금 30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처럼 공익제보자가 겪는 고통은 가혹하다. 제보자들은 “조직 내부의 부조리를 제보하기로 결심하는 일도 어렵지만, 신고 이후 씌워지는 ‘배신자 굴레’는 견디기 어렵다”고 말한다. 지난 2015년 하나고 입시 비리와 학교폭력 은폐 의혹을 고발한 교사 B씨는 공익신고 이후 동료로부터 비아냥에 시달려야 했다. 내부 전산망에 그를 비난하는 내용이 계속 올라왔고, 1년간 혼자 식사를 해야 했다. 배신자 낙인은 지워지지 않았다.
사건이 불거지면 제보자의 의도를 놓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한다. 증언의 타당성을 따지기보다 제보자의 인격을 문제 삼는 것이다. 최근 공직 유관 단체인 전국재해구호협회의 부조리를 공익신고한 C씨는 “사건이 공론화된 직후 협회에서 내놓은 첫 공식 입장에는 엉뚱한 사람을 제보자로 지목하고 인신공격하는 내용이 가득 담겼다”면서 “메시지를 반박하지 못하면 메신저를 공격하는 전형적인 행태”라고 비판했다.
다른 루트 찾는 제보자들
공익침해행위, 공직자부패행위, 갑질행위 고발 등 모두 ‘공익제보’에 속한다. 하지만 법률상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공익신고’는 현재 284개 법률로 한정돼 있다. 정부는 지난 5월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을 공포하면서 공익신고 대상 법률을 기존 284개에서 467개로 대폭 늘리기로 했다. 성폭력처벌법, 병역법, 아동학대처벌법 등이 추가된 개정안은 오는 11월 20일 시행된다.
공익신고는 법률에 따라 누구든 할 수 있고 비밀은 보장된다. 하지만 공익제보자들이 모두 정식 신고 절차를 따르진 않는다. 최근엔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같은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간을 활용하기도 한다. 지난달 불거진 공군의 ‘황제 복무’ 의혹과 육군의 ‘여단장 갑질’ 논란은 모두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 제기됐다. 특히 육군 여단장 갑질 사례는 해당 부대의 병사가 실명을 걸고 직접 폭로에 나서면서 SNS상으로 빠르게 퍼졌고, 육군본부는 이틀 만에 감찰조사에 착수했다. 제보자 보호를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이를 두고 전문가들은 조직 내부 감찰시스템은 물론 국민귄익위원회조차 제보자들로부터 신뢰받지 못하는 데서 빚어진 현상으로 분석했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젊은 청년들조차 권익위나 내부 감사 부서에 신고하면 바로잡힐 문제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며 “청와대 국민청원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공론화해야 불이익도 최소화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고 말했다. 지난 24일 국방부 장관이 출석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같은 문제가 제기됐다. 이날 김남국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군대 내 부조리를 지적하면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보복을 당하기 때문에 장병들이 국민청원을 찾는 것”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문제는 국민청원을 통해 비리행위나 부조리를 폭로하면 법으로 보호받기 어렵다는 데 있다. 현행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따르면, 공익침해행위를 지도 감독·조사할 수 있는 감독기관과 수사기관으로 신고할 때만 공익신고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 국민청원 게시판을 통한 신고는 요건을 충족하지 않는다.
공익신고 범위, 더 넓어져야
전문가들은 국내 공익신고자 보호 제도가 선진국에 비해 경직돼 있다고 지적했다. 박헌영 내부제보실천운동 상임대표는 “현행 제도는 공익신고 대상 법률을 수백개 나열하고 여기에 포함되는지를 따지는 방식인데, 법률을 따져가면서 보호받을 수 있는지 판단하는 제보자가 얼마나 되겠느냐”고 말했다. 이지문 이사장은 “현행법으로는 동일한 안전 분야에 대한 고발이라 해도 공익신고자 보호법에 포함되는 법률에 따라 누구는 보호받고 누구는 배제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다”면서 “공익신고로 인정받지 못할 법률은 없다”고 말했다.
공익보호자를 지원하는 시민단체에서는 공익신고 대상을 명시된 법률로만 따지는 ‘열거주의’에서 공익침해행위를 폭넓게 인정하는 ‘포괄주의’로 전환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만 국민권익위원회는 공익신고 건수가 폭주할 우려가 있다며 조심스러운 입장이다. 지난 2일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40개 공공기관에서 처리한 공익신고 건수는 총 299만건이다. 이 가운데 혐의가 확인돼 조사기관에서 행정처분을 하거나 수사기관에 의뢰한 사건은 202만건에 이른다. 한국법제연구원 관계자도 “공익신고가 반드시 진실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에 무분별한 공익신고로 피해를 보는 기관이 늘어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시민단체의 입장은 다르다. 박헌영 대표는 “공익신고를 장려하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모자랄 마당에 신고가 많아질 것을 걱정하는 건 이해할 수 없다”면서 “수치상으로 보면 공익신고가 굉장히 활성화된 것으로 보이지만 80% 이상은 도로교통법 위반 사건이라 공익침해행위를 폭넓게 적용한다고 해서 우려할 만큼 공익신고가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공익제보자 재취업까지 책임지는 사회
해외에서는 공익신고자를 폭넓게 인정하고 보호하는 장치를 마련해두고 있다. 제보자를 가장 엄격하게 보호하는 나라는 영국이다. 영국은 1998년 제정된 ‘공익신고법’에 따라 신고자는 부조리를 고발하는 행위만으로 보호받는다. 진실 여부를 직접 증명할 필요 없다. 신고가 접수되면 수사·감찰기관이 투입되고, 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신고자에게 어떤 불이익도 줄 수 없도록 강제하고 있다.
공익신고자를 보호하는 법률은 미국에서 처음 만들었다. 영국과 마찬가지로 신고 대상 기관이 입증 책임을 지도록 했다. 만약 신고자가 보복성 조치를 당했다면 손해배상도 청구할 수 있다. 유럽의 경우, 유럽연합 차원의 보호법을 마련해 공익제보로 내부 정보를 공개한 직원을 징계할 수 없도록 했다. 또 신고 대상이 기업일 경우 공익신고자를 고소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공익신고자를 위한 충분한 보상의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변호사는 “제보자의 신변 보호, 비밀 유지 등으로 공익신고를 활성화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현행법으로 공익신고자를 두려워하는 기업은 거의 없을 정도”라고 했다. 그는 “조직을 떠날 각오로 제보한 사람들의 생계를 국가가 책임지는 기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20대 국회에서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공익신고자를 위한 기금 마련 방안을 담은 ‘공익신고자 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한 번도 논의되지 못하고 자동 폐기됐다. 당시 발의된 법안에 따르면, 대통령령으로 정한 위원회에 공익신고자지원기금을 설치하고 벌금 수납액과 출연금 등을 통해 재원을 모금한 후 공익신고자 지원·보호에 사용하도록 했다. 직장을 잃고 법정 소송에 시달리는 공익신고자에게 실질적인 경제적 도움을 주기 위함이다.
박헌영 대표는 “우리 사회에는 내부 신고가 아니면 밝혀지기 어려운 사건이 여전히 많은데, 지금처럼 제보자를 제대로 보호해주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생계를 담보로 용기 내주기만 바랄 수는 없다”면서 “공익제보자에 대한 재취업이나 보상만 제대로 이뤄져도 공익신고는 굉장히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지문 이사장은 “공익신고를 처벌 목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면서 “언제든 공익신고가 이뤄질 수 있다는 사회 분위기를 조성해 부조리를 예방하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