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2일(금)

성북구 에너지자립마을 삼덕(三德)에 가다

빈곤층 에너지 복지에서 에너지 자립으로, 그 비결은 ‘협력’

나지막한 언덕길을 올라가니 마을이 한 눈에 내려다보였다. 태양광 발전 패널이 설치된 지붕들이 눈에 들어왔다. 마을 곳곳에 설치된 빗물저금통은 굵직한 파이프를 통해 빗물을 나르고 있었다. 흙 장난을 하던 아이들은 파이프에서 빗물을 받아 손을 씻고 있었다.

“보통 빗물이 더럽다고 생각하잖아요? 빗물로 빨래나 마당 청소 를 하면 묵은 때도 잘 빠지고, 위급할 때는 여과를 해서 식수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빗물에선 단맛이 난다는 사실 모르셨죠?”

“미래에 식수가 부족해져도 우리 마을은 끄떡없다”며 주민들이 우스갯소리를 하는 이곳은 성북구 정릉동의 에너지자립마을, 삼덕 마을(구 돋을볕마을)이다. ‘삼덕’에는 삼대가 함께 살아 효가 넘치고, 이웃끼리 서로 베풀고, 친환경 에너지가 넘치는 청정마을이란 뜻이 담겨있다. 에너지자립마을이란 지역내 에너지 소비량을 낮추고 생산량은 높여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지속가능한 에너지 경제를 확립하는 공동체를 말한다.

복지관 인근에 설치된 10톤 빗물저금통이 파이프로 건물과 연결되어 있다. ⓒ장희수

2012년 서울시 에너지자립마을 조성사업에 선정된 삼덕마을은 마을의 에너지 실태 조사와 함께 에너지 발전기를 설치했다. 2015년부터는 에너지 자립을 위해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봉사단을 비롯,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이곳에 설치된 14개의 태양광 패널과 23톤짜리 11개 빗물저금통에선 친환경에너지가 지속적으로 생산, 활용되고 있다.

◇빈곤층 에너지 복지에서 출발, 삼덕 에너지자립마을

삼덕 에너지자립마을의 시작은 빈곤층 에너지 복지에서 비롯됐다. 한 달 전기세 5000원을 부담하기 어려운 빈곤층을 만나며 에너지 복지에 관심을 갖게 된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이 마을 주민들에게 에너지에 대해 화두를 던지기 시작한 것. 복지관에서 개인이 에너지를 절약하고 생산하면 마을 모두에게 에너지 활동의 이익이 돌아갈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오정희(55) 정릉종합사회복지관 관장은 “중요한 건 복지관이 원하는 마을이 아니라 주민들이 원하는 마을”이 라며 입을 열었다.

“초기엔 복지관과 주민 몇 명이 다른 이들에게 에너지 사업을 홍 보하고 설득시켰다면, 지금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에너지자립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어요. 복지관은 회의 장소를 빌려주거나 의견 조 율을 도와주는 정도로 후방에서 힘을 보태주기만 한답니다.”

복지관 책장에는 삼덕 에너지자립마을이 2015년 서울에너지복지 나눔대상에서 수상한 최우수상 상패가 전시돼 있었다.

강선향(51) 삼덕마을 주민운영위원회 총무는 “2014년에 서울시의 에너지자립마을조성사업 지원이 완료됐는데도 제 돈을 주고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고 싶어 하는 가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더니, 몇 십만원에 달하던 전기료가 몇 만원대로 떨어졌다며 만족스러워하는 주민들이 늘어난 것. 그는 “태양광 패널이든 빗물저금통이든 처음엔 반신반의했던 주민들도 이젠 그 장점을 제대로 깨달았다”고 덧붙였다.

◇에너지 효율을 위한 컨설팅부터 기금 마련까지, 정릉골 에너지 봉사단

정릉골에너지봉사단이 주거환경 개선용 소재를 들고 에너지 빈곤 가구를 방문했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에너지자립과 함께 삼덕마을 주민들은 에너지봉사단을 구축했다. 정릉동 주민 50여명이 ‘정릉골 에너지 봉사단(향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을 설립, 매달 정기적으로 지역내 에너지 빈곤층 가구들을 방문하고 있는 것. 특히 에너지 빈곤층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어르신들을 직접 찾아가 함께 밥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 스럽게 방안 구석에 쌓아둔 고지를 확인한다. 에너지가 비효율적으로 사용되고 있다고 생각되면 집 안팎을 점검해주기도 한다.

김종구(48) 에너지 봉사단원은 “에너지 빈곤층의 근본적인 문제는 비효율적인 에너지 사용”이라고 설명했다. 전기 소비가 많은 제품을 사용하거나 창문 틈새가 벌어져서 단열이 안되는 문제가 발생한다는 것. 김씨는 가장 심각한 문제로 외부에 노출된 낡은 두꺼비집을 꼽았다. 개발 제한 지역인 정릉동에는 먼지가 쌓이고 노후한 누전차단기를 쉽게 볼 수 있다. 김씨는 “이렇게 낡은 두꺼비집은 화재 위험 때문에라도 교체하는 게 좋다”면서 “하지만 대부분 임대로 사는분들이라 집주인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릉골 에너지봉사단은 이들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2014년부터 매년 9~10월 ‘소중한 나눔으로 만드는 기적의 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가수 섭외부터 물품 판매까지 봉사단이 모든 것을 준비한다. 지역 주민들은 행사에 초대돼 입장권이나 물품을 산다. 첫해에 이렇 게 모인 수익금은 1000만원. 해마다 500만원 이상 모인다. 비단 기금 조성 활동뿐 아니다. 에너지봉사단은 문화생활이 부족한 노인들에게 다양한 프로그램을 지원하고, 재정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에겐 친환경 제품을 선물한다. 최근 아들의 생일을 앞둔 한 아버지는 봉사단으로부터 자전거를 선물 받고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교복도 갈아입지 않고 복지관으로 놀러 오는 아이들, 고대부중 이지동아리

에너지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는 이지동아리 학생들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오후 4시가 되자, 갑자기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이 소란스러워졌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복지관 복도로 몰려들었다. 직원들마다 반갑게 끌어안고 인사를 나누던 이들은 복지관 1층 사랑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한참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그리곤 캠페인에 사용할 사진을 고르고 인쇄를 했다. 고대부중(성북구 정릉동) 이지동아리 학생들이었다. 동아리 명칭엔 ‘지역사회에 이바지(이지) 하자’와 ‘봉사는 쉽다(easy)’는 의미를 담았단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복지관을 찾아왔던 4명으로 시작, 지금은 17명의 동아리원이 이곳 에너지 자립 활동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오후 4시가 되자, 갑자기 정릉종합사회복지관이 소란스러워졌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복지관 복도로 몰려들었다. 직원들마다 반갑게 끌어안고 인사를 나누던 이들은 복지관 1층 사랑방에 모여 머리를 맞대고 한참동안 토론을 이어갔다. 그리곤 캠페인에 사용할 사진을 고르고 인쇄를 했다. 고대부중(성북구 정릉동) 이지동아리 학생들이었다. 동아리 명칭엔 ‘지역사회에 이바지(이지) 하자’와 ‘봉사는 쉽다(easy)’는 의미를 담았단다. 자원봉사를 하기 위해 복지관을 찾아왔던 4명으로 시작, 지금은 17명의 동아리원이 이곳 에너지 자립 활동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자리매김했다.

직접 조립한 자전거 발전기를 체험하고 있는 이지동아리 학생들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이지동아리는 매달 외부 환경 전문가를 복지관으로 초빙하여 에너지 교육을 받고, 본인의 에너지 사용량을 체크하는 에너지 통장을 기록하고 있다. 교육받은 내용을 토대로 동아리에서 퀴즈 대회를 여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에너지절약 캠페인을 기획하기도 한다. 오정희 관장은 “학생들이 모든 활동에 있어서 굉장히 주도적”이라면서 “마을 행사때는 직접 조립한 자전거 발전기를 돌려서 믹서로 주스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삼덕마을은 교육을 통한 에너지에 대한 주민들의 인식 개선을 최우선 과제로 꼽고 있다. 에너지자립마을이 지속가능하려면 사업 전반에 주민들의 결단 있는 투자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이지동아리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그린리더 교육은 빗물저금통이나 태양광 패널을 설치하도록 하는 데 한 몫을 했다.

◇에너지효율의 새로운 해석, 발효 음식을 연구하는 지역주민회 어머니들 

 2014년 에너지자립마을 3년차 지원이 끝날 무렵, 삼덕마을은 에 너지활동을 지속하기 위해 머리를 맞댔다. 주민들은 사랑방으로 제 공된 이웃집 거실, 복지관 사무실, 마을 청년이 운영하는 동네카페 에서 수차례 모임을 가졌다. 그렇게 시작된 활동이 바로 전통장, 과일청 등 발효식품을 함께 만드는 것이었다. 최근 복지관에 와플 기계가 새로 들어온 것도 이러한 활동의 일환이다. 과일청, 잼을 활용해 청년과 노인 모두 좋아하는 간식을 만들어 보는 것. 전기 대신 태양광, 수돗물 대신 빗물을 모아 쓰는 삼덕마을 주민들은 에너지의 개념을 식생활로 확장시켰다. 발효 식품을 통해 장독 안에 오래도록 보관할 수 있는 에너지를 생산하는 것도 이들이 바라는 에너지자립 마을의 모습이다.

에너지를 저장하자는 의미로 마을 어머니들이 모여 발효식품을 만들고 있다. ⓒ정릉종합사회복지관

삼덕마을에서 활동하던 모친과 아들의 영향을 에너지활동가가 된 강선향씨는 “마을 어머니들과 발효 식품을 만드는 것은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방법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전통장이나 과일청을 함께 만들면서 자연스레 에너지 자립을 이야기하게 됩니다. 이웃은 어떤 에너지를 활용하는지, 마을엔 어떤 활동이 있는지, 에너지는 어떻게 아껴야하는지 등을 스스로 관심을 가지고 알아보게 되거든요. 빗물저금통을 쓰는 아저씨가 강수량이 줄어드는 것을 걱정하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에요.”

에너지 자립은 앞으로도 계속된다. 삼덕마을은 올해 마을회관을 신축해 에너지자립 활동의 본거지로 삼을 계획이다. 외부 탐방객을 위한 에코 투어도 준비 중이다. 서울시는 내년까지 에너지자립마을을 100여개소로 늘리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삼덕마을이 이뤄온 성과와 노하우들이 에너지 자립을 꿈꾸는 전국의 마을들로 확산되길 기대해본다.

장희수 더나은미래 청년기자(청세담 7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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