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날아라 희망아] 출생신고 안 된 줄피아이… 학교에서 공부하고 아픈 사람 돕고 싶어요

출생 신고 하려면 거주 등록 필요하지만
가난으로 집 못 구해 가축 창고에서 생활… 학교도 못보내 한숨만

한겨울 날씨에도 단벌인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던 줄피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한겨울 날씨에도 단벌인 반팔 티셔츠를 입고 있던 줄피아이는 “의사가 되고 싶다”며 활짝 웃었다.

타지키스탄의 수도 두샨베에서 한 시간 떨어진 샤이낙 마을로 들어갔습니다. 황량한 거리 위로 싸늘한 모래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회색 담벼락을 지날 무렵, 어디선가 후다닥 뛰어오는 발소리가 들렸습니다. 온몸에 흙먼지를 가득 묻힌 여덟 살 줄피아이양이었습니다. 영하 15도까지 내려가는 한겨울 날씨, 줄피아이는 하얀색 반팔 티셔츠만 걸치고 있었습니다. 줄피아이가 가진 유일한 옷입니다. “춥지 않으냐”고 묻자, 아이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며 수줍은 미소를 보입니다.

줄피아이는 2년 전, 샤이낙 마을로 이사 왔습니다. 예전 마을에서 몇 달치 방세를 내지 못해 쫓겨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식용유 공장에서 일하던 줄피아이의 아빠는 한 달 월급으로 6만원을 벌었습니다. 네 식구가 하루 두 끼로 버텼지만, 매달 방세 4만원을 내는 건 무리였습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적장애를 가진 줄피아이의 아빠가 공장에서 해고를 당했습니다. 네 식구는 머물 곳 없이 몇 달 동안 일거리를 찾아 헤맸습니다. 다행히 이들의 처지를 딱하게 여긴 지인의 소개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습니다. 샤이낙 마을의 한 목장에서 소를 80마리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줄피아이의 아빠는 목장을 청소하고, 엄마는 소젖을 짭니다. 그렇게 매달 10만원을 받습니다.

엄마 자밀라씨는 두 아이에게 “항상 미안하다”고 합니다. 옷 한 벌, 신발 한 켤레 사주지 못해 미안합니다. 특히 벌써 2년째 학교에 못 가고 있는 줄피아이에게 더 미안하다고 합니다. 줄피아이는 출생신고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출생신고를 하려면 거주 등록을 해야 하는데, 줄피아이 가족에겐 아직 집이 없기 때문입니다.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쌓인 벌금이 벌써 160만원입니다. 자밀라씨는 “줄피아이를 학교에 보내려면 벌금을 내고, 교복을 사고, 매년 책도 사야 하는데 감당할 용기가 안 난다”며 한숨을 푹 쉽니다. 출생신고 서류 없이는 학교에 다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줄피아이는 나무판자를 덧대어 만든 판잣집으로 기자를 안내했습니다. 목장 주인이 임시로 빌려준 가축 창고입니다. 네 가족의 유일한 소원은 작은 보금자리를 갖는 것입니다. 샤이낙 마을에서 월세방을 구하려면 적어도 한 달에 10만~15만원이 필요합니다. 자밀라씨는 “집을 구하면 출생신고를 하고, 줄피아이를 학교에 보낼 수 있다”며, 답답한 가슴을 두드렸습니다.

줄피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학교에 가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합니다. 지난해 남동생 이디벡(5)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다쳤는데, 병원비가 없어서 회복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엔 이디벡이 커다란 개에게 물려 상처가 났는데, 치료를 제대로 못 했다고 합니다. 바로 곁에서 동생의 아픔을 지켜봐서인지, 줄피아이는 “열심히 공부해서 아픈 사람들을 돕겠다”며 눈을 반짝입니다. 샤이낙 마을에서 돌아오는 길, 이웃 아이가 버린 페달 빠진 장난감 자전거를 타고 놀던 줄피아이의 모습이 잊히지 않았습니다. 친구들이 학교에 가는 시간, 고장 난 장난감 자전거는 줄피아이가 놀 수 있는 유일한 소일거리였습니다.
※줄피아이와 같은 해외 빈곤 아동을 도우려면 굿네이버스(1599-0300, www. gni.kr)로 연락하면 됩니다.

샤이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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