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4일(일)

[날아라 희망아] 흙탕물 마시고·썩은 쌀 먹고 “굶어 죽지 않는 게 소원이에요”

필리핀 11살 소년 존 폴

공사장으로 대형 트럭 한 대가 들어왔다. 뿌연 모래 바람이 일었다. 황량한 채석장 구석엔 나무 조각과 고철로 지은 집 한 채가 위태롭게 서 있다. 집 안으로 들어서자, 고작 한 평 남짓한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11세 소년 존 폴(John Paul·사진)과 그의 가족이 사는 집이다. 필리핀의 수도 ‘메트로 마닐라’에 불어 닥친 태풍으로 모든 것을 잃고, 쫓기듯 이곳에 온 지 벌써 2년이다.

미상_사진_날아라희망아_존폴_2011도심 빈민으로 골치를 앓던 정부는 살림살이를 모두 잃은 사람들을 이곳 산이시드로 로드리게스 리잘(San Isidro, Rodriguez, Rizal)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존의 가족은 인근 채석장 한편에 집을 지었다. 극심한 가슴 통증으로 누워 있는 의붓아버지(60)와 뇌 낭종 제거 수술 이후 심각한 두통을 앓고있는 어머니를 대신해 존이 가장 노릇을 한다.

아침 일찍부터 존은 부산했다. 땔감을 구하고 장작을 팼다. 채석장 한가운데 있는 우물에서 물을 길어 와 밥을 했다. 폐타이어로 만들어진 우물 안을 들여다보니 누런 흙탕물이다. “이 물을 어떻게 먹느냐” 난감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 가족에게는 그나마 유일한 ‘생명수’다. “굶어 죽지 않는 게 유일한 소원”이라는 엄마는 “이 물이라도 있어 다행”이라고 눈물을 훔쳤다.

해가 땅 위로 내려앉을 무렵 존이 집 한편에서 쌀을 들고 나왔다. 사정을 딱하게 여긴 마을 주민이 가져다준 쌀이라고 했다. 형편이 비슷한 이웃이 가져온 쌀에는 벌레가 득실거렸다. “그 가족도 어려운데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하죠.” 흙탕물로 쌀을 씻어가며 가족을 위한 식사를 준비하던 존이 말했다. 이렇게 준비한 식사가 이날의 유일한 끼니다.

존은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었다. 집안일을 돕느라 결석이 잦고, 교복도 책가방도 없이 수업을 들었지만 늘 1등급에 속했다.

“형편이 너무 어려워서 올해부터는 학교도 못 가고 있어요. 그게 늘 마음에 걸리고 미안해요.” 엄마는 북받쳐 울었다.

학교 가고 싶지 않으냐는 질문에 존은 의외로 담담히 말했다.

“친구들을 볼 때는 힘들기도 해요. 물 뜨러 가고 장작 구할 때도 물론 힘들죠. 그래도 꿈은 버리지 않았어요. 이다음에 커서 약한 사람들을 보호해주는 훌륭한 군인이 될 거예요.”

미상_그래픽_날아라희망아_존폴_2011존의 가족은 최근 유일한 잠자리마저 ‘불법 거주’로 철거될 것이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아이에게서 마지막 ‘희망’마저 뺏지 않도록 무엇을 해야 할까. 온종일 존의 눈이 잊히 않았다.

※ 빈곤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에게 희망을 선물해주세요. 전화 (02)1599-0300 혹은 인터넷(www.gni.kr)을 통해 참여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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