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인터뷰] “선진국 사회책임투자는 시가총액의 20%, 한국은 1%에 불과”

에도라도 가이(Edoardo Gai) 로베코샘 기업평가부문 대표 인터뷰

세계적인 지속가능경영 평가 및 투자 전문기관 로베코샘, S&P 다우존스 인덱스와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발표

 

문재인 정부 이후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독려하는 흐름이 가속화하고 있다. 최흥식 신임 금융감독원장이 기업의 사회책임 활동과 관련한 공시 확대를 강조한 것은 물론,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SRI) 기능을 강화하기 위해 기금운용위원회 산하에 ‘사회책임투자위원회’ 신설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회책임 투자: 투자의사 결정시 기업의 재무적 요소뿐 아니라 환경(Environmental)·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 등 기업의 지속가능성에 영향을 미치는 비재무적 요소를 동시에 고려해 투자하는 것.

지속가능경영이 ‘권고’가 아닌 ‘의무’가 된 지금, 기업은 어떤 전략을 세워야 할까.

글로벌 지속가능경영평가 기업인 로베코샘(RobecoSAM)의 에도라도 가이(Edoardo Gai) 기업평가부문 대표는 “한국 기업들은 지속가능경영 부분에서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이젠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을 이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 1일 열린 ‘2017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컨퍼런스’에서 주요 연사로 참석한 가이 대표에게 한국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물었다.

◇지속가능경영, 피할 수 없는 전 세계적 트렌드

1995년 스위스 취리히에 설립된 로베코샘은 지속가능경영 평가 및 투자 전문기관이다. 자산관리, 지수 및 주식, 지속가능성 평가 등의 정보를 통합적으로 제공하고 있다. 에도라도 가이 기업평가부문 대표는 17년전 로베코샘에 합류해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구축 총괄을 맡아왔다. 

가이 대표는 “지속가능경영이 전 세계적 트렌드가 된 지는 오래됐다”면서 “특히 일부 선진국들은 사회책임투자, 임팩트투자처럼 지속가능성과 기업의 재무적 성과를 연관시키는 일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했다. 

-지속가능경영에 대한 글로벌 트렌드는 어떠한가. 

“미국, 유럽 등 선진국에서 지속가능경영은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이미 독일은 2004년 상법을 개정해 기업 연차보고서에 사회공헌 내역을 명시토록 의무화했다. 2005년에는 연금 등 기관 투자자들이 투자할 때 해당 기업의 윤리, 사회, 환경 등을 고려했는지 공시하게 했다. 영국도 2000년 통상산업부 안에 사회책임 담당 차관을 임명하고 2004년부터 기업연차보고서에 사회공헌 내용을 담게 했다. 유럽연합(EU)은 올해부터 한 발 더 나아갔다. 종업원 500명 이상 기업들이 비재무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기업에게 사회적 책임 이행을 촉구하거나 강제하는 다양한 관행과 제도가 그동안 여러 나라에 도입되었지만, 하나의 거대 경제권에서 전체 기업을 대상으로 비재무 활동 공개, 즉 사회보고를 의무화한 것은 EU의 사례가 처음이다.”

지난 1일 열린 ‘2017 다우존스 지속가능경영지수(DJSI) 컨퍼런스’에서 강연한 에도라도 가이 로베코샘 기업평가부문 대표. ⓒ한국생산성본부

-기업의 사회책임 트렌드가 점점 자율성에서 법을 통한 강제성으로 변하는 것 같다.

“맞다. 지속가능경영이 권고사항이 아닌 의무가 되어가고 있다. 유럽이 이런 트렌드를 만들어가고 있는데, 이유는 단순하다. ‘기업이 윤리적이어야 한다’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력히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그동안 대다수의 소비자들이 제품과 서비스를 택할 때는 기업의 윤리성까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사회가 복잡 다양해지고 수많은 사회문제가 발생하면서 정부는 물론 시민사회가 나서서 기업의 사회책임을 주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불매운동이다. 소비자들은 동물실험을 하는 화장품 회사, 전쟁을 후원하는 식품회사 등의 제품을 구매하지 않겠다고 하는데, 기업 입장에선 아주 큰 리스크(Risk) 중 하나다. 기업의 윤리성이 구매에 바로 영향을 주진 않지만 이런 리스크들이 쌓이면 기업의 이미지가 되고 사람들은 구매를 꺼린다.

더불어 투자자들이 이제 ‘비재무 정보’를 보고 싶어한다. 비재무 정보라 함은 보통 ‘ESG’를 많이 이야기하는데, ‘E’는 환경(environment)으로 환경경영정책, 환경보호인증 시스템 구축 등을 의미하며 ‘S’는 사회(Society)로 인재유치, 임직원 역량개발, 사회공헌, 근로환경 등을 뜻한다. 마지막 ‘G’는 지배구조(governance)인데 기업의 지배구조, 조세 투명성, 윤리강령 등이 속한다. 사실 기업에게 가장 무서운 존재는 대중이 아닌 ‘투자자’다. 특히 연기금과 같은 거대한 투자자의 목소리를 가장 두려워한다. 그런데 거대 투자자들은 소비자 즉 여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어떤 기업이 비리 혐의가 있거나 환경 이슈가 생기면 안 좋은 여론이 형성될 것이고, 이는 곧 매출과 직결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투자자들은 위험 요소를 제거하기 위해 ‘비재무 정보의 공개’를 요구한다. 이 정보를 뜯어봄으로써 해당 기업이 투자할 만한 곳인지 나아가 사회 문제를 일으키지 않고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는지 등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실제 세계적인 기관 투자회사인 ‘블랙 록(Black Rock)’은 투자 고려 기업들에게 비재무 정보를 공개하라는 서안을 지속적으로 보내고 있다.”

◇환경정보 공개, 커뮤니케이션 부문 성장… 지배구조, 인권, 기부 투명성은 걸림돌

글로벌 금융정보사인 미국 S&P 다우존스 인덱스(S&P Dow Jones Indices·이하 다우존스 인덱스)와 로베코샘은 지난 1999년부터 전세계 2500개 기업을 대상으로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평가하고 컨퍼런스에서 결과를 발표해왔다. 한국생산성본부는 2009년부터 로컬파트너로 참여하여 다우존스 인덱스와 로베코샘과 공동으로 DJSI를 매년 평가 결과를 공개하고 있다. DJSI는 유동 시가총액 기준 글로벌 상위 2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DJSI World’ 지수와,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상위 600대 기업을 평가하는 ‘DJSI Asia Pacific’ 지수, 그리고 국내 상위 200대 기업을 평가하는 ‘DJSI Korea’ 지수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다면 올해 한국 기업들의 DJSI 결과는 어떠한가. 한국 기업들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이 궁금하다. 

“우리는 올해 초부터 약 8개월 동안 2500여개 기업의 지속가능경영을 조사 및 평가했다. 이 중 한국은 201개 기업이 평가 대상이었고 이중 52곳이 DJSI에 편입되었다.

DJSI 지수 편입 국내 기업 현황. ⓒ한국생산성본부

우선 기업을 상대로 ‘사회공헌 이사회가 별도로 있는지’ ‘여성 임원의 비율은 얼마인지’ 등을 묻는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이후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 등 자료를 추가로 더 분석하였다. 올해 평가 결과, 글로벌 2528개 평가대상 기업 중 12.7%인 320개 기업이 DJSI World 지수에 편입되었으며, 한국 기업 중에서는 삼성물산,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등 전년 대비 2개 기업 증가한 총 23개 기업이 편입되었다.(표1 참조). DJSI Asia Pacific에는 평가대상 614개 기업 중 24.8%인 152개 기업이 편입됐다. 한국 기업은 지난해 대비 1개 기업 증가한 39개 기업이 지수에 들어왔다. 올해 신규 편입한 기업은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등 2개사다. DJSI Korea 지수에는 201개 평가대상 기업 중 22.4%인 45개 기업이 편입되었다. 삼성전자,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KT&G, 현대자동차가 새로 들어왔다.(DJSI 종류는 해당 기업의 유동시가총액 기준에 따라 나눈 것으로, 같은 기업이 다른 지수에 중복 편입될 수 있다. 즉 글로벌-아시아·퍼시픽-코리아 순으로 규모가 작아지기 때문에 글로벌에 편입된 기업이 나머지 하위 그룹에 포함될 수 있다.)

2009년 DJSI Korea 발표 이후 지난 9년간 한국 기업의 사회책임 성과가 좋아지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다. 특히 온실가스 배출량과 같은 환경정보 공개, 사회공헌 성과 커뮤니케이션, 윤리정책 부문에서 성과가 크게 향상됐다. 이러한 결과는 온실가스목표 관리제 등 환경규제 정책들이 자리를 잡아가고, 최근 이해관계자들의 사회책임 성과에 대한 정보 공개 요구가 증가한 덕분이다. 공정거래, 동반성장 등 반부패 및 공정경쟁에 대한 규제가 늘었고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이슈들이 연일 사회문제가 되는 것 역시, 기업 경영 체질을 개선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한국 기업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이 향상되고 있는 것 같다. 개선되어야 할 점은 없나.

“개선 부분도 있다. 올해 평가결과 DJSI에 편입된 한국 기업의 수는 전년과 비교해 큰 변화가 없었다. 그러나 글로벌 기업들의 점수가 평균 75.6점인데 반해 한국 기업의 평균 점수는 이보다 4.1% 낮은 72.2점으로 글로벌 기업들과 여전히 성과 차이가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전년 대비 기업 지배구조, 인권, 기부 투명성 부문에서 취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장에서 인권문제 발생 여부를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 또 사외이사 선임과정의 투명성과 경영진의 윤리적 책임 등도 여전히 개선돼야 한다. 또 올해 새롭게 도입된 기부투명성 부문에 있어서는 기업이 어떤 단체에 얼마의 금액을 어떤 목적으로 기부했는지를 공개해야 하지만 구체적 내역을 밝히지 않는 것도 문제다.”

2017 DJSI 국내 기업 평가 결과 그래프. ⓒ한국생산성본부

-사회책임투자(SRI)에도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한국은 어느 수준이라고 보나.

“규모 면에서는 아직 초기 단계라 할 수 있다. 유럽과 미국의 사회책임투자 규모가 시가총액의 20%를 상회하는 반면, 한국은 시가총액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준(약 7.6조원)이다. 로베코샘은 현재 흥국자산운용과 함께 사회책임투자 상품을 평가하고 있는데, 상품 수 자체가 많지 않다.

그러나 얼마 전 금융감독위원장이 기업의 사회공헌 정보를 의무적으로 공시할 것을 주문했고 보건복지부에서 사회책임투자위원회를 신설해 국민연금의 사회책임투자 기능을 강화하겠다고 발표한 걸로 안다. 이렇게 행정당국이 ‘착한 기업 만들기’와 ‘착한 투자의 활성화’에 직접 나서면, 그 나라의 지속가능경영 수준은 크게 향상될 수 있다. 실제 일본의 경우 연기금이 사회책임투자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투자 시장이 급격히 커지기도 했다.”

지난달 30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인터뷰를 하고 있는 에도라도 가이 기업평가부문 대표. ⓒ박민영

가이 대표는 결과를 총평하면서 기업의 지속가능성은 언제든 위협 받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DJSI에 편입된 것은 동일 산업 내 글로벌 경쟁 기업들과 비교하여 지속가능성이 상대적으로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평가 결과가 편입 기업의 지속가능성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사회적 요구는 강화되고 있고 평가기준 역시 진화하고 있습니다. 이제 단순한 기부나 온실가스 배출량을 확인하는 수준을 넘어 기부처에 대한 투명한 정보공개, 양성평등을 위한 노력, 지배구조의 선진화, 판매제품의 유해물질 관리와 같은 변화하는 기준을 충족해야 합니다. 한국 기업들이 사회공헌의 양적 성장을 넘어 질적 성장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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