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책 ‘기부불신’ 이보인 저자
“믿을 만한 기부 단체가 있긴 해?” 흔히 들리는 볼멘소리다. 작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 지난 1년 동안 기부를 한 적이 있는 사람의 비중은 23.7%로 10년 전(34.6%)보다 10%p나 줄었다. 기부 불신은 기부하지 않는 이유 3위(10.9%)를 차지했다. 연말 구세군 모금함 소식에도, 사랑의열매 사랑의 온도탑이 100도를 달성했다는 뉴스에도 냉소와 비아냥이 섞인 댓글을 찾는 것은 어렵진 않다.
한국 사회의 만연한 기부 불신을 파헤친 사람이 있다. 지난달 24일 발간된 책 ‘기부불신’의 이보인 저자는 한국 기부문화의 현실을 보여주며, 왜 기부단체를 믿지 못하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한다. 대형 기부단체 7곳(사회복지공동모금회, 월드비전, 초록우산, 굿네이버스 인터내셔날, 유니세프 한국위원회, 세이브더칠드런, 사회복지법인 굿네이버스)의 국세청 공익법인 공시자료와 홈페이지를 ‘기부자’의 시선에서 꼬박 3년간 분석하고, 뜯어봤다.
이보인 저자는 SK텔레콤에서 SK행복나눔재단 ‘행복도시락’ 업무를 담당하며 비영리와 인연을 맺었다. 이후 하버드 케네디 스쿨을 거쳐 넥슨에서 ‘넥슨컴퓨터박물관’과 넥슨재단 설립을 주도하고, 다시 행복나눔재단으로 돌아왔다. 현재 행복나눔재단의 전략기획팀 본부장으로, ‘100% 기부금 전달’에 초점을 맞춘 ‘곧장기부’ 플랫폼을 실험하고 있다.
기부단체를 믿지 못하는 사람들
-책 제목과 표지가 강렬하다. ‘기부불신’을 집필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
“기업에서 사회공헌 업무를 하다가 비영리로 오면서 지인들로부터 기부단체에 대한 불신이 담긴 숱한 이야기를 들었다. 비영리 생태계를 잘 몰라서 하는 말일 수도 있지만, 기부 불신 때문에 기부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체감한 거다. 나도 궁금했다. 기부 불신으로 기부금이 줄어들면 결국 피해는 소외계층에게 향한다. 원인을 진단하면, 해결책도 나올 거라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이 책은 내 기부금의 행방을 알고 싶은 집요한 기부자의 시점에서 쓴 것이다.”
-기부금의 행방을 추적해보니, 더 기부단체를 믿을 수 있게 됐나 아니면, 어려워졌나.
“솔직히 말하면 내 짐작보다 더 심각했다. 공시된 데이터와 자료를 가지고 액셀로 분석해보니, 상당히 오해받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기부단체가 부정하게 돈을 쓰고 있다는 말이 아니다. 분류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고, 모호한 지점이 많았다.”
저자는 책에서 기부단체들의 인력비 비율, 공익목적사업비 대비 일반관리비 비율 등의 데이터를 비교했다. 유니세프의 모금비를 분석하면서 국세청 공시자료 ‘기부금품의 수집 및 지출 명세서’ 세부 내역의 허점도 짚어냈다. 거래처별 지출 금액은 나오지만, 어떤 지출이 모금비용인지 구분되어 있지 않다는 것. 기부단체들은 국세청 페이지에 재무상태표, 운영성과표, 감사보고서까지 공시하고, 홈페이지에도 투명성 페이지를 만든다. 하지만, 기부자가 알고 싶은 것은 ‘내 기부금의 행방’이라고 강조한다.
-책에서 ‘대형 기부단체들은 기부 혁신을 요구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온라인 속 대중들의 반응만 봐도 피부로 다가온다. SNS 속 기부 광고에는 ‘직접 돈을 주고 싶으니 계좌번호를 보내달라’는 댓글이 달린다. 기부 관련된 기사에는 단체를 못 믿겠다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기부단체가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한 것이다. 온라인 쇼핑만 해도 내 택배가 어디까지 왔는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내가 돈을 낸 캠페인 속 사연자의 삶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알기를 원한다. ‘직접 확인’에 대한 사람들의 요구치는 점점 높아지는데 기부단체는 연차 보고서를 내는 게 전부다. 그러면서 모금 방식은 여전히 사연 중심이다.”
많은 기부자들이 캠페인으로 소개된 사연을 통해 기부를 시작한다. TV 방송, 포털 배너 광고, SNS에서 심금을 울리는 문구도 심심치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저자는 세이브더칠드런, 월드비전 등의 모금 캠페인을 추적하며 결국 ‘하나의 모금함’으로 통합되고 있음을 확인했다. 각종 캠페인에 연결된 모금함이 일괄적으로 관리되고 있는 것. 기부금의 행적이 묘연해지면서 사람들은 ‘기부단체가 기부금을 맘대로 쓴다’는 오해에 빠진다. 그는 기부자가 원하지 않는 사업에도 기부금이 쓰일 수 있는 위험성도 지적한다.
기부단체의 회색 코뿔소, 운영비의 진실
기부불신의 또 다른 쟁점은 ‘운영비’다. 대다수 기부자는 최대한의 돈이 수혜자에게 전달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모금을 하는 것부터 사업을 집행하기까지 모든 과정에 운영비가 필요하다. 기부단체가 효과적으로 자원을 배분할 수 있도록 전문성을 담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운영비에 대한 부정적 시선 때문에 기부단체는 운영비의 존재를 감춘다. 이 때문에 ‘기부단체가 쓸데없이 많은 운영비를 쓰고 정작 수혜자에게 가는 것은 얼마 없다’는 인식이 일반 대중 사이에 돈다. 결국 기부 불신이 심화된다.
-기부자와 기부단체들이 생각하는 운영비의 범위가 다르다는 점을 명쾌하게 짚어냈다.
“운영비에 대해서는 ‘90%까지 전달한다’, ‘5%도 안 간다’는 등 소문이 많다. 사실, 국세청 자료에서도 운영비에 대한 명확한 정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회계감사를 받기 때문에 형식에 어긋나지는 않겠지만, 기부자의 눈높이에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기부단체들이 생각하는 운영비는 소위 15%, 일반관리비와 모금비를 합친 개념이지만, 실제 기부자들이 생각하는 운영비는 ‘실제 대상에게 전달되는 비용’, 즉 ‘분배비’를 뺀 나머지를 말한다.”
기부단체가 쓴 거의 모든 지출은 ‘공익목적사업비’로 분류된다. 분배비와 사업운영비를 포함한 사업수행비는 일반적으로 기부단체가 추구하는 본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혜자, 고객, 회원 등에게 재화나 용역을 제공하는 활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말한다. 일반관리비는 기획, 인사, 재무 등 기부단체 제반 관리 활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이며, 모금비는 모금 홍보, 행사, 기부자 리스트 관리 등 모금 활동에서 발생하는 비용을 의미한다.
-기부자들에게 운영비가 필요하다는 것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 것인가.
“먼저 ‘설득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꾸준히 관계를 맺어온 정기 기부자에겐 운영비의 존재와 함께 ‘어떻게 사업을 하고 있는지’ 알릴 필요가 있다. 얼마나 운영비를 효율적으로 쓰는지 증명하는 관점이 아니라, 단체의 상황을 공유하자는 것이다. 운영비를 공개했을 때 잠깐 기부금이 줄어드는 것을 막을 순 없지만 회복할 수 있다. 하지만 운영비의 존재를 꽁꽁 감추는 건 기부에 대한 신뢰를 당겨쓰는 것과 같다. 기부 불신의 끝이 다가오면 어느 순간 기부금이 뚝 떨어질 것이다.”
기부자가 다양한 만큼 기부 유형도 다양해야
그는 해법으로 ‘기부자와 모금함의 종류를 나누는 것’을 제안했다. 누군가는 기부금이 100% 수혜자에게 전해지기를 바란다. 하지만, 비영리단체 운영비의 중요성을 알고 기꺼이 돈을 보태고자 하는 기부자도 있다. 즉, 모금함을 나눠 기부자가 직접 본인의 기부 방식을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더불어 ‘생리대 지원 사업’, ‘빈곤 여아 사업’ 등 사업의 크기별로 모금함을 쪼개는 방안도 제시했다.
-행복나눔재단에서 시도하고 있는 ‘곧장기부’ 모델을 말하는 것인가. 재단은 기업 재단이기 때문에 100% 기부 모델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 아닌가.
“물론 재단의 사례를 모든 기부 단체에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대형 기부단체에게도 충성된 기부자가 있다. 다만, 우리 단체의 사업 운영 방식이 어떤 면에서 ‘더’ 혁신적인지 기부자와 커뮤니케이션을 충분히 해야한다. 영리 기업들을 보면 하나의 제품을 팔 때 차별점을 얼마나 적극적으로 소구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최근에 곧장기부 누적 기부자가 1만명을 돌파했다. 기부불신 문제를 해결하면, 잠재 기부자가 있다는 증거다.”
곧장기부는 기부금을 기부처에 100% 전달하는 기부 플랫폼이다. 기부처는 필요한 물건을 인터넷 쇼핑몰 장바구니에 담으면 곧장기부는 해당 금액을 모금해 주문을 대신한다. 기부 물품의 결제 영수증과 배송 과정을 모두 공개하고 기부자에게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발생하는 운영비와 수수료는 SK행복나눔재단이 부담한다. 2020년 론칭한 곧장기부의 기부자는 1만2566명, 누적 기부금은 약 25억4434만원, 누적 모금함은 4162개다.
-기부시장에 닥쳐올 또 다른 잠재적 위협은 무엇이 있을까.
“혁신적 기부 시장이 다가온다. 언급했듯 ‘누구’가 아닌 ‘어떻게’ 도울 것인가를 고려하면 기부금으로 할 수 있는 시도가 많아진다. 가령 물 부족 문제를 두고 누군가는 우물을 파는 사업 대신 혁신적인 정수 탱크를 개발하는 사업에 기부하고 싶을 수 있다. 현재는 이렇게 기부할 수 있는 곳이 드물다. 다만 언젠가는 이와 같은 기부 플랫폼과 방식이 트렌드가 될 것이다. 그때는 지금까지 대형 기부단체의 주요 전략이던 감성 마케팅이 통하지 않을 수 있다. 새로운 기부 시장에 대한 수요는 있다. 결국 개인 기부 기반으로 탄탄히 성장할 수 있는 시장이 결국 갖춰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부자로서 기부단체의 변화를 촉구하더라도, 단체가 변하기까지 기부를 유지하며 기다려주었으면 한다.’ 책 말미에 있는 문장이다. 기부단체를 옮기더라도, 독자들에게 계속 기부해 달라고 요청한다. 기부단체는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변화하고, 기부자 또한 단체를 믿고 기부하는 것. 이보인 저자가 책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것인 동시에 바라는 모습이다. 이제, 변화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인터뷰=김경하 더나은미래 기자 noah@chosun.com
정리=채예빈 더나은미래 기자 yevin@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