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2월 27일(금)

팬덤 기부 경험자 10명 중 6명 “다른 자선활동 함께 하고 있어요”

[팬덤 필란트로피] (下) 팬덤 기부 동력, 518명에게 물었다

팬덤 기부 참여 이유는…
“건강한 문화 확산” 다수…팬심보다 대의가 앞서
기부금 年 10만원 미만 최다…3040세대 가장 적극적

팬덤 기부 더 활성화될까?
올해 예상 기부액 증가…좋은 일 하고, 팬으로 뿌듯
‘집단적 의사표현’으로 봐야…기부 규모 계속 커질 듯

최아린(가명·34)씨는 지난해 방탄소년단 멤버 진의 이름으로 100만원 넘게 기부했다. 정확히 123만원이다. 본인 명의로 기부한 게 아니라 연말정산 혜택은 못 받았지만, 올해도 같은 방식으로 기부할 생각이다. 올해로 직장생활 10년 차인 최씨는 “어차피 좋은 곳에 쓰일 돈인데 꼭 내 이름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지인 중에 딸의 생일에 자녀 이름으로 기부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와 비슷한 마음”이라고 했다.

이들이 스타의 이름으로 기꺼이 돈을 내는 이유는 뭘까? 단지 스타를 향한 팬심(心)일까? 더나은미래가 팬덤 기부 경험이 있는 10~40대 남녀 518명에게 속마음을 물었다.

팬덤 기부, 3040세대가 이끈다… 연 100만원 이상 기부하기도

지난 3일 SM C&C의 설문조사 플랫폼 틸리언프로에 의뢰해 설문을 진행했다. ‘팬덤 기부에 참여한 이유는 무엇입니까'(중복 응답)라는 질문에 가장 많은 사람이 선택한 답은 ‘건강한 기부 문화를 확산시키기 위해'(144명)였다. 언뜻 팬심이 팬덤 기부의 가장 큰 동력일 것 같았지만 대의(大義)가 더 앞섰다. 다음으로는 ‘스타의 기부 활동에 영향을 받아 동참'(117명),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하면서 얻는 뿌듯함'(115명) 등이 꼽혔다. 전체 응답자의 20%는 ‘새로운 기부처를 알아보다가'(105명)를 꼽았고, ‘스타의 선한 이미지를 형성하기 위해'(97명)는 가장 적은 선택을 받았다.

미국 보스턴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혜원(31)씨는 엑소 팬덤에서 진행하는 기부 프로젝트만큼은 반드시 챙긴다고 했다. 평소 국제구호개발기구에 정기 기부를 하고 있지만, 지난해 팬덤 기부의 존재를 알고 나서부터 10~20달러씩 보내고 있다. 김씨는 “소박한 액수에 비해 만족도가 높다고 생각한다”며 “한국에 있는 친구들도 많이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3040세대는 팬덤 기부의 핵심 세대다. 왕성한 사회생활을 통해 기부 여력을 갖추면서 동시에 팬덤의 정서도 이해하는 세대이기 때문이다. K팝의 대중화와 팬덤의 등장 시기를 1990년대로 보면, 팬덤에 친숙한 세대가 바로 3040이다. 이들은 팬덤 기부뿐 아니라 자선활동을 통한 사회참여에 적극적이다. 이번 설문에서도 응답자 10명 중 6명이 ‘팬덤 기부와 별개로 자선활동을 하고 있다'(67.2%)고 답했다. 세부적으로는 비영리단체 일시 기부 27.6%, 정기 기부 22.2%, 봉사활동 17.4% 등으로 집계됐다.

세대별로 따졌을 땐 30대가 가장 적극적이다. 30대는 최근 1년간 팬덤 기부와 개별 자선 활동을 병행한 비율이 71.5%로 가장 높았다. 40대는 68.1%로 그 뒤를 이었다. 10대는 57.1%, 20대는 44.3%로 조사됐다.

팬덤 기부의 특징 중 하나는 수백만원에서 수천만원의 기부금을 빠르게 모으는 것이다. 개인별 기부 금액은 얼마나 될까. 최근 1년간 팬덤 혹은 스타의 이름으로 기부한 총액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 10명 중 7명은 ’10만원 미만'(71.4%)으로 답했다. 팬덤 기부의 큰 물줄기는 다수의 소액 기부로 만들어진 셈이다. ’10만원 이상 50만원 미만’은 20.7%, ’50만원 이상 100만원 미만’은 5.2%로 나타났다. 100만원 이상의 고액을 기부한 응답자는 2.7%였고, 모두 30~40대였다.

팬덤 기부, 집단적 의사표현… 올해 더 늘어날 전망

기부금을 모집하고 기부처를 정하는 팬클럽 운영진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해서도 물었다. 이 문항에는 1(전혀 신뢰하지 않는다)부터 5(매우 신뢰한다)까지 다섯 척도를 제시했고, ‘매우 신뢰한다’는 응답이 33.6%로 가장 많았다. 긍정 평가인 ‘신뢰하는 편이다'(15.1%)를 합친 비율은 48.7%에 달했다. ‘보통이다’는 27.0%, ‘신뢰하지 않는 편이다’ 16.2%, ‘매우 신뢰하지 않는다’ 8.1%였다. 기부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를 얼마나 잘 아느냐는 대한 질문에는 전체 응답자의 43.2%가 ‘잘 아는 편이다’라고 답했다. ‘보통이다’는 30.5%, ‘잘 모르는 편이다’라고 답한 비율은 26.3%였다. 한편 기부처와 기부활동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세대는 10대(57.1%)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팬덤을 하나의 ‘커뮤니티’라는 측면으로 바라보면 팬덤 기부 현상도 이해하기 쉽다고 말한다. 책 ‘BTS와 아미 컬처’를 펴낸 문화연구자 이지행 박사는 “팬덤은 BTS처럼 스타뿐 아니라 스타워즈 같은 영화 콘텐츠를 중심으로 형성되기도 한다”며 “이처럼 공통된 취향을 갖춘 사람들의 모임은 강한 유대감을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기부라는 행위에 대한 결정과 집행도 신속하게 이뤄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부 행위는 하나의 ‘사회적 의사표현’으로 볼 수 있는데, 그런 점에서 팬덤 기부는 개인이 열정적으로 활동하는 커뮤니티 안에서 이뤄지는 ‘집단적 의사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팬덤 기부는 이미 꾸준히 메시지를 보내고 있다. BTS 팬덤인 아미(Army)가 운영하는 자선단체 ‘One in an Army’는 매달 기부가 필요한 비영리단체를 발굴해 전 세계 팬들에게 홍보 영상과 리포트를 만들어 공유한다. 기부금은 따로 모집하지 않는다. 기부단체에 직접 기부하도록 유도할 뿐이다. 기부처 선정 기준은 엄격하다. 최근 수년간 재정보고서를 검토하고, 투명하게 운영되는지도 꼼꼼하게 따진다. 한 번이라도 구설에 오른 단체는 제외한다. 이러한 작업에는 그래픽 디자이너, NGO 활동가, 회계사 등 다양한 전문성을 갖춘 팬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다.

앞으로 팬덤 기부는 더 활성화될까. 이번 조사의 마지막 질문으로 던진 ‘올해 팬덤 기부 예상액’의 결과를 보면 긍정적이다. 최근 1년간 기부 총액에 대한 응답과 비교하면 ’10만원 미만’ 응답자는 71.4%에서 67.6%로 줄고, 대신 ’10만원 이상 50만원 미만’은 20.7%에서 28.6%로 늘었다.

이지행 박사는 “기부를 결심해도 어떤 단체에 돈을 내야 제대로 쓰일까 하는 걱정이 앞서는 게 사실인데, 팬덤을 통한 기부는 이러한 단계를 뛰어넘고 맘 편하게 동참할 수 있다”며 “손해 볼 일도 없고 좋은 일을 했다는 명분도 얻고, 팬으로서 뿌듯함도 얻기 때문에 팬덤 기부 참여자는 앞으로도 늘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문일요 더나은미래 기자 ily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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