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선희씨 두 아들 직접 편지·영상 기획해 지진 피해 日주민 전달
“부모부터 관심 가져야 아이들 스스로 실천해”
옛말에 “아이들은 제 밥그릇 타고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부모들은 아이를 공동체 안에서 건강하게 키워낼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상황에서도 지금보다 더 많은 아이들을 낳아 키웠습니다. 그러나 현대에 요구되는 부모의 역할은 쉽지 않습니다. 지난 9월 발표된 교과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교생 10명 가운데 1명은 정신 건강에 대한 정밀검진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경제적인 풍요로움과 많은 교육의 혜택을 주고 있지만 웬일인지 마음이 아픈 아이들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입니다.
영아기, 유아기, 아동기, 청소년기에 따라 성취해야 할 과업이 달라진 아이들에 맞춰 부모 역할도 함께 변신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도 배우고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굿네이버스는 부모님들과 미래에 부모가 될 청소년들에게 세계시민교육의 일환으로 부모교육을 해 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부모교육에 참여한 부모님들은 약 2만5000명이고, 예비부모교육을 받은 청소년들은 499개 학교 13만1973명이었습니다. 이런 경험을 바탕으로 국제구호 단체 굿네이버스와 조선일보 더나은미래가 ‘세계시민교육’ 시리즈 중 세 번째 파트 ‘부모교육’편을 시작합니다. 부모 교육은 오는 12월까지 네 번에 나눠 진행되며, 좋은 부모가 되는 방법과 사례에서부터 자녀와 소통하는 법, 청소년들의 예비부모 교육 현장, 전문가들이 알려주는 좋은 부모가 되는 법 등을 소개할 예정입니다. 편집자 주
김태환(17), 용환(12) 형제의 어머니 백선희(44)씨는 ‘눈높이 봉사’를 강조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눈높이에 맞는 봉사를 스스로 찾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봉사가 무엇인지, 또 어떤 방법으로 실행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과정 속에서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나눔의 참 의미를 깨닫게 된다. 태환이, 용환이 형제도 마찬가지였다. 지난 3월, 일본 대지진 참사 직후 두 형제는 이웃 나라 친구들에게 용기를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용환이는 ‘희망 편지쓰기’를, 태환이는 ‘희망 영상 제작’ 아이디어를 냈다.
백씨는 두 형제가 기획한 나눔을 보다 체계적으로 발전시켰다. “봉사는 교육입니다. 나눔을 실천하기에 앞서 적절한 교육이 선행돼야만 하죠. 한일 양국의 역사는 물론이고,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대지진에 대한 스터디를 시작했어요. 어려운 상황에 처한 이웃을 도와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방사능 피해를 줄이기 위한 대책은 무엇인지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국에 잠시 들른 일본 지인과의 만남도 가졌어요. 일본 상황을 직접 듣고 어떤 마음으로 편지를 전달해야 하는지 이야기를 나눴죠.”
뜻을 모으는 일도 잊지 않았다. 태환이, 용환이는 ‘지구촌 친구사랑’을 함께 실천할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정발초등학교 59명의 아이들이 ‘희망 편지쓰기’에 동참했고, 이렇게 모인 소중한 편지들은 20m ‘사랑의 띠’를 이뤘다. 용환이는 “처음엔 고개를 갸웃거리던 친구들이 하트 모양 색지를 꽉 채워 편지를 쓰더라”면서 감동을 전했다. 태환이는 이 모든 과정을 카메라 속에 담아 희망 영상을 제작했다. 그로부터 두 달 후, 아이들의 따뜻한 마음을 담은 편지와 영상은 굿네이버스를 통해 일본 주민들에게 전달됐다.
태환이, 용환이 형제의 자발적인 봉사는 어머니 백씨의 교육 덕분이다. 그는 자녀들이 생활 속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나눔을 실천할 수 있는 기회를 꾸준히 마련했다. 자원봉사센터나 장애인 복지 시설을 방문해 아이들이 다양한 봉사활동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빈곤 체험 프로그램을 통해 소외된 이웃의 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하게 했다. 서울신학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인 백씨는 대학생들과 함께 떠난 해외자원봉사에 두 아들을 데려가 지구촌 빈곤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어주기도 했다.
“가장 중요한 건 관심입니다. 소외된 이웃을 향한 부모의 관심은 고스란히 자녀에게 이어지기 때문이죠. 대화도 중요합니다. 가정 내에서 나눔과 봉사를 수다의 소재로 활용해보세요. 어른들이 생각지도 못한 창의적인 봉사 방법이 아이들의 입에서 나오기 시작할 겁니다.”
굿네이버스 대전서부아동권리지원센터 송은주 과장의 딸 황윤서(10)는 일명 굿네이버스의 ‘어린 간사’로 통한다. 어릴 때부터 엄마를 따라 굿네이버스에서 진행하는 바자회, 캠페인에 참여해 일손을 도왔던 윤서는 나누는 법, 배려하는 법을 자연스레 몸에 익혔다. “바자회 때마다 윤서 때문에 모두들 웃음 짓곤 해요. 맨 앞에 서서 ‘어려운 친구를 돕습니다. 나누는 기쁨을 느껴보세요’라며 손님을 모셔 와요. 자원봉사자들한테 노하우를 알려주는 등 교육도 담당합니다.”
윤서가 달라진 건 5살 무렵, 캄보디아 아동 돕기 바자회에 참여하면서부터다. “바자회 이후 윤서가 ‘나보다 어려운 친구를 도울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며 먼저 묻더군요. 용돈을 쪼개 해외 아동 결연을 맺은 후부터는 윤서가 밥을 남기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송 과장은 ‘생활 속 나눔’을 부모 교육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꼽는다. “‘나눔’을 어렵게 생각하지 마세요. 빵 한 쪽, 물 한 잔 건네는 것도 나눔입니다. 내 작은 도움이 이웃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 자녀에게 알려주세요. 나눔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바로 우리 곁에 있습니다.”
조성녀 기자
정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