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사회적가치’ 발빠른 대응…준비 어디까지?
“조직 내에서 ‘사회적가치’를 모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중요하다는 건 알지만, 어떻게 해야할지 막막합니다.”
최근 공기업 책임경영(CSR) 관련 부서에 고민이 늘었다. 최근 발표된 2018년 공공기관 경영평가 개편 방안에 ‘사회적가치’ 항목이 대거 포함되면서 대책 마련에 분주해졌기 때문. 이번 개편안은 공공기관의 평가체계·지표·사후관리 등 평가 전(全) 단계를 10년 만에 전면 개편한 것으로, ‘사회적가치’ 배점은 100점 만점에 공기업은 최대 37점(준정부기관은 최대55점)까지 확대됐다. △일자리 창출(7점) △균등한 기회와 사회통합(4점) △안전 및 환경(3점) △상생·협력 및 지역발전(5점) △윤리경영(3점) △사회적가치 실현 사업(10~35점)으로 구성된다. 그동안 경영평가 항목에 ‘사회적가치’ 관련 항목이 ‘전략기획·사회적책임(5점)’에 불과했던 만큼 파격적인 변화다. 전문가들은 “사회적가치 항목별로 기업의 현황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개선 방안을 찾아야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사회적가치 전담조직 꾸리고 새판 짜기
당장 내년부터 사회적가치를 반영한 경영평가가 시행됨에 따라 일부 공기관들은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사회적가치’ 전략을 위한 조직 개편과 관련 사업을 기획하는 곳들이 눈에 띈다. 한국토지주택공사(이하 LH)는 미래혁신실에 전담조직으로 ‘사회적가치추진단’을 꾸렸고, 기존 부서별·사업별로 추진 중인 프로젝트를 통합하는 종합 로드맵 ‘LH 사회적가치 종합계획’을 전사적으로 실행할 계획이다. 사회적가치 자문단을 운영하고, 사회적가치 성과 측정을 위한 지표 개발과 관련 공시도 강화한다. LH 관계자는 “사회적기업의 동기를 유발하고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사회성과 보상제도를 시범적으로 도입할 계획”이라며 “시민단체, 사회적경제기업,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사회적가치 실현 아이디어 공모전도 시행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는 일자리정책실이 사회적가치 항목 중 일자리를 총괄하고, 안전·환경·상생·윤리경영 등 다른 항목에 대해서는 각 주관부서에서 추진 계획을 세우는 중이다. 한전 관계자는 “사회적가치 성과를 지표화하고 평가하다보니 보다 체계적으로 운영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설명했다. 사회적가치를 일자리 창출형 사회공헌으로 연계하는 곳도 많다. 한국남동발전은 국정과제핵심부·일자리창출부를 새로 신설하고, 노인 등 취약계층을 위한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소득증대형 사회공헌 ‘드림잡(job)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한국가스공사는 ‘사회적가치’ 항목 중 특히 안전·복지에 초점을 두고 어두운 골목길 및 우범지역에 로고젝터(빛을 투사해 벽면과 바닥에 범죄예방문구를 투명)를 설치하고, 미혼모 지원사업 등을 진행할 계획이다. ‘열린 공공기관’을 통한 공개와 참여를 강화하려는 정부 국정과제에 맞춰 정보 공시 등 투명성을 강화하는 곳도 눈에 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전문가와 NGO가 함께 참여하는 ‘KHNP 정보신뢰센터’, 쌍방향 소통 채널인 ‘국민제언 게시판’ 운영을 통해 투명한 정보 공개를 강화할 계획이다.
◇컨트롤타워 시급…평가·관리 꾸준해야
이번 경영평가에 대폭 포함된 ‘사회적가치’ 개념은 문재인 대통령이 의원 시절 발의한 ‘공공기관 사회적가치 실현에 관한 기본법’에서 출발했다. 해당법은 사회적가치를 ‘인권, 노동권, 안전, 생태, 사회적약자 배려, 양질의 일자리,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등 공공의 이익과 공동체 발전에 기여하는 가치’로 정의하고 있다. 이는 20대 국회에서 김경수·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에 의해 재발의됐다. 라영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공공기관연구센터 평가연구팀장은 “공공기관은 설립 목적상 공공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앞으로 인권·노동·반부패·품질경영·윤리경영·상생 등 사회적책임(CSR)을 더욱 강화하라는 것이 골자”라며 “주요사업 내에서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새로운 프로젝트를 찾아보라”고 조언했다.
실제로 이번 경영평가 개편안에서 주목할 항목은 ‘사회적가치 실현 사업(공기업 10~15점)’ 부분이다. 특히 준정부기관의 경우 30~35점까지 배점이 확대된 만큼 기업의 역량과 자원을 활용한 다양한 사회적가치 프로젝트를 시도해 볼 만하다. 외부 전문가, 시민단체와의 협력과 소통도 경영평가에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행정·경영학 전문가를 중심으로 꾸렸던 평가단을 시민사회단체, 현장전문가 등으로 확대하도록 한 것. 이에 각 공기업들은 시민단체 등으로부터 추천받은 분야별 현장 전문가를 선임하기 위해 평가위원 공모 중이다. 등급만 발표하던 기존과 달리 주요 항목별 평가결과를 스코어카드로 작성해 공표하는 등 투명성도 강화된다. 리스크 관리도 중요해진다. 채용비리, 감사원 조치, 형벌 또는 행정처분 확정 등 중대한 사회적책무 위반이 있을 경우 평가등급과 성과급이 조정되기 때문. 외부기관 등에서 도덕적 문제로 지속적으로 문제제기가 됐음에도 기관의 개선 노력이 극히 미흡할 경우 최하위 등급으로 평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평소 지속가능경영 관련 데이터를 꾸준히 관리하고, 매년 목표를 세워 전사 차원의 개선안을 만들어야한다”면서 “부서별로 흩어져있는 사회적가치 관련 업무를 통합하는 컨트롤타워가 있어야만 비즈니스 전반을 꿰뚫는 전략이 나올 것”이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미 전세계 글로벌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 전반을 총괄하는 이사회, CSO(Chief Sustainability Officer)를 두고 비즈니스와 책임경영을 연결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고 있다.
반면 더나은미래 취재 결과 국내 대다수 공기업에서 ‘사회적가치’ 관련 답변을 할 수 있는 전담부서나 담당자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인권경영·윤리경영·상생협력·환경 등 세부 영역별로 부서가 나뉘어져 사회적가치·사회적책임 전반에 대한 전략을 관리하고 평가하는 ‘컨트롤타워’ 역할이 없다는 것. 국민건강보험공단은 홍보팀, 사회공헌팀, 기획조정실 등 어떤 부서에서도 “사회적가치 전반에 대한 답변을 해주기 어렵다”고 했고, 국민연금공단 관계자는 “일자리 TF는 있지만 사회적가치 전반을 아우르는 전담조직은 없는 상태”라며 “사회적가치에 대한 세부 평가 내용이 나오면 그에 맞춰 준비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한국철도공사(코레일) 관계자는 “아직까지 사회적가치를 전담하는 인력은 없지만 코레일의 역량에 맞는 사회적가치 실현 사업을 열심히 구상할 것”이라고 답했다.
기획재정부 공공정책국 관계자는 “공기업별로 사회적가치에 대한 이해도와 실행력의 차이가 나타나고 있기 때문에 1월 말 경영실적보고서 작성지침을 만들어서 배포하고, 상반기 중에 사회적가치 관련 교육 및 워크숍을 진행할 예정”이라며 “기관별로 역량과 개성을 살려 사회적가치를 실현하는 다양한 전략과 사업을 시도해보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유진·박혜연 더나은미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